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순환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생태적인 경제를 찾아서
1. 쓰레기 제로운동과 순환경제
▶2. 경제사상사에서의 순환경제 관념
3. 자본주의 경제는 어떻게 순환과 균형에서 벗어나는가?
4. 인구문제와 경제 그리고 생태환경
5. 대안경제의 추구 1): 공동경제와 경제 민주주의
6. 대안경제의 추구 2): 협동조합과 대안화폐
7. 대안경제의 추구 3): 생태경제학과 탈성장
8. 제국문화에서 벗어나려는 아나키스트의 경제관
9. 생태사회주의의 흐름
10. 한반도에서의 순환적이고 생태적인 경제 발전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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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제사상사에서의 순환경제 관념
경제사상사에서 한 나라의 경제가 어떤 균형적인 재생산 체계를 이루고 투입과 산출의 수지를 도식화하려는 최초의 시도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케네(1694-1774)가 했으며 이는 "경제표"라는 도표로 잘 알려져 있다. 지주와 농민, 제조업자 간에 곡식과 공산품이 어떻게 화폐단위로 계산하여 수수되면서 연간의 순환이 영구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처음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농민들은 소비하는 가치보다 생산하는 가치가 더 많고, 제조업자는 소비하는 가치와 생산하는 가치가 일치하고, 지주는 소비만 하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은 토지라고 할 수 있는 자연에서 공짜로 끊임없이 가치가 흘러나오고 그것을 농민과 제조업자가 노동을 통해 소비할 수 있게 만들고 결국 자연이 무료로 제공해 주는 것에 농민, 제조업자의 노동이 합쳐진 생산 가치를 지주, 농민, 제조업자가 소비하는 균형이 유지된다는 그림이다.
여기서는 모든 생산의 재료가 토지에서 농민을 통해 나오고 지하자원이 채취되지 않고 토지의 지력은 똑같이 유지되어 간다. 쓰레기 문제나 환경오염 문제도 언급되는 바가 없다.
18세기 유럽 사회처럼 그리고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그런 것처럼 산업화 이전의 농경사회에서는 대체로 이런 균형상태의 그림이 맞았을 것이다.
그런데 19세기에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생산을 하는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농지의 지력고갈 문제와 환경오염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 1850년경부터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의 생리구조에 적용되는 물질대사라는 개념이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경우에 사회를 물질대사가 잘 되지 않아서 병이 든 몸으로 보아야 할 정도가 된 것이다. 맑스가 이 물질대사에 주목을 했고 맑스주의를 체계화한 카를 카우츠키는 농촌문제를 분석하면서 이를 명시적으로 이론에 도입한다. 그는 약탈농법을 문제시했다. 이는 리비히라는 농업화학자의 이론에 따른 것이다. 농지의 지력은 무한정 자연적으로 다시 채워지는 것이 아니고 인위적으로 보충되지 않으면 지력이 고갈된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집중하면 분뇨가 하천으로 배출될 수밖에 없어서 이는 환경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놀랍게도 1840년에 발행한 책에서 이미 "영국 대부분의 도시에서 수세식 화장실을 도입한 것은 매년 350만 명에 대한 영양의 재생산 조건이 회복될 수 없이 상실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결국 도시와 농촌의 분리,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농촌에서는 지력이 고갈되어 농업생산성이 떨어져 가고 도시에서는 많은 인구의 분뇨처리를 할 수가 없어서 환경이 오염되는 이중의 문제가 발생하며 이를 물질대사 구조가 깨어진 것으로 해석이 된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인구 백만이 거주하던 1870년대에 대규모 하수관개농장(Rieselfeld)을 조성하여 베를린 시민의 분뇨를 처리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도시와 농촌의 분리로 인한 물질대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런데 현대 경제학 이론을 지금의 모습으로 체계화하기 19세기말의 신고전 경제학자들에게는 이런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의 레옹 발라는 수학적인 연립방정식과 균형개념을 사용하여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시장경제를 설명하는 이론을 정립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그 역시 사회의 여러 경제적 역할 간의 순환 구조를 보여주는 "경제표"를 숫자들을 집어넣어서 제시한 적이 있다. 거기서는 자본재를 인적 자본재, 동산 자본재, 토지 자본재의 세 가지로 구분하고, 그 자본재들의 사용대가를 각각 임금, 이자, 임대료로 본다. 그런데 그 각각은 다시 감가상각비, 보험료 그리고 순(純)대가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임금에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비용, 노동력이 사고를 당하여 상실될 경우를 대비한 보험료 그리고 그 외에 시장에서 결정되는 순임금이 포함된다. 