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서거차도!
우리 섬에서 가장 가까운 섬은 서거차도다. 배로 10분이면 갈 수 있고 또 그곳 사람들도 종종 낚싯배를 타고 우리 섬에 와서 낚시를 하고 간다. 가족 같은 분위기랄까. 모두 다 서로 잘 아는 사이들이다. 언젠가는 그 섬을 바라보다가 차가 다니는 걸 보고 '우와 저기는 차도 다니네.' 하면서 감탄한 적이 있는데 또 그런 나를 보며 혼자 피식 웃었다. 기껏 사람 대여섯 사는 우리 섬에서 볼 때 거기는 도시 같은 착각이 잠시 들었던 것이다. 그 섬을 구경 삼아 두어 번 간 적이 있는데 호감을 느끼게 된 계기는 따로 있다.
어느 날, 세월호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게 되었는데 바다에서 구조된 아이들이 잠시 머문 곳이 서거차도였다고 한다. 그나마 사고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섬으로 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우리 아랫집은 서울 사는 딸에게서 아이들이 바다에 빠졌으니 아빠가 빨리 배를 타고 나가서 구하라는 전화를 받고서야 무슨 일인지 알았다고 했다.
"오메 그날은 참말로 날도 좋았제. 바다는 유리처럼 잔잔하고...."
날도 좋은 그 평화로운 일상에 갑자기 헬기소리가 나고 물에 빠져 홈빡 젖은 채 겁에 질린 아이들이 섬으로 들이닥쳤을 때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집집마다 이불이랑 담요들을 꺼내들고 달려왔다고 했다. 아직 나오지 못한 친구들 걱정에 벌벌 떨면서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담요를 덮어주며 따뜻한 국물이라도 먹이려고 서둘러 불을 지피는 그들에게 .... 네 아이, 내 아이가 어디 있었겠는가. 그냥 다 우리 새끼들이었지.
무엇보다 내가 구출되었다는, 살아났다는 기쁨이나 안도보다도 친구들을 걱정하며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땅히 불행 중 다행이라고 축하해야 할 자리에서 누구도 좋아할 수 없는 비극의 또 다른 현장이었을 그 자리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리의 살아있음을 민망해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서거차도는 아프지만, 마땅히 고맙고 따뜻하게 기억되어야 할 곳이다.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결과를 비록 얻지 못했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더 많은 서거차도가 있음을, 생판 모르고 또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언제든 구조 신호를 보내주고, 맞아주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함께 살고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그러하듯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지만 그 한편으로 나는 염치없이 그 덕을 보고 사는 사람이기도 하다. 섬에 들어와 배를 타고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이후에 배 운항 규율이 더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날의 아픔은 아픔으로, 상실로만 정체되어 있지 않고 또 이렇게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섬 주민들의 삶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깨알 같은 인생
"나 시집올 때 친정 엄니가 깨를 한 되 주더라고. 이것이 그 깨요"
작년, 가을볕에 깨 타작을 하면서 할머니가 해주신 말씀이다.
"옴마나, 족보 있는 깨네요. 시집을 몇 살에 오셨어요?"
"스무 살에 왔제. 신랑 얼굴 한번 못 보고"
그러니까 지금 연세가 여든다섯이시니 족히 60년은 넘은 깨다. 거기다 그 엄니 손에서는 또 얼마의 세월을 살다 왔을까.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쓰고 버리는 게 아닌 아끼고 품고 살리고 보존하는 이 생명의 역사가 한 여인의 손길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는 경이로움. 그래 이게 인생이고 삶이지. 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길고 지난한 삶, 돌아보면 고생뿐인 삶이어도 묵묵히 해마다 심고 거두며 식구들을 먹여 살려온 깨알 같은 인생이 여기 있었다. 아무리 세월이 바람 같아서 잡을 수 없다고 해도 이렇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하루, 한 해를 거듭해 살아온 여인의 손길에 생명이 깨 한 톨의 역사로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정작 삶은 우리에게 유명해져야만, 부자가 되어야만, 혹은 꿈을 이루어야만, 이라고 조건을 달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저 아침이면 일어나 이 한 날에 주어진 일을 하고 그 사이사이 이웃들과 다정하게 웃음을 나누고 어둠이 내리면 잠이 드는 한 날, 굳이 이익을 따지고 의미를 셈하지 않아도 삶은 이렇게 우리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 세월을 이어간다.
가끔은 궁금하다. 도대체 삶다운 삶이라는 게 뭘까. 그런 틀을 세우고 우리를 그 안으로 몰아가기 때문에 오히려 사는 게 제 맛을 잃고 힘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이쁘지 않아도, 날씬하지 않아도, 사실은 사는 데 지장이 없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별 볼 일이 없어도 삶은 그 자체로 인생이 된다.
오늘 새벽에 읽은 요한복음 9장에는 한 소경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 하는 일이라고는 길가에 앉아 구걸하는 것이 전부였던 그 사람을 보며 저렇게 밖에 못 사는 것은 그 부모 죄냐, 저 인간 죄냐고 입방정을 떠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셨다. 누구 잘못이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그러니까 그가 소경으로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말이다.
신앙이 내가 보는 관점을 예수가 보는 시각으로 갈아타는 일이라면 이 세상의 인간은 단지 두 종류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사람과 그 일을 나타내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그러니 내 삶이든 누구의 삶이든 언제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그 인생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낼지 좀 기다려주면 어떨까. 한 낱 깨 한 톨도 까막눈으로 시집온 여인의 손에 들려 존재의 목적을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삶의 조각들
<그녀의 조각들>이라는 영화가 있다. 아이를 집에서 자연분만하려다가 아이를 잃게 되는 한 여인의 이야기. 그녀가 자연분만을 원했던 것은 그저 아이가 나오고 싶을 때 나오도록 해 주고 싶어서였는데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영화는 "예상했던 것과 완벽하게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계획과 다른 경우가 생길 수도 있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경우에 대부분 어떻게 반응하고 처신하는지 .... 뿐만 아니라 상실이 상처로 끝나지 않고 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보여준다.
공들인 계획이 어긋나고 소중한 것을 잃게 되었을 때 우리를 찾아오는 감정은 분노와 슬픔일 것이다. 그 분노나 슬픔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그 사람의 깊이가 달라지고 인생의 결이 달라지고 삶의 다음 행보가 달라진다.
"사건에는 원인이 있겠지만 그걸 여기서 찾지는 못할 거예요. 만약 제가 여기서 보상이나 돈을 요구한다면... 과연 그 보상을 받는다고 정말 보상이 될까요? 죽은 애가 돌아오진 않죠. 돈, 평결, 형량 같은 게 뭘 되돌릴 수 있을까요? 아기도 이런 건 안 바랄 텐데요. 제 딸은 그런 목적으로 이 세상에 나왔던 게 아니에요. "
조산사의 죄를 묻는 자리에 증인으로 나온 그녀가 법정에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영화의 시작부터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그녀가 마침내 보여주는 얼굴 가득한 미소와 아름답기 그지없는 마지막 장면들은, 그녀가 세상의 요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답을 얻고 또 삶에게 보상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삶에 무슨 정답이 있을까만, 그녀가 슬픔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 사과씨를 발아시키는 게 있어서 나도 이 봄에 바질이랑 수세미씨를 발아시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