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월 1일 노동절이라 월요일마다 나가는 방문 진료를 쉬게 되었다. 딸 부부와 손자가 주말에 와서 북적거리다가 아침 식사를 하고 떠났다. '자식들과 손자가 찾아오면 반갑고 떠나면 더 반갑다'는 말이 실감 나게 갑자기 한가로운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일본영화 <노후자금이 없어>라는 코미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주인공 부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장남과 그 처로,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여 체면치레로 장례식을 치르지만 준비한 노후자금에서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데 설상가상으로 실직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처하게 된다. 딸도 결혼하는 사위 쪽 집안에서 호화결혼식을 하자고 제안해 온다.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의 생활자금을 대는 게 어려워지자, 급기야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같이 살게 된다. 그 후 그야말로 맘대로 웃을 수 없는 슬프고도 재미있는 코미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어머니가 제안한 <생전 장례식>이다. 어머니는 정성 들여서 지인들에게 생전 장례식 초대장을 보내고 장소를 빌려준 지인의 집에서 각자 음식을 마련해 오게 하고, 즐겁고 신나게 춤을 추면서 잔치처럼 행사를 치른다. 어머니는 갑작스러운 협심증 진단을 받고 언제라도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전에 이런 행사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거기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군분투하는 며느리에게 고맙다는 진심을 전한다. 그리고 가족관계와 경제적 책임으로 힘들어하는 며느리에게 마지막으로 전하는 말은 "좀 제멋대로 살아도 된다"였다.
이 영화를 보니, 수년 전에 치렀던 선배의 생전 장례식이 생각났다. 인천에서 정형외과를 개원하시면서 지역사회의 일과 주위 단체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시면서 귀감이 되셨던 홍성훈 선생님은 나이 칠십에 위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되었다. 홍 선생님은 환갑이 지나자, 이제 남은 생은 여분이라서 천천히 즐기면서 살겠다고 하시면서 병원일도 반만 하시고 남는 시간은 네팔이나 우리나라 전역을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여행을 하셨다. 암 진단을 받으시고 이제 충분히 즐기면서 잘 살았다고 하시면서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시고 2012년 12월 <홍성훈 원장의 삶과 여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여셨다. <인천in>의 '터덜터덜 걷기'를 주관하시면서, 여행 중 찍은 네팔과 국내 사진들을 정리해서 <사진전>을 여시고 그 사진전을 찾아오는 지인들과 일일이 얼굴을 맞대고 근황을 나누고 인사를 하시면서 자신의 생을 마무리하시는 시간을 가지신 것이다. 사진전 여시고 한 달 지나서 돌아가셨지만, 그 사진전을 찾았던 지인들은 생전에 홍 선생님을 만났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었다.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지만, 그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네이버에서 <죽음학> 강의를 하시고 전국 어디에나 죽음과 관련된 강의라면 솔선하여 다니시는 정현채 선생님(본인도 암 투병 생존자이시다)과 그 부인이 제주 조천읍 와산리에 <파미르 책방>을 열 계획이라는 말을 방금 들었다. 책방 이름을 파미르 고원에서 따왔다는 설명과 함께. 우리가 살면서 너무 고되고 힘이 들 때,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헤맬 때, 누군가 손 잡아 주고 들어주고 맞장구쳐주고 하는 손길이 절실할 때, 좋은 책을 소개해주고 마음을 나누는 그런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일을 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죽음을 명상하면서 지금, 여기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소중한 경험을 나누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기대된다.
방문 진료를 나가게 되면 고령에다가 암, 뇌졸중, 파킨슨병이나 치매 등으로 죽음과 가까운 처지에 놓인 환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의료적 도움 말고도 환자 본인과 환자 가족들의 죽음에 대한 마음가짐과 준비를 같이 도울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여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같이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