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지78

허락하시는 만큼만...

안전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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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결혼 후에 찾아온 연애 감정이었는데 나는 그가 고향 사람처럼 반가웠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집중해서 들어주었고 특히 행간을 알아채는 사람이어서 대화가 편하고 즐거웠다.

 

나는 들이대는 쪽이었고 그는 방어하는 쪽이었는데 사실 그 역할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무모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중으로 포장된 영악함도 있었기에 만일 그가 들이댔다면 내가 방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이즈음에 갑자기 이 오래전 인연을 끄집어내는 이유는 그리워서도, 궁금해서도 아니다. 다만 그가 했던 이 말 한마디 때문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만큼만 해야지'

 

내 인생이니까 내 맘대로 살겠다고 무슨 독립투사 나신 것처럼 소리 질러대는 이 세상에서 그래도 한 발짝만 물러서 눈을 돌려보면 우리는 누군가의 허락하심,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허락하심이 바로 안전지대임을.

 

내가 이 낯선 곳에 들어와 사계절을 두 번 지나면서도 불안하거나 두렵거나 외롭지 않았던 것은, 그러니까 마음 편히 지낼 만했던 것은 순전히 이 허락하시는 만큼이라는 가이드라인 속에서 살고 있는 섬 주민들 덕분이다.

 

 

남겨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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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섬에는 80대 두 분, 70대 세 분, 그리고 60대 막내인 내가 살고 있다. 처음 올 때만 해도 가장 어르신인 80대 할머니가 한 분 더 계셨는데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목포로 나가셨다. 일주일에 세 번 투석해야 하니 더 이상 섬에 있기가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나랑은 한 6개월을 함께 살다 가셨는데 그때 놀라웠던 것은 이들의 반응이었다.

 

나가시는 분도 바로 얼마 전까지 심고 거두고를 평생 할 것처럼 바지런을 떨었지만, 일말의 미련도 없이 나에게 텃밭을 넘겨주고 나가셨고, 보내는 이들도 곧 다시 돌아올 사람처럼 웃으며 손 흔들어 주었다. 모두 다 이곳에서 반평생을 넘게 살아오신 분들이니 삶의 이력은 물론이고 표정만 봐도 서로의 속내를 알 수 있는 혈연보다 더 가까운 사이임에도 이들은 서로 담담했다.

 

지나고 보니 우리는 그 흔한 송별회 같은 것도 없었다. 내가 슬쩍 그 빈자리를 들추며 아쉬움을 털어놓아도 '뭐 인생 다 그런 거지' 하는 달관의 분위기였고 그들이 굳이 아쉬움을 말하지 않는 그 근저에는 '다음은 혹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는 심리적인 채비가 있음을 조금 더 지나 알게 되었다.

 

물론 이 섬이 처음부터 이렇게 대여섯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은 아니었다. 한때는 이곳에 멸치어장이 있었고 많은 배들이 들락거리며 덕분에 부자 동네라는 소문도 들었다고 한다. 초등학교도 있었으니 아이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그 떠남이 언제든 나일 수 있다는 이 현실적 자각이 몸에 밴 것이다.

 

몸이 아프면, (이들에게 몸이 아프다는 건 의식을 잃거나 나 혼자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지금도 늘 몸은 아픈 중이지만 이런 건 아픈 축에 끼지 못하니까) 내가 평생 살아온 이곳, 내 살림살이를 그대로 두고 떠나야 한다는 이 현실을 이들은 잊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는다. 비단 이분들뿐 아니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운명에 대한 실존적 자각은 어쩌면 이 섬이라는 자연이 주는 가장 큰 혜택이고 선물인 것 같다.

 

이들에게는 허락하신 만큼만이 곧 삶의 호흡이고 흐름인 것이다. 그래서 고기를 잡으러 나가서 빈 배로 들어와도 이런 날도 있제, 하며 웃을 수 있고, 비바람이 몰아쳐서 일주일이 넘게 세상과 단절되고 고립이 되어도, 그래서 내가 세운 계획이 부서지고 무너져도 어쩔 수 없제, 하며 순하게 받아들인다.

 

자연에 홀리는 것도 한때임을 나는 이곳에 와서 알았다. 창문만 열면 눈에 들어오는 바다와 대숲 바람과 파도 소리, 날마다 요염하게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했는데, 한두 해 지나다 보니 어느새 시들해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가끔씩만 '어, 그래 너 있었구나, 반가워'하며 영혼 없는 멘트를 날리곤 하는데 대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사람이다.

