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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연재] 띵동~ 왕진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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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삶의 조건

posted Jan 0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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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고경심
글쓴이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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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衣食住)가 인간 생존의 필수조건이라 할 때, 그중 주(住)에 해당하는 집이란 무엇일까? 주로 먹고 자고 쉬고,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매우 사적인 공간일 것이다. 집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내가 나답게 편하게 눈치 보지 않고 제재받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자, 사회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보호막이자 방어처라 하겠다. 집에서 충분히 먹고 자고 쉰 후에는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가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활동을 할 수 있으리라.

 

병원에서 진료할 때는, 진료실로 걸어 들어오는 환자의 모습을 아주 짧은 시간에 보면서 환자의 증상이나 고통에 대한 호소나 설명을 듣게 된다. 환자가 말하는 증상이나 호소에 따라 검사나 처방을 하게 되지만 그 이상의 정보를 얻기도 어렵고 환자가 처해 있는 삶의 조건, 그리고 건강에 영향을 주는 조건을 그 짧은 순간에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방문진료를 하게 되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집 주소를 찾아서 전철역에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고 내리고, 네이버 지도에는 도보로 700 미터라고 하여 쉬운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가파른 오르막길이라 헉헉거리면서 올라가면 예상 주소가 달라서 이 골목 저 골목 헤매다가 목적 빌라를 겨우 발견해서 좁은 계단을 3층 올라가면 찾는 집이 나온다. 집을 찾느라고 헤매는 과정에서 이 환자가 어떤 동네에서 어떻게 일터까지 또는 시장까지 이동하면서 살아왔는가에 대해서 환자의 삶의 동선과 함께 환자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몸으로 확 와닿는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보면, 환자가 어떤 삶의 조건에 있는지 또 확연히 보인다. 한강 전망이 내려다보이는 넓고 안락한 거실 한가운데 전동침대에서 온 가족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돌봄을 받고 있는지, 한쪽 구석진 방에서 잡동사니 짐 속에 파묻혀 요양보호사의 손길 속에 방치되어 있다시피 하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식사하는지, 어떻게 이동하는지, 어떻게 가족과 교류를 하는지도 물어보지 않아도 보이게 된다. 환자가 처한 집에서의 가족관계와 돌봄의 조건이 몸으로 확 와닿는다.

 

한 번은 신당역 인근 시장 안 주소로 78세 할머니 방문간호지시서 요청을 받고 방문하게 되었다. 방문간호센터의 방문간호사가 방문간호를 하기 위해서 의사의 방문간호지시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신당동 시장의 골목을 헤매다가 가게의 철문은 닫혀있고 그 앞에서 쇠파이프나 쓰레기 같은 고물이 쌓여있는 집 같지 않은 곳이 찾는 주소였다. 시장 뒷골목 다닥다닥 붙어있는 작고 낮은 오래된 건물로 이층으로 올라가는 아주 좁은 문이 있었다. 문을 열자 좁은 계단 옆에서 사람이 드나들 수 없을 정도로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쌓여있었다. 겨우 2층 방으로 들어서니, 창문도 없는 방에 60대 후반 요양보호사가 앉아있고 78세 할머니가 치매 상태로 방구석에 누워계셨다. 겨우 이부자리 한 채가 들어갈 공간 옆에는 손자가 쓰는 작은 컴퓨터 책상과 옷걸이에 옷가지며 이불이며 온갖 물건이 쌓여있는 상태였다. 요양보호사로부터 가족력을 들었는데, 할머니의 아들이 이혼하고 나서 두 남매를 이 할머니가 키웠고, 시집간 손녀가 매달 요양보호사 비용과 기저귀를 보내온다고 하고 손자는 낮에 일하다가 밤에만 들어와서 할머니 옆에서 자고 간다고 한다. 요양보호사는 6년째 돌보고 있는데, 부엌에도 쓰레기가 쌓여있어 수도도 못 쓰고 냉장고도 없어 당신의 집에서 죽을 해서 가져와서 할머니에게 드리고, 그 남은 죽을 위층에 사는 아들이 저녁에 먹인다고 한다. 아들을 전화로 부르니 내려왔는데 50대 아들에게 집안의 쓰레기 때문에 음식도 할 수 없고 건강에 해로우니 치워야 한다고 협박하듯이 얘기했지만, 정신적으로 호더(hoarder: 낡고 필요 없는 물건이나 쓰레기를 집 안에 쌓아두는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에 해당하는 성격장애라 따로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구청 사회복지과에 연락해서 강제적으로라도 쓰레기를 치우고 환경을 정비하도록 조치하고, 동시에 아들의 정신치료까지 필요한 상태였다.

 

방문진료를 하다 보면 환자의 통증이나 증상을 경감시키는 의료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환자의 건강을 해치는 삶의 조건들을 그대로 둔 채, 또는 무시한 채, 대증적인 약물이나 치료의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좋은 음식을 섭취하는 영양 상태, 적절한 활동과 운동, 좋은 관계(가족이나 친지와의 관계, 반려동물과의 관계도)와 쾌적한 거주 환경이 건강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의료인이라면 이러한 삶의 조건에 관심을 가져야만 진정 건강을 돌보는 올바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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