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별70

대전 사랑방 정원일기 2 - 내 마지막 남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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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사랑방 정원일기 2 – 내 마지막 남의 정원

 

 

이번에는 커피 때문이었다. 

다시 대전 기찻길 옆 왜가리 아파트 사랑방에 들어간 건.

논산 공주 보화터를 끝으로 이젠 정말 나만의 정원을 정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할 일이 남아 있었다.

SCA(Specialty Coffee Association) 바리스타 파운데이션 과정이었다.

 

내게는 정원이 있는 집 말고도 어딘가 정착하면 근처 작은 공방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실 꿈이 있었다. 그동안 전국을 떠돌면서 경험한 바로는 내게 고마운 이들에게 정성껏 커피를 내려주면 사람들이 행복해했다. 

커피의 ㅋ도 모르면서, 피터가 해남으로 보내준 포트와 막내동생이 정읍과 담양으로 보내준 커피 핸드드립 도구의 아름다운 디자인과 로스팅해서 보내준 원두 덕분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나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커피를 내려주고 싶어서 정식으로 커피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다동의 손흘림 커피 바리스타 과정을 배우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곳 강의 일정이 지연되는 바람에 얼결에 찾은 직업전문학원 강좌에 개강 전날 극적으로 등록을 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다. 운이 칠 할이고 재주나 노력이 삼 할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일은 재주나 노력보다 운에 달려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나는 SCA 자격증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그 자격증은 일반 바리스타 민간 자격증과는 달리 유일하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바리스타 자격증이었다. 그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는 과정에 개강 전날 등록하고 5주간 매 주말마다 6시간씩 커피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 수업은 개강했고, 커피 자격증을 딸 때까지는 강의와 강의 사이에 대전에 머물러야 했다. 

첫 강의 오리엔테이션 후 점심식사 시간 맞춰 원도심레츠에 갔다. 왜가리, 나무늘보, 소나무 등등 반가운 이들이 분주하게 요리를 하고 있었다. 

수요일은 국선도 회원들이 오셔서 음식이 가장 풍성한 날이다. 묵은지와 닭이 된장과 함께 한 솥에 어우러져 있고, 부침개와 각종 김치와 삶은 브로콜리와 초고추장이 있었다. 

새벽부터 장거리 이동에 긴 걸음으로 허기진 나는 장정이 먹을 만큼 많은 양의 국과 밥을 펐다. 그리곤 쉬지 않고 다 먹었다. 

 

식사 후 비치된 앞치마를 두르고 시키지도 않은 설거지를 했다. 그만하라는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수십 명 분의 설거지를 하는 내 모습을 보며 스스로 대견했다. 

예전의 나는 하지 말라면 안 하고, 그만하라면 그만했었다. 말을 언어 그대로 이해하고 그 뒤의 의중은 도통 몰랐다. 있는 그대로,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게 당연했으며 비언어적 의미나 분위기 파악에 서툴렀다. 그러나 3년 가까이 바깥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나와 같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언어보다 비언어적인 표현에 민감했으며 똑바른 말보다 뭉뚱그린 표정을 더 편안해했다. 

주방 일에 서툰 내게 아무도 그 일을 시키지 않았고, 하지 말라면 안 했었다. 실컷 먹고 배불러 다들 꼼짝 않고 싶을 때 나서서 설거지를 하면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걸, 시키지 않는다고 안 하고 있으면 욕을 먹는다는 걸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다 지나고 나면 깨닫는다. 그렇게 성숙해지는 것이겠지. 나이가 몇인데 이제야…….

 

그날은 원도심레츠 미술 특강 마지막 날이었다. 식사 후 그림 시간이 이어졌다. 연필화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내 수채상상화를 보시곤 미대에 가라고 권유하신 적이 있었다. 당시 완고한 할아버지께 예체능 진학은 재고의 여지도 없는 소리였다. 그림 대신 글을 쓴 건 아주 잘 선택한 일이었다. 나는 그림을 그릴만큼의 창의력이나 상상력이나 체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다. 

 

그 숨은 소망이 처음으로 발현된 때는 2020년 5월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미술가인 새별을 만나면서였다. 그때 3주간 내가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 가면 새별이 봐주었다. 몇 번의 리터치만으로 그림이 달라졌다. 5월이 지나며 새별은 떠났다. 이후 나는 혼자 그림을 그렸다. 

아주 가끔, 머무는 정원에서 한 달에 한 컷 정도였다. 글과 마찬가지로 그림도 그리고 싶을 때만 그린다. 뭐든 억지로는 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릴 때는 고요한 집중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글을 쓸 때처럼 나와 작품만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 사이에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그림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왜가리가 즉석에서 나눠주신 4B연필과 종이로 청강을 했다. 

