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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글 좀 쓰는 게 어떠신지?’
앉으나 서나 길목협동조합만 생각하시는 홍영진 이사님의, 부드럽지만 결코 거절할 수 없는 훅 들어옴! 생각해보니 맥주인문학 연재를 마무리한 것이 벌써 2년 정도 되었으니, 많이 참으시긴 했다.
‘넵!’하고 대답하긴 했지만, 막상 뭘 써야 할지, 그것도 연재를 하려면 뭔가 이야깃거리가 계속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근심걱정으로 2022년 12월을 보내던 중.......은 사실 거짓말이고, 나름 분주한 연말을 보내면서도 마음 한 자락은 고민을 이어갔던 것 같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맥주인문학 연재 마무리 후 최근까지 살아왔던 이야길 풀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오랜만에 만난 이가 ‘뭐 하고 살고 있냐?’라고 물을 때 ‘개척교회모임하고요, 알바하고요’와 함께 제일 많이 하는 말, ‘저 요즘 남자청소년 성교육 관련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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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진 이사님만큼이나, 몰아붙이진 않으나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제안을 하는 선배님을 나는 또 한 명 알고 있다. 아하! 서울시립 청소년성문화센터 이명화 센터장님, 그분이 ‘참여해 보시라’고 했던 때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성평등활동가들의 조찬모임이 있다. ‘나쁜 놈들이 나쁜 구상하느라고 조찬모임 하잖냐? 우리도 하자!’라는 발상에 따라 한 달에 한 번 이른 오전에 만나 김밥을 먹으며 어찌 지내는지 이야기 나누는 자리다. 그런데 지난 2019년 우리는 ‘N번방 사건’을 접하며 망연자실했다. 한국에서 성/평등교육이 시작된 지 수십 년이 되었는데, 그간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하는 자책과 자괴감, 분노, 허탈감이 몰려왔지만, 그럼에도 뭔가 해 봐야 하지 않겠냐 이야기 나누던 우리는 남자청소년을 위해 특화된 성/평등교육을 구상해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실 이에 대해 전문적 지식도, 활동의 폭도 적었던 나는 그 자리 한 구석에서 차를 홀짝거리며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따가운 시선들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보니 이 센터장님이 한 말씀하셨다. ‘같이 하셔야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이 있던가? 나는 갑자기 선배 따라 남자청소년과 성/평등교육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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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참으로 멋진 이들과 함께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파일럿 교육을 해보며, 남자 중학교 등의 현장으로 나아가 교육을 진행했다. 또 이를 전담할 단위를 만들자는 논의 속에서 연구소준비모임을 시작했고, 올해 말 독립연구소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갑자기 눈앞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는 이들을 뜯어말리고, 교육시간 내내 성기얘기만 하는 참여인들을 만나는 등 교육현장은 늘 변수가 많지만 또 흥미롭기도 하다. 수업이 끝난 후 조심스레 찾아와 ‘정말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하고 돌아서는 참여인, ‘페미니즘이 그런 것이군요!’라며 흥미 있어하는 남자청소년들을 보며 다른 도전을 계획해 보기도 한다. 이 같은 시간을 거치면서 가지게 된 생각들, 왜 남자청소년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또 교육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있는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건 지 등....... 앞으로 이런 이야길 한 달에 한 번씩 써 내려가고자 한다. 격려와 응원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