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별72

앞치마 ‘두 번째 지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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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치마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얼마 전 블랙리스트 작성 논란이 있는 모 소설가의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 임명에 작가들이 집단으로 항의 시위를 했다. 그랬더니 홍보대사가 자진사퇴를 했다. 문제제기를 하니 수용된다는 건전한 방식이 이 사회에 존재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일요일에 친구와 ‘두 번째 지구는 없다.-초록별 안녕’몸자보 앞치마를 입고 13.5km 자전거를 탔다.

화요일에 혼자 같은 앞치마를 입고 동네를 중심으로 13.2km를 돌고 오는 동안 지나친 사람들은 채 열 명 정도였다. 

일부러 사람 없는 데를 골라 다니는 듯한 내 행보 끝에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충북 투쟁 선포 기자회견’ 소식을 들었다. 비상사태란다. 그럼 충남은 뭐 하고 있나? 서울·경기는? 경상·전라는? 

그렇다면 나도 건전한 문제 제기를 하나 하고자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고맙게도 탈핵신문미디어협동조합과 반핵의사회에서 발행한 <후쿠시마 오염수의 진실> 소책자를 빌어 내용을 정리해 본다. 

 

1. 후쿠시마 오염수란?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핵연료 냉각수 공급이 끊겨 폭발이 일어났다. 핵연료를 보관하는 원자로 내부의 각종 시설이 파괴되었다. 핵연료의 핵분열은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그래서 핵연료를 냉각시키지 못하면 핵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도쿄전력은 파손된 원자로 내부에 물을 쏟아붓고 있고 여기에 원자로 지하에서 유입되는 지하수까지 뒤섞여 오염수가 만들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은 오염수를 보관할 부지가 부족해서라거나, 앞으로 회수할 핵연료 덩어리를 보관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비용 문제가 가장 크다.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면 육지에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보다 비용과 노력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핵폐기물 해양투기는 환경과 건강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절대로 행해서는 안 되는 조치이다.

 

10개 중 여기까지 쓰고는 멈추었다. 

 

그리고 목요일에 40년 지기 친구들이 왔다. 이사하자마자 일찌감치 하얀 세탁기와 하얀 밥통을 사보내준 친구들이다. 정초면 전화해 지금은 어디에 있느냐고, 오후 네 시만 돼도 위험하니 얼른 들어가라고 하면서도, 수년간 옮겨 다니던 내 거처에 한 번도 와보지 못하더니 이번엔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드디어 왔다. 

초중고를 거치고 이십 대를 지나며 엇비슷하게 자리 잡은 친구들. 한때는 나도 그들처럼 얌전히 살았다. 그러나 지금 확연히 달라진 내 생활에 그들은 묻거나 따지지 않는다. 그저 내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그들은 여느 손님들처럼 내가 요리하는 걸 지켜보지 않았다. 앞치마는 내가 둘렀는데 어느새 그들이 칼과 팬을 쥐고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 두서없고 굼뜬 내 모습에 속이 터져서 가만히 보고 있질 못하는 것이다. 

평소 반찬이라곤 없는 형편에 손님상이 늘 그렇듯이 밥과 고기와 김치와 쌈이 전부인 식탁에 구례산수유맥주와 구례막걸리가 올랐다. 낮술은 생각도 못 하는 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술 몇 잔에 상경 기차 시각을 늦추었다. 

그리고는 내 몸자보 앞치마를 가져가도 되느냐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직접 그리고 쓴 세 장의 앞치마 중 어린왕자와 여우 그림의 ‘초록별 안녕’과 ‘미래 생명을 위한 발걸음’작은 사이즈를 입었다. 

내 몫의 8장 중 두 장은 벌써 주었고 두 장은 임자가 있으니, 작은 사이즈 한 장이 남았다. 먼저 오는 사람이 임자다. 

 

여하튼 우리 셋은 앞치마를 똑같이 입고 치유의 숲까지 걸어갔다 왔다. 중간에 이 동네에서 처음으로 카페에도 갔다. 오는 길에 자동차가 두 대나 서서 우리에게 취지와 소속을 물어보았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와 핵 발전소 인접지역 주민들이 이사도 못 가고 갑상선 암에 걸려서 그들(의 이주)을 응원하고, 자연환경 보호예요. 소속은 없어요.”

