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퀴엠이 흐르는 정원일기
기획사 소속 배우들 프로필인 줄 알았다.
하나같이 밝고 화려하게 빛나는 젊음들이었다.
똑같은 경기도 고등학교 교복 입은 학생들도 아니었고 제각각 여유 있게 개성 넘치는 청춘들이었다.
159명.
이름이나 얼굴을 밝히지 않는 몇을 제외하고는 거기 모인 모두가 불렀다.
"기억하겠습니다. OOO”
그 정원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참사가 일어난 2011년에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밥상을' 피켓을 들고 서있었고,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는 겨울이면 스케이트를 타기도 했었다.
세월호 참사 다음 해인 2015년 4월 17일에는 4470명의 촛불로 세월호를 만들기도 했었다.
22번이나 나갔던 촛불집회 이야기는 이제 하고 싶지 않다.
그 서울 시청 앞 정원에,
유족들이 외로울까 봐 간 2023년 2월 4일,
159명의 영정 사진이 ‘기습'이라는 보도 기사 제목처럼 왜곡된 땅 위 허술한 분향소 안에 놓여 있었다.
지난가을, 2022. 10. 29.
불과 몇 분 사이에 서울시 한복판 이태원에서 푸르디 푸르게 건강하던 젊은 가족을 잃고 유족이 된 이들의 손이 영정 사진 위에서 울부짖었다.
밤이 되자 전기를 공급해 주지 않은 서울시 덕분에 컴컴한 분향소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시민들이 길지 않은 줄을 이었다. 빨간 목도리를 맨 유족들은 조문객 한 분 한 분에게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했다.
한때 정의를 외치던 그 정원에 부정(不淨)과 분열이 걸어갔다.
권력은 부패했고 민주는 주인을 잃었다.
사랑타령이나 하던 나는 무거운 짐을 지고 10km 걸어 혹사함으로 스스로를 벌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 고개 돌리고 떠날 수 있는 정원도 없는 나는 서울 시청에 걸린 걸개에다 묻는다.
100일이 되도록 대체 누구와 동행했느냐고.
그날 너무나 오랜만에 광장, 아니 정원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 둘.
지난 2년간 은둔에 가까웠던 내 바뀐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더니
다음 날 그 번호로 소식을 하나 보내왔다.
만나지 말 걸
알려주지 말 걸
차라리 모를 걸
죽음 가득한 서울에 올라오지 말 걸
訃告(부고)
159명의 죽음에 100일 추모제를 하던 날,
사라진 또 한 생명
LBGT라 명명하는 성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싸우고 예배한
故 임보라 목사님을 추모하며
삼가 영전에 음악 한 곡을 올려 드립니다.
부디 사랑이 가득하고 평등한 그곳에서 평화로이 영면하소서.
*브런치스토리에 게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