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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을 모읍니다.
불교 사학재단 남자 중학교로 성/평등교육을 갔었다. 첫 시간 강의를 준비하다 어디선가 편안한 음악과 함께 방송이 들려왔다. 좀 전까지 활동지가 어디 있냐, 반 편성은 어찌 되냐 등으로 분주했던 우리는 갑자기 고요 속에서 급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문득 강의 시작 전, 잠시라도 그날의 내용과 나를 돌아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시간을 매일 아침 가지는 학교의 참여인들은 분명 달라도 다...르진 않았지만 말이다.
아침마다 명상을 하시던데 마음이 잘 다스려지나요?
라는 말에 무슨 열심히 들어야 말 같은 소릴 하냐는 표정을 짓던 참여인들은 여느 남자학교와 비슷하게 남자 하면 생각하는 단어로 자지, 꼬추, 가운데 달리 큰 거, 근육, 재력, 운동, 힘 등을 외쳤다. 정녕 종교적 신념보다 맨 박스는 더 강력한 것일까?
대한민국은 국교가 없는 나라다. 게다가 국민의 과반 가까운 수가 무속 아닌 무교, 즉 '종교 없음'이라 답하고 있으며, 대세를 점유하는 종교 없이 오랜 시간 신앙적 전국시대, 종교적 군웅할거의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그건 근현대사 속에서 비정상적으로 폭발했던 개신교 증가시기에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은 스리슬쩍 종교적인 나라이기도하다. 열혈사제, 수리남, 더 글로리 등 유명세를 떨친 드라마들 대부분은 종교인의 이런저런 모습을 다룬다. 그뿐인가? 사전신고가 필요한 여느 집회와 달리 기도회 같은 종교행사는 그냥 하면 된다. 종교시설에 대한 각종 세제혜택도 많으며, 규모가 큰 곳의 대표는 사이즈에 따라 지역 유지나 국가적 어른으로 대접받는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것이 선하든 악하든 말이다. 쳇 지피티가 웬만한 건 다 설명해 주는 세상이지만, 성인 된 사회, 종교의 전 영역이 비종교화 된 세상, 인간이 마침내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주체적으로 결정하며 삶을 영위하는 시대는 아직도 오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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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및 인권운동, 성/평등 교육 등의 현장 역시 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자! 이번엔 첫 수업 전에 학급별 종교부장(와! 종교부장, 완전 대단하지 않은가?)이 그날의 성서본문을 읽고 다같이 묵상하는 개신교계 남자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 청소년의 성별자기결정권, 임신중지 건강권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름 열심히 설명을 마치고 찾아온 쉬는 시간, 한 참여인이 몹시 예의 있는 표정으로 다가와 질문했다.
귀한 강의 감사합니다 선생님.(무슨 설교 후 인사 나누는 집사님이신 줄!) 그런데 낙태는 살인인데 범죄 아닌가요? 너무 과한 페미니스트들 때문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 아닌가요?
강력한 종교교육과 사회적 남성연대의 결과일 가능성이 커 보이는 그 이에 대해 '으이구 이 눔아! 그리 설명했건만 낙태라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나는 평등과 인권을 제안하는 강사이니 릴랙스! 최대한 차분하게 낙태라는 단어가 가진 문제점과 성관계, 임신과 중지, 출산 등에 대한 당사자의 결정권에 대해 다시 설명했다. 또 설령 페미니스트의 어떤 것이 문제로 도드라지게 느껴진다 해도 그건 그렇게 분노하게 한 가부장적 남성들의 잘못이 먼저이지 않겠냐고도 했다.
또다시 매우 정중하게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뒤돌아서는 그의 옆얼굴에는 풀리지 않은 생각, 바로 인정하기 어려운 답답함 등이 서려 있었다. 그런 참여인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구원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찾아와 대답을 들었지만 끝내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돌아서는 청년을 보며 안타까워하셨다는 복음서 속 주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주님도 못하신 일을 내가 어찌할 수 있으랴만, 물어봐 준 참여인이 고마웠고, 또 한 걸음을 내딛도록 도움을 주지 못함이 무척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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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성/평등 교육계에 개신교 주류 교권세력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그게 선한 것이라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슬프게도 악영향도 그런 악영향이 없다. 그야말로 개악영향!