 

친구들은 무안할 텐데도 나를 위해 그 앞치마를 입고 만 보 이상 걸어주었다. 

대체 내가 왜 이렇게 고단한 삶을 사는지 말리고 싶을 텐데 그들은 별말 하지 않고 불편한 몸자보를 입은 채 함께 걸어주었다. 진정한 친구란 그런 존재다. 

 

고장 난 걸쇠를 고치지 못해 매일 밤 두려움에 떨 때 와서 고쳐주고, 내가 굶을까 봐 김치와 양파와 죽순을 가져다주고, 어색한 앞치마를 함께 두르고 걷고 자전거 타주는 그런 존재가 내게는 가장 고맙다. 

 

오가는 길에 자귀나무 꽃이 피었다. 통영 박경리 선생님 무덤 앞에도 곡성에도 담양에도 피었던 자귀나무 꽃이 이곳에도 피었다. 나도 친구들처럼 밤이면 자귀나무 잎처럼 꼭 붙어서 자고 싶다. 그러나 이미 그런 생활과는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 내가 바라는 삶과 이상은 괴리가 있는 것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가훈 알아오기 숙제가 있었다. 

욕실에서 빨래하는 엄마 등 뒤에서 그 이야기를 전하고는 가만히 서 있었다. 엄마는 빨래를 하면서 생각하셨나 보다. 잠시 후 뒤돌아보시더니, 

 

“생활은 검소하게 이상은 높게. 어때?”

 

그때 나는 그런 엄마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여느 집처럼 정직, 근면, 성실... 이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이슈가 되는 ‘Plain living, Thinking high’를 40년 전에 엄마는 어떻게 아셨는지 물어볼 수 없다. 그때 엄마는 왜 오늘 왔던 친구가 집에 놀러 왔을 때 커피와 프림과 설탕을 넣은 커피를 타주셨는지, 그렇게 집에 먹을 게 없었는지, 왜 엄마는 그때 집에 내 친구 전화가 오면 존댓말로 응대하셨는지 역시 물어볼 수 없다. 

내 엄마를 기억하는 친구에게 엄마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미 오래 알았고 그래서 서로를 잘 알지만, 또 알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나는 친구들 부모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그들이 자귀나무 잎처럼 포갤 사람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에 혼자 남아 글을 쓴다. 

 

3주 전 다녀가신 막내고모가 기차역으로 가시면서 하신 말씀,

“멋있긴 하다.”

“멋있긴 한데요?”

“멋있긴 한데 외롭겠다.”

“외로움이 너무 깊으면 고독해져요. 그럼 괜찮아요.”

 

나는 괜찮은가? 괜찮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내가 괜찮건 괜찮지 않건 상관없이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는 막아야 한다. 소금 사재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만 안 먹으면 뭐 하나. 바닷속 생물들이 병들어 죽는데. 살생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멀쩡할 거라고 말하지 마라. 

 

방사성 핵종은 ‘다핵종 제거 설비(ALPS)’를 거쳐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녹아내린 핵연료에 직접 닿았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의 종류가 평상시 가동하는 핵발전소 보다 훨씬 많고 독성도 훨씬 크다. 이것이 해양 생물 내에 축적과 농축되면 인체에 섭취됐을 때 DNA 손상, 염색체 이상, 활성산소로 인한 세포 스트레스, 암 위험 증가, 유전자 손상에 의한 자손 세대 영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강 손상을 유발한다. 

대안이 있다. 대형 탱크에 장기 보관해도 되고 모르타르 고체화로 영구 처분할 수도 있다. 일본이 이에 대한 비용만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투기는 국제법상 위반 행위이다. 그럼에도 G7(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국가는 오염수 해양투기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다. 최인접국가인 한국 정부 역시 G7 정상의 입장과 같다고 밝혔다. (이상 '후쿠시마 오염수의 진실'에서)-<2023년 첫 자전거 순례>에도 게재 

 

생명과 바꿀 수 있는 자본의 위력이란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생활은 검소하게 이상은 높게, 

먹고 살 걱정 대신 세계 평화를 걱정하는 내가 외롭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세상은 좋은 세상일 것이다. 

 

“자, 몸자보 앞치마 한 장 남았습니다. 누가 이 앞치마를 받아가시겠습니까?”

 

* 지난 6월의 정원일기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망연자실한 8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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