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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순간 - 사전연명의료의향서로 준비하자

posted Oct 0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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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61
글쓴이 고경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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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순간을 예측하기는 의사로서도 참 어렵다. 죽음을 예측하기 어려웠던 두 개의 사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방문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서울36의원에서 일한다고 지인들에게 알렸더니, 한 지인으로부터 자신의 아버지를 방문하여 진료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91세로 최근 한 달간 식사량이 현저히 줄어서 하루에 두 번 정도 소량의 유동식이나 죽을 아주 조금씩만 드신다고 하셨다. 방문하여 보니, 인사도 하시고 자신이 통 식사를 못하겠다고 하시며 요의를 느끼면 부축을 받아서 화장실도 다녀오실 정도였다. 의식도 명료하시고 병원에 가고 싶지 않고 아내가 아닌 요양보호사가 관리를 위해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도 확실히 거부하시는 상태셨다. 일단 혈액검사를 내고 상태를 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식사량 저하로 영양상태가 나빠서 혈중 단백질도 낮고 빈혈도 있었고 만성 신질환으로 신장에서 노폐물을 걸러내는 기능도 나빠져 있었다. 그래서 식사를 더 자주 하시게 권고하고 탈수가 되지 않도록 필요한 수액주사 처방을 해서 간호사가 가서 주사를 놔드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양 상태만 좋아지시면 임종을 앞둔 상태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 후 식사를 더 못하시게 되고 고령이신 어머니께서 더 이상 환자를 간호하는 것이 힘드셔서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고, 한 달쯤 지나자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또 다른 환자분도 93세 남자이신데, 딸과 부인이 같이 살면서 돌보고 있었다. 한 달 전부터 거의 의사소통을 못 하시고 식사도 거의 못하시는 상태라고 하셨는데, 혈압도 저혈압이고 맥박도 빠른 상태였으며, 대변을 기저귀에 계속 지리는 상태라 하여 보았는데, 항문 근육이 늘어져서 열려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몸이 정말 피골이 상접하고 있다는 표현에 맞게 매우 말라있고 가끔 아프다고 신음을 하는 상태였다. 딸과 부인에게 거의 임종을 앞둔 신체소견을 보이며 임종과 장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하였다. 딸과 부인은 그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족들이 어디서 장례를 치르고 어떻게 모실지에 대해 같이 상의해보시라고 조언을 하고 다음날 다시 방문하기로 하고 집을 나왔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딸로부터 전화가 와서 어제 방문 후 저녁에 갑자기 호흡이 거칠어지고 이상해서 119를 불러서 병원 응급실로 가던 중 119 대원이 있는 상태에서 숨을 거두셨다고 하였다. 마침 119 대원이 응급 심폐소생술을 하겠냐는 질문에 하지 않겠다고 하였고 응급실 도착하여 바로 의사로부터 사망진단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례도 임종이 가까운 것을 알겠는데 그렇게 수 시간 내에 빨리 진행될지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이렇듯 고령의 노인 환자분을 볼 때 환자의 상태가 매우 다르고 개인차가 커서 임종의 시기가 언제인지 앞으로 수명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추정하기는 의사로서도 정말 어렵다. 그러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언제라도 빠르지 않으며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인구가 증가하는 나라이다. 2025년에 한국은 초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사회)로 진입하며, 2045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의 고령화 국가가 될 전망이다. 앞으로 노인들의 삶의 질과 건강, 그리고 의료문제가 더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의료자원의 낭비나 불평등과 차별 없이, 집에서 존엄하게 원하는 대로 잘 죽을 수 있는 요구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와 공부 또한 필요하다.

 

죽음을 잘 준비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인 사람이 누구나 향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연명의료중단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한 것을 말한다. 여기서 ‘연명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의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보건복지부 지정 등록기관을 통해 충분한 설명을 듣고 본인이 직접 작성하여야 하며, 등록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되어야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정보처리가 가능해서 사전연명의료 의향을 시스템에 접속하여 확인할 수가 있다.

 

2018년에 고향 제주에 볼 일이 있어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에 한달살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제주대병원에서 사전연명의료 상담도 하고 의향서도 작성하고 나서 주인집 할머니에게 이런 게 있다고 소개를 해드렸다. 그랬더니 85세이신 할머니도 자식들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고 복잡한 기계의 도움으로 생명 연장하길 원치 않으신다고 하면서, 제주대병원 상담 예약을 해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제주대병원 담당자에게 전화로 할머니의 상담예약을 잡아드렸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노인정 친구들에게 소개를 해서 노인정 할머니와 친구분 네 분이 택시로 같이 가서 상담도 받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네 분이 다 작성하셨다고 하여서 제주 할망들의 현명함과 기동성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본인의 의사가 확실하고 의식이 명료할 때 법적으로 보장받는 자신의 연명의료 방식을 미리 정하는 것이, 자식들이나 가족들이 임종을 맞이하여 의료진으로부터 연명의료에 대한 물음을 접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임종하시는 분을 위해 옮고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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