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마음에 들어와 앉은 문장이 있습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진화인류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브라이언 헤어가 쓴 이 책을 아직 펼치지는 못했지만 겉표지에 나열된 김영하, 최재천 이런 이름 때문에 이 구절에 매혹당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백수십 명의 영정 사진이 아직도 거리에서 외로운 시절입니다. 책에 언급되었다는 이 구절보다 우리의 정신 상태를 적확하게 감별해 낼 수 있는 문장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이런 시가 제 앞으로 왔네요.
조이 하조는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 피를 받고 세상에 나온 분입니다.
"How We Became Human?", "어떻게 우리는 인간이 되었나?"로 번역되는 이 구절은 시인이 선택한 자신의 시집 제목입니다.
비는 우리를 열어주네, 꽃잎처럼, 아님
한 계절 이상 갈증을 느껴왔던 이 대지처럼.
우리는 하던 말을 멈추네, 생각도 멈추고,
혹은 이 신비를 마시려고 색소폰을 부네.
우리는 우리 숨결 아래 숨소리를 듣네.
바로 이렇게 비는 비가 되었고 우리는 그렇게 인간이 되었지.
- 조이 하조 <호놀룰루에 비가 내리고> 중에서1)
처음엔 10km를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해도 좋겠다던 친구들이 오늘 풀코스를 3시간 안에, 10km는 50분 이내, 그리고 달리기 시작한 지 몇 달 안 되는 주자들이 모두 완주하는 신박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두 러너스가 존재하였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대회에 출전한 러너들의 다리와 신발
멀리 캐나다에서 원격으로 멤버 한 명 한 명 애정으로 인도해 준 러너스 초대 회장이 든든한 초석이 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오늘 달리고 뒤풀이 하며 이제야 왜 달려야 하는지, 달리면 어떻게 사람이 다정하게 되는지 조금 확신이 드네요.
기록을 정확하게 적지 않았습니다. 그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숫자입니다. 우린 만나서 달리면 즐겁고 몸과 마음에 서서히 새겨지는 잔근육과 온화함이 더없이 좋을 따름입니다.
우리는 달리며 친구가 되었고
달리며 다정하게 되었고
또 달리며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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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감편지 길목의 3월 17일 자 정은귀의 금요인문학 '인간이 되어가는 길'에서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