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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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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 사계고택

posted Oct 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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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일곱째별
발행호수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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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 사계고택 

 

 

비가 철철 오는 날이었다. 

팥거리란 이름이 보이길래 기력을 보충하려고 팥죽을 사러 가다가 이정표를 보았다. 

사계고택. 

고택이라는 단어에 팥죽을 포장해 무작정 가보았다. 관람하기에는 지나치게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고 팥죽이 식을 게 뻔했지만.

 

사계(沙溪)는 조선 중기 문신 김장생의 호였다. 

연산 출신인 그가 말년에 벼슬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살았던 집이 계룡 사계고택이다. 그의 학문은 아들인 신독재 김집과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 초려 이유태 등의 제자들이 계승하였다고 한다. 사계고택은 충청남도 기념물 제190호로 지정되었다. 

 

아담한 왕대산 자락 아래 위치한 고택 대문에는 서예가 여초 김응현이 쓴 ‘沙溪故宅’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비가 커튼처럼 주룩주룩 내리는 대문 안으로 은농재가 보였다. 

은농재 양 옆으로 긴 행랑채가 있었다. 

사랑채인 은농재(隱農齎)는 처음에는 초가지붕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기와지붕이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구성된 건축물이었다. 

 

은농재 오른쪽으로 계단이 있고 은농재와 같은 높이에 소각문(少閣門)이 있다. -그러나 은농재의 계단은 일곱이고 소각문의 계단은 여섯, 문턱까지 일곱이다.- 그 문에서 정면으로 영당이 보인다. 영당(影堂)은 시신을 출상 전까지 오래 모셔두는 곳이다. 당시 왕은 150일, 사대부는 90일 후에 출상하는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분이 행여 살아 돌아오지나 않을까 매장하지 못하고 모셔두었을 터. 죽음은 떠나보내기 힘든 이들에게 건너기 어려운 강이다. 

 

안채 뒤로는 장독대가 있는데 요즘에 설치한 듯 보였다. 그 앞에 꽃무릇 다섯 대가 피어 비를 맞고 있었다. 얕은 담장 뒤로 우람한 나무가 든든하니 좋았다.

 

고택의 좋은 점은 집을 둘러 처마가 있음이다. 땅에서 꽤 올라온 축대 위에 집을 앉히고 지붕은 처마까지 넉넉히 두어 비가 와도 우산 없이 집을 빙 돌아갈 수 있음이 집과 한데에 사이를 두어 매우 여유로웠다. 

집 밖으로는 하인들이 살았을 초가 두 채가 새로 지어져 있었다. 

 

2800평이라고 하나 크게 느껴지지 않는 데다 북동향이라 비 내리는 날이 아니더라도 온기가 흥건하지 않을 듯하다. 낙향해도 임금을 기리는 마음에서일까? 한양을 향해 있는 사계고택은 그리움을 담고 있는 듯했다. 멀리 있던 왕은 신하의 마음을 알았을까? 사계 김장생은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어 문묘에 배향되었다.

 

비가 촬촬 내리는 날 우산을 쓰고 사계고택을 둘러보았다. 

사계고택 밖 오른쪽에 떨어져 있는 효자비까지 보고 왔다. 

 

어둑어둑해져 집에 돌아와 먹은 팥죽은 미지근했고 찹쌀이 아닌 멥쌀을 끓인 죽이라 소문만큼 실하지 못했지만 다른 것으로 속이 든든했다. 눈으로 보고 느낌으로 접한 아련한 고풍스러움이었다.

 

고택이 나를 불렀다. 무모한 개발과 발전에 치여 이제 점점 옛것에 눈이 뜨이는지 발걸음이 절로 간다. 돌담과 나무로 된 창과 마루와 기와지붕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집에 대한 관심이 고택으로 옮겨지는가. 내 것이 아니니 향유할 뿐. 

숨을 은(隱), 농사 농(農), 숨어서 농사지으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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