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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필 무렵 - LaGuardia Corner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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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Love chat makes a garden grow", 2023, July. Digital Painting

 

 

날은 더운데 우유, 달걀 또 내가 좋아하는 바나나가 똑 떨어졌다. 지척인 마켓이 가기 싫어 꾸물거리다, 이렇게 속삭여 본다. "장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마켓 옆 가든에 꽃구경 가는 거야" 그제야 호기심이 발동해 도파민이 샘솟는지, 장바구니를 들고 길을 나선다. 가든까지는 반 블록을 더 가야 하는데 꽃향기가 솔솔 느껴진다.

 

동네 Morton Williams 슈퍼마켓에 벽화가 있는데, 한때 그리니치 빌리지에 살았던, 작가, 예술가, 가수들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 위로는 조앤 바에즈(Joan Baez)와 밥 딜란(Bob Dylan)도 보인다. Joan Baez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전에 한국 갔을 때 택시에서 친숙한 음악이 나오는데 택시 기사가 그 가수의 왕팬이라고 하면서 가수 이름을 대면 택시요금을 공짜로 해주겠다고 했는데, 맞추지 못한 이름이다. 가수이자 인권, 반전운동가이기도 한 조앤 바에즈, 아직도 벽화를 지나가면 그때 기억을 되뇐다.

 

https://www.youtube.com/watch?v=1ST9TZBb9v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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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코너에 가늘고 긴 커뮤니티 가든, LaGuardia Corner Garden이 있다. 이 정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곳에 가면 마치 내 집 정원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뉴욕시에 쪼그만 땅뙈기를 얻어, 제집 마당을 가꾸듯, 사람들이 정성껏 가꾼 손과 마음이 보인다. 정원사들이 와서 깨끗하게 정돈해 놓은 공원과는 사뭇 다르다. 뭔가 서투르지만 마음을 끄는 정원이다.

 

느즈막까지 정원일을 하던 제프리가 정원의 역사를 이야기해 준다. 1981년, 자원봉사자들로 시작된 커뮤니티 가든에 그는 유일하게 남은 원년 멤버라고 한다. 그때는 Crab apple 몇 그루가 있던 헐벗은 땅이었는데, 지금은 빼곡히 심은 가지각색 꽃 사이로, 벌 나비와 새소리를 도시 사거리 코너에서 들을 수 있게 탈바꿈시켰다.

 

올해부터는 멤버가 없어도 매일 문을 열어 놓고 가든을 개방하기로 했다고 한다. 입구에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벤치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팬데믹 이후 동네 공공 도서관에도 화장실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고 못쓰게 하고, 교회들도 주중에는 문을 닫아 놓는 실정인데 뜻밖이었다. 제프리는 이곳을 가꿀 수 있는 것만도 특권인데, 사람들이 꽃을 따고 망쳐 놓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고라도, 사람들이 이곳을 즐겼으면 한다고 한다.

 

그리니치 빌리지로 이사와 동네 이웃을 사귀기 힘들었는데 이곳에서 이웃들을 만나니 좋다. 타이치 클래스에서 만난 마시아는 정원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꾸다, 클래스에 종종 늦게 나타나곤 한다. 어린 딸 둘과 함께 정원을 열심히 가꾸는 동양인 엄마도 대견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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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은 매일 꽃을 배경으로 사람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려놓는다고 하면서, 선글라스 끼고 모자를 써 신원을 알 수 없는 나를 한 컷 찍었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꽃이 hollyhock이라고 보여주었다. 우리에게는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으로 친숙해진 꽃이다. 키가 껑충 울타리 너머로 올라오고 울타리 밖으로 얼굴을 "까꿍"하고 내미는 것을 보아 호기심이 많은 꽃인 것 같다. 빨강, 분홍, 하얀색으로 무궁화와 얼핏 꽃 모양이 비슷하다. 잎사귀도 손가락처럼 갈라지고, 단단한 가지엔 솜털이 나있다. 그 여인은 오하이오 할머니 댁에 이 꽃이 많아 어렸을 때 발레리나라고 이 꽃으로 인형을 만들어 놀았던 기억이 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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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0m4ADnfu91k

 

 

나도 이 가든에 오면 어렸을 때 집 마당이 떠오른다. 마당에서 흙을 파고 구멍을 만들어 예쁜 꽃들을 넣어서 유리 조각을 올려놓고 텔레비전이라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보라색 제비꽃 씨앗이 옥수수라고 하고 개미들을 잡아 불고기라고 하고, 친구는 개망초로 달걀프라이와 개여뀌로 밥을 만들면서.

 

언젠가 정원이 생기면, 나의 정원에 이런 꽃들을 심어보리라 상상한 적이 있다. 봄이 오면, redbud(박태기나무), 라일락, bleeding heart(금낭화), Wisteria(등나무), 여름엔 lily of the valley(은방울꽃), 빨간 Bee Balm(비밤), 보라색 Iris(난초), 꽈리, 그리고 향이 좋은 honey suckle(인동초)…

그리고 Labyrinth(래비린스)

 

이제 뉴욕시에 사니 그러한 정원을 가져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내 꿈속의 꽃들이 이 커뮤니티 가든에 많이 있다. 심지어는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래비린스까지도 이곳에 있다. 콘크리트에 파란 칠을 해서 좀 후지기는 하여도.

 

가끔 래비린스를 걸으면서 위로와 인사이트를 받는다.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바로 출구가 있고, 금방 빠져나갈 것 같은 지점에 출구는 멀리 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 같다. 지금 상태가 안 좋고 바닥을 칠 때, 이제 차고 올라갈 것밖에 없다는 희망이 있고, 가장 잘 되고 있을 때 내리막길을 생각한다. 오늘도 장에 갔다 오는 길에 래비린스를 돌았다. 머리에 떠오르는 영감이나 메시지는 없고 땡볕이어서 빨리 나오고 싶었다. 오늘은 꽝이다.

 

어디나 사람 사는 곳, 바로 여기에 잘 찾아보면,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공간이 있는데, 항상 멀리서 헤맸던 것 같다. 라과디아 코너 가든, 파랑새를 찾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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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Pink Orange Hollyhock Plant Flowers", 2023, July. Digital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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