물적 자본재에 대한 이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토지에 대해서는 감가상각비와 보험료를 0으로 가정해 놓고 토지 임대료는 전액이 순임대료인 것으로 취급하는 경제표를 그린 것이다. 토지는 재생산비용이 필요하지 않고, 우발적인 사건으로 가치가 손상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도 배제하는 경제모형을 세워놓은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케네의 경제표가 작성되던 시대에는 그런대로 타당했을 것이지만, 그 이론모형이 나온 1870년대에는 이미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이론모형의 영향으로 20세기의 서구 경제학은 산업에 원재료를 제공하고 식량을 제공하는 자연환경이 아무런 인위적인 보상이나 유지 없이도 끊임없이 재생되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가정하는 체계로 발달했다. 그래서 환경오염과 자원고갈, 농촌토양의 문제를 부수적인 문제로 취급해 왔고, 국가와 금융권에 이런 경제학을 습득한 인력들이 공급됨에 따라 나라의 경제정책과 시장의 경제관념에서도 경제의 물질적 기반이 훼손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크게 인식하게 못하게 된 결과를 초래했다. 1970년대 초에 나온 로마클럽 보고서 "성장의 한계"는 이러한 경제 패러다임에 본격적인 문제를 던진 것이지만 이는 주로 공학, 컴퓨터 모델을 공부한 사람들의 작업결과라서 보수적인 경제학계에 변화를 줄 수는 없었다. 단지 시장경제의 주변에서 시장실패 문제를 다루는 공공경제의 한 분야로서 환경경제학이 시장메커니즘 안에서 조세징수 등을 통해 대증 요법식으로 환경오염을 다루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1990년도에 피어스와 터커의 "천연자원 및 환경 경제학"이라는 교과서에서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는 레온티에프의 산업연관표와 같은 현대의 경제표 개념을 가지고서 경제학 패러다임에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그 배경에는 조제스쿠-뢰겐의 엔트로피의 경제학과 케네스 불딩의 우주선 지구호의 경제학과 같은 것에서 출발한 생각으로서 생태적 한계를 고려한 경제사상이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이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순환경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제1부에서 언급한 것처럼 2003년도에 중국에서 영향력 있는 공학자에 의해 <순환경제> Recycle Economy라는 책이 발간되고부터였다. 이것이 공학자의 개인적인 아이디어를 넘어서 국가의 사회경제 정책으로 검토되면서 중국에서는 맑스의 자본론을 순환경제 사상의 출발점으로 볼뿐 아니라 유물사관과 변증법에 이를 연결시키고, 20세기 후반부터 서구에서 대두된 생태경제의 주요 이론들, 서구의 쓰레기 제로 운동들과 정책들을 모두 포괄하여 순환경제의 사상을 정립하고 이론적인 모색을 하면서 2008년에는 순환경제촉진법을 시행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순환경제 개념은 산업화 이후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야기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물질적 팽창이 인간사회의 기반인 생태계를 위협하여 그에 따른 부정적인 결과가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위험을 초래하는 시대적인 문제의식에서 급속히 여러 나라의 산업환경정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세기의 리비히나 맑스의 기본적인 관점은 이러한 물질수지 내지 물질대사의 불균형이라는 자연과학적 관찰에서 얻은 통찰력으로 경제 자체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었다. 그것은 다시 사회경제 내의 가치문제에서 경제위기와 공황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가 붕괴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이론이 전개된 배경을 제공한다.
<생명의 그물속 자본주의>에서 세계체제론적 시야에서의 자본주의 경제의 생태적인 위험성을 제기한 지리학자 제이슨 W. 무어는 자연생태계 안에 존재하는 인간경제의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순환경제의 개념은 상당히 초기부터 중요하게 인식되었고, 그 인식이 발전될 수 있었으나 현대 경제학이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도외시되었고, 자본주의 체제의 장기적 위기의 원인으로서 생태문제가 전면화됨에 따라 점점 더 중요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 이승무 소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역사적인 관점에서 사회경제와 경제사상을 바라보는 데 관심이 많이 있고, 맑스의 역사관을 발전시킨 카를 카우츠키의 책들을 여러 권 번역한 바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유기체적 관점에서 출발한 순환경제라는 개념이 미래에 요망되는 경제와 경제학을 세워나가는 데 중요하다고 보고 틈틈이 자료를 수집하고 글을 써 오고 있다. 환경정책 중에 폐기물 자원순환 분야 속한 정책연구를 해 오고 있다. (홈페이지: www.cycleconomy.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