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지80

먹거리 이야기

수제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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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봄 사이, 우리 섬 풍경이다.

강변에 나가 갯바위에 있는 김을 뜯어와 살살 물에 흔들어 김발에 붙여 해풍과 햇볕에 말리면 완전 수제 돌김이 탄생한다. 몇 번 작업하실 때 현장에 따라가서 보고 싶었는데 위험하다고 말리시기도 하고 또 초짜가 따라갔다가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아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겨울바람을 맞으며 갯바위를 오가는 모습만으로도 저렇게 만들어진 김은 얼마를 부르든 절대 비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김발에 김을 붙이는 작업은 평생을 해 오신 일인데도 늘 실패작이 나온다. 두텁게 바르면 김 양이 많이 들어가니 좋을 것 같지만 똘똘 말려서 맛이 없고 또 너무 얇게 바르면 김 모양이 유지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는 그렇게 상품가치가 없는 것들을 먹을 수 있는데 그것도 사실 감지덕지다.

 

나는 김 작업을 하시는 날이면 옆에 앉아 조잘거리곤 하는데 어느 날 물었다.

"이렇게 하는 건 누구한테 배웠어요?"

"뭘 이런 걸 배워. 그냥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응께 또 고대로 하는 거제"

"그럼 이제 이 일은 누가 할까요?"

"누가 이 힘든 일을 하겄능가. 못 배운 우리들이나 미련하게 허고 살았제."

 

이제는 모두 다 떠나서 옆에서 보고 자랄 세대가 없으니 아마 이렇게 수제 김은 막을 내리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마지막 목격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면 비장한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김은 구멍이 숭숭 뚫리고 거칠거칠하지만 굳이 기름을 바르지 않아도 구워서 간장 찍어 먹으면 옛날 생각이 난다.

"아, 어렸을 때 엄마가 김 한 장을 네 조각으로 잘라서 동생들이랑 한 조각씩 나눠주셨거든. 그것도 아끼면서 밥에다 조금씩 얹어먹었는데. 세상에 그 맛이 나네"

신기하게도 누구나 이 김을 맛보면 하는 이야기이다.

 

어떤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는 자연 그 자체이기에 선물하면 인기도 좋고 여기 어르신들에게는 제법 짭짤한 수입원이 되는데 올해는 눈에 띄게 작업량이 줄었다. 수온이 높아져서 그렇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낚시꾼들이 오는 모습도 줄었고 고기가 잡히는 양도 줄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겨울이면 돔 낚시를 해서 회관에 모여 심심찮게 회를 먹었는데 올겨울에는 별로 그런 기회가 없었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 요인으로 바다가 예전 같지 않음을 우리는 이렇게 생활 속에서 실감하며 산다.

 

자급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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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춤을 추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날이 있었다. 모든 날씨들을 다 좋아하지만 그래도 날씨가 춤을 춘다고 느껴진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바다가 하늘보다 더 파랗고 얼굴에 닿는 바람에서는 달디단, 기분 좋은 냄새가 묻어났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바람을 따라 몸을 흔들고 있었는데, 이 자연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아닌 바람에 동조하고 합세하고 있다는 느낌 또한 처음이었다.

 

그날은 모두 외출을 하고 섬에는 여자 셋만 덩그러니 남았는데 나는 우리 벌거벗고 춤이나 추자고 꼬셔댔다. 누구도 그럴 일은 없었지만 나에게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옆집에서는 머위를 삶느라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었고 그 불 위에는 삼겹살이 구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평상에 둘러앉아 이 숯불구이 삼겹살을 상추와 더덕잎에 싸 먹고 수북이 쌓인 머위의 껍질을 벗기며 노닥노닥 하루를 보냈다.

 

누가 먼저 시작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햇빛이 좋다고 하니 이어서 바람도 좋다고, 생선 말리기도 좋고, 머위 말리기도 좋고, 고사리 말리기도 좋다며 깔깔 웃는데. 문득 '나물 먹고 물 마시고'가 떠올랐다. 그냥 그 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먹을 것은 있어요? 마트가 없으면 어떻게 살지? "

다들 묻는 질문들이고 하긴 나도 처음에는 상상이 안 되었다. 일단 파는 곳이 없으니 살 수가 없다는 말인데 그럼 일상에 필요한 먹거리를 어떻게 해결하지?

 

하지만 섬에 들어와 살면서 실감하는 것은 인간의 위대함이랄까, 아니면 생명의 생존력이랄까 사람이 사는 곳은 다 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속도에 문제가 있을 뿐, 그걸 감안하면 살 만하다. 아니 오히려 원시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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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이 없으니 곡식 농사를 짓지는 못하지만 밭농사는 대부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쌀이나 잡곡, 두부, 계란, 콩나물 등등을 빼고는 거의 다 자급자족이다. 사실 계란이나 콩나물도 마트 신세를 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쯤 되었다.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 점심 대접을 받을 때만 해도 집에 키운 닭이 내어준 계란부침을 먹었고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기른 콩나물무침을 먹었으니 말이다. 작년에 김장을 할 때도 새우젓만 장에 가서 사고 나머지는 모두 여기에서, 밭에서 나온 것들로 해결했다.

 

지금도 우리 섬에는 상추와 시금치, 강낭콩, 마늘, 양파가 자라고 있고 또 봄이 되니 모이면 하는 이야기가 뭘, 언제, 어디다 심을까 이다. 여기는 농기계가 들어올 수도 없고, 정작 들어온대도 밭들이 평지가 아니니 그걸 활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은 직접 손으로 그러니까 인간 농기계로 해결을 해야 한다. 사실 나는 잡초 제거를 - 지심 맨다고 하는데 겨울에 해야 하는 것을 여기 와서 알았다. 그래야 잡초 씨가 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겨울에 이미 농사지을 준비를 다 마치고 봄을 기다리는 부지런한 어르신들 덕분에 우리는 올해도 돈이 없어도 굶어 죽지 않는 세상을 살 것이다.

 

그리움을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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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랜만에 정자에 모여 가자미회를 먹었다. 모처럼 고기잡이를 나간 배가 어른 등짝만한 가자미를 잡아온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함께 모여 회를 먹다 보면 언제나 등장하는 메뉴가 있다. 옛날에는! 옛날에는 요 앞에도 고기가 수두룩 했는디...로 시작해서, 옛날에는 저 윗집에 누가... 옛날에는 이러고저러고... 그러면서 다들 웃고, 어느 순간 신이 나서 목소리가 높아진다. 나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지만 그래도 보인다. 이들의 마음에 살고 있는 그리움이.

 

적어도 50년은 족히 함께 살아온 사람들, 그 세월이 보내준 사연을 모두 알기에 이들은 그리움마저 함께 나눠먹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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