 

이 분들을 보면 어쩌면 자연 속에 산다는 것은 그저 눈 호강이나 하고 잠깐 바람이나 쏘이며 기분 전환하는 그런 입가심의 차원이 아닌 더 깊은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 자연化 시키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 이곳은 사람에게서도 자연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사람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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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섬에 와서 겨울 동안 매일 마을회관에서 공동식사를 했다. 사실 나는 혼 밥이 편하지만, 원체 식구 수가 적으니, 새침을 뗄 수도 없어서 그저 오라면 가고 먹으라면 먹고 대신 설거지 담당을 했다.

 

살면서 보니 이들이 나를 특별 대접한 것은 아니었고 누구나 오면 함께 모여 밥을 먹는 그저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뻐서도 아니고 좋아서도 아니고 그저 사람이 왔으니, 사람대접을 해 준 것이다.

 

이곳에 한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은 그냥 사람 하나가 아니라 식구가 생긴다는 것이었고 나는 이 공동식사를 통해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그 원초적인 방식의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런 대접을 나는 생전 처음 받아본 것 같았다.

 

가족이니까, 아는 사이니까 혹은 네가 나를 대접했으니 또는 내가 대접하면 너도 나에게 뭔가 해 줄 테니, 그도 아니면 불쌍하니까 한 끼 따위의 이유나 조건이 붙지 않는 이 사람대접이라는 것은 편안했고 신선했고 따뜻한 웃음기가 배어있었다. 그렇게 매일매일을 한 계절이 지나도록 얻어먹으면서도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예전에 어떤 분이 넋두리처럼 하던 말이 생각나는데 자기는 아내가 특별하게 보양식이나 맛있는 걸 차려주면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이거 먹고 얼마나 돈을 벌어오라는 걸까 속으로 생각이 들고 그래서 그는 잘해주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그건 너도 나한테 이렇게 잘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달달하고 은밀하게 엮여있는 거래의 사슬들 없이 그저 사람이 반갑고 그래서 별것이 없어도 있는 그대로 함께 나누자고 청하는 이 사람대접은 어쩌면 사람이 적은 곳, 그리고 시간이 좀 있어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요즘 세상은 돈이 있어야 사람대접을 받는다는데 나는 돈이 없어도 사람 귀한 곳에 와서 사람대접을 받고 산다고 자랑질을 해 본다.

 

 

누구 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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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내일 섬 나가요"

섬에 들어온 지 한 달 반쯤 지나니 뭍에 나갈 일이 생겨서 회관에 들른 김에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할매 두 분이 티브이에 꽂혀서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픽 웃으며 하시는 말씀이 "누구 맘대로?"였다.

 

나는 즉시 정정해서 다시 말씀을 드렸다.

"내일 혹시 배가 들어오신다면 나가볼까 합니다."

"그라~~~제, "

 

그리고 우리는 깔깔 웃었다. 그동안 먹은 짬밥이 있어 얼른 말귀를 알아들은 것이다. 육지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 섬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네 외출 계획은 일단 배가 허락을 해주어야 가능하고 또 그 위에는 누구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 날씨가 버티고 있으니까.

 

어느 날엔가는, 별로 말 수도 없고 그날이 매양 그날인 것처럼 표정 변화가 없으신 교회 집사님에게서 뭔가 들뜬 분위기가 감지되어 물었다.

 

"뭔 일 있으세요?"

"아니 없어라."

"에이~ 아닌디..."

 

집사님은 삐그시 웃으시면서 내일 조도에 나가신다고 했다.

"나가서 이발이나 하고 올라고라."

 

우리 섬에서 조도는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뱃길이다. 직접 배를 운전해서 가면 당일치기가 가능하지만, 우리 섬을 오가는 여객선인 섬사랑 9호를 타면 이틀이 걸리니 사실 이웃집 마실 개념은 아니다.

 

그런데 다음날, 이발은 하고 오셨냐고 여쭈었더니 아니라고 말끝을 흐리셨다.

"왜요?"

"이발을 못 하겠답니다."

"....."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약속 안 하고 가셨어요?"

"했지라~"

 

그런데도 불만이나 아쉬운 표정 하나 없이 그야말로 천하태평 무덤덤한 집사님을 보니 분명 바람을 맞고 오셨는데 마치 바람 쐬고 온 것처럼 느껴져 웃음이 났다. 혹시 사람이 그렇게 물러터져서야, 하실 수도 있겠는데... 그런다고 집사님이 이발을 못 해서 장발이 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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