먼저는 집단민원, 성/평등 교육현장이면 그것이 학교든, 시민사회단체든 가리지 않고 던져대는 민원폭탄은 다음과 같다.
왜 양성평등이라 하지 않고 성평등이라 해? 동성애 옹호교육이야?
강사가 성소수자 지지자라던데, 그거 동성애 옹호교육이야?
아니, 애들한테 섹스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했다고? 그럼 동성애도 된다 하겠네? 그거 동성애 교육이야?
이들은 모두 고대나 고려시대 가요의 계승자들인 것일까? '아으 다롱디리'나 '경기어떠하니잇꼬' 같은 반복 어구라도 되는 듯, 천편일률적으로 동성애 혐오를 외치는 그들은 신앙적 사명감을 라임이 살아있는 샤우팅에 담은 민원전화를 멈추지 않는다. 교육현장을 위협하는 시위도 마다치 않는다. 이런 일을 한 번 겪은 단위는 대부분 같은 교육을 다시 추진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다.
최근엔 이런 민원이나 시위를 넘어 아예 청소년 성교육 현장에 등판하고 있다. 혼전순결, 낙태금지, 성평등 반대, 성소수자 혐오 등과 같은 수구 개신교계의 이념을 배경으로 세운 단체들이 지자체에 입김을 넣어 기존의 청소년성/평등교육을 담당하던 지역별 청소년성문화센터의 위탁을 빼앗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들은 점차 전국단위청소년성교육의 내용과 운영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걱정이 크다. 아니...빡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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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이전, 종교는 삶의 거의 전 영역을 지배했다. 중세유럽의 경우, 태어나면 교회에 등록하여 신자가 되었다. 국민국가의 출현이전, 국민이나 소위 민족개념 이전에 교적이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근대 이후, 합리적 사유와 기술문명의 발전은 종교적 언어를 비종교화 했다. 신께서 좌정하신 하늘이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매일 움직이는 것이 진리를 대체했고, 두려움에 떨려 제사를 드리던 일식과 월식은 이제 초단위로까지 예측이 가능한 기술의 영역이 되었다.
종교가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주어야 한다는, 이른바 사회적 강박에 사로잡혀 있을 때, 교회는 역사적으로 유색인과 여성을 백인남성보다 저등한 생명체로 치부했다. 또 수많은 이익을 위해 벌인 전쟁에 대해 십자군 성전(聖戰)이라는 칭호를 하사했다. 제국주의의 침략을 선교로 포장하고, 성소수자와 유태인에 대한 나치정권의 학살을 교회의 이름으로 지지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어떠했는가? 용서를 설교하며 일제를 받아들이라 강조했던, 독재정권의 악행을 외면하고 저항하는 이들을 몰아세운 것을 정교분리(政敎分離)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하지 않았던가?
이제 그 같은 길을 걸었던 한국개신교의 주류교권세력이 극단적 교인감소, 내적 분열 등의 위기극복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성소수자, 외국인노동자, 이슬람과 같은 이웃종교 등과 함께 성평등 이슈를 신의 이름으로 붙잡으려는가 보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제 아무리 거세게 외치고, 또 밀어붙인다 해도 와야 할 세상은 오고야 만다. 갈릴레오를 겁박해도 천동설은 역사적 해프닝이 되었고, 여성의 참정권은 실현되었으며, 사회적 다양성은 사회구성원들의 인권적 가치로 현실화되고 있듯 말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쓸데없는 일들을 중지하시라. 그리고 자신들의 반사회성과 비합리성을 반성하시라. 도저히 그럴 수 없다면 이제 그만 당신들이 금과옥조로 여겼던 불평등의 신과 함께 당신들만의 세상으로 떠나라. 우리는 춤추며 성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