따사로운 봄날의 햇살이 원도심레츠로 들어오고 여러 사람이 침묵 속에 연필화를 그렸다. 사각사각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함이 가득 찼다. 옆 테이블에는 국선도 어르신들이 바둑을 두고 계셨다. 바둑도 배우고 싶은 것 중 하나다. 오목도 잘 못 두면서^^.

 

그림 수업 후 이번에도 왜가리 안 계신 집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푸른 커튼의 나무와 고양이가 환하고 따스하게 그대로 있었다. 왜가리가 아침에 준비해 놓고 가신 두부 양송이 된장국 한 냄비와 전기밥통에 수북한 흑미밥이 있었다. 샤워를 하고 라디오를 켜고 밥을 먹고 글을 쓰는 일상을 반복했다. 

 

늦은 밤, 왜가리가 오셨다. 

두 달 만에 만났지만 우리의 대화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왜가리는 식이요법으로 요즘 안 드시던 아침 식사를 나를 위해 차리셨다. 당근과 홀그래인 무침과 양상추와 딸기와 호두에 올리브유와 발사믹 소스와 바질 패스토를 섞어 만든 소스를 끼얹은 샐러드와 된장국과 흑미밥이었다. 식사 후에는 샐러드와 구운 식빵으로 도시락을 싸주셨다. 

 

엄마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싸주시던 도시락이 떠올랐다. 노란 달걀에 주황 당근과 파란 파가 다져진 두툼한 달걀말이와 달걀 물 묻힌 분홍색 소시지. 정성 가득한 도시락을 얼마 만에 받아보는지……. 왜가리는 동생들조차도 집이 아닌 원도심레츠에서 만나신다면서 나에게 왜 이리 잘해주시는지……. 그이의 친절은 학교까지 태워다 주심으로 정점을 찍는다. 

 

세 시간 강의 후, 빈 강의실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냄새도 나지 않는 도시락에서 아릿한 향기가 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묵직함이다. 언제든 오라는 환대와 세심한 보살핌. 그동안 지나왔던 많은 정원에서 내가 받았던 사랑과 공대. 나는 그런 사랑을 먼 친구나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베풀 수 있을까.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태복음 5:46) 

 

그다음 주에도 왜가리 아파트에 내가 먼저 들어갔다. 

외식을 하고 들어갔는데 전기밥통에 흑미밥이 차지게 되어 있었다. 왜가리가 드시지도 않는 밥을 아침에 해 놓고 나가신 거였다. 그날 올 나를 위해. 

왜가리는 밤 열한 시 반이 다 돼 들어오셨다. 점심때 원도심레츠에서 남은 국과 반찬을 한 아름 들고서. 

 

다음 날 아침 일찍 왜가리는 식탁을 차리셨다. 평소에는 드시지 않는 아침 식사를 나를 위해서. 이날은 채 썬 양배추 달걀부침이 주 메뉴였다. 흑미밥과 된장국과 달걀부침과 제육볶음과 봄동과 브로콜리와 깍두기가 달걀부침과 함께 차려졌다. 진수성찬을 먹고 설거지를 했다. 그사이 왜가리는 내 도시락을 싸주시고 원두커피를 내려 내 텀블러에 채워주셨다. 요즘 커피도 드시지 않으면서.

 

오전 아홉 시 반, 학교까지 태워다 주고 왜가리는 가셨다. 점심시간에 학생들 과제 점검으로 나가서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과제물을 보며 도시락을 먹었다. 찬 흑미밥에 달걀부침과 블루베리 호두 양상추 샐러드가 없었다면 오후 다섯 시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왜가리가 타주신 커피가 없었다면 일곱 시간을 어떻게 지냈을까. 

 

마지막으로, 왜가리는 기차 시각 맞춰 대전역 동광장으로 내 무거운 짐을 실어다 주셨다. 등에 멘 배낭과 양손 가득한 짐 때문에 왜가리를 안을 수도 없는 채 부리나케 헤어져야 했다. 

기차에 올라 목베개와 안대를 한 채 잠에 빠져들었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 내가 아는 지식을 학생들에게 쏟아부었고, 지친 왜가리의 어깨를 처음으로 주물러 주었으며, 밥을 얻어먹었으니 설거지를 했다. 

 

왜가리네 아파트 사랑방은 내 마지막 남의 정원이다. 그 마지막 정원에서 차고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 언젠가 누군가 내 정원에 오면 나도 그렇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편히 쉬다 가게 해 줄 수 있을까? 왜가리의 너른 품처럼 나도 지친 이들을 품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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