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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 그는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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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그는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진 언어의 세계를 떠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옥심의 말이 차디찬 북녘땅에서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독백처럼 들린다. 왜 같은 하늘 아래 그들은 시대의 권력 앞에서 좌절하며 희망과 꿈 없이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만 하나. 그들은 들으라는 대로 듣고, 보라는 대로 봐야 하고, 말하라는 대로 말하며, 작아지고 또 작아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정말 그들의 삶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시대를 잘못 만나서, 아니면 잘못된 선택 때문일까. 김연수의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인 백석을 모델로 그린 이야기다. 1957년에서 1963년 일곱 해의 마지막까지 시인이 북한에서 보낸 삶의 궤적을 작가는 허구와 실재를 버무려 더듬어간다.

 

"마흔 살이 지나면서부터 만사가 허무해졌고, 술이 늘었다. 따져보니 인생은 전반적으로 실패였다. 원했던 삶이 있었는데, 모두 이루지 못했다. 시인으로 기억되지도 못했고,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지도 못했으며, 시골 학교의 선생이 되지도 못했다." 북한에서 기행의 삶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기행은 백석 시인의 본명이다. 그는 일본 아오야마학원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한동안 함흥의 영생고보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했다. 러시아어도 능통해 조선작가동맹에서 통역과 러시아어 번역 일을 하기도 했다. 시인으로서 북한 정권의 사상검열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당이 원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인간형이 되려면 작가는 자신을 속여야만 글을 쓸 수 있다. 한정된 단어와 판에 박힌 표현만이 허용된다. 기행은 주위 사람들이 숙청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위태롭게 자리를 지키지만, 결국 삼수군의 협동조합에 파견된다. 우리가 흔히 삼수갑산이라고 표현하는 북한에서 최고의 오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내겐 백석의 시 만큼이나 그를 따라다니는 '모던보이'라는 수식어가 흥미를 끈다. 훤칠한 외모에 값비싼 양복과 구두를 신고 백석이 지나가면 장안의 여성들 시선은 저절로 그를 향했다고 한다. 시인의 여성 편력도 다채롭다. 백석은 통영에 사는 박경련을 좋아했지만, 친한 친구 신현중이 배신하고 그녀와 결혼했다. 권번 출신 자야와 시인의 불같은 사랑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는 백석의 연인이었던 자야 여사가 경영했던 요정 대원각 땅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 것이다. 그녀는 1944년 무렵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관광엽서의 모델로도 등장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뛰어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던 문경옥은 시인의 세 번째 부인이었다. 백석의 마지막 여인은 네 번째 부인 리윤희로 시인과 여생을 함께했다. 착한 아내와 함께 두메에서 농사지으며 책이나 읽고 살았으면 하는 시인의 바람이 실현된 것일까. 남한에서의 '모던보이'와 북한에서의 '양치기'의 두 얼굴이 도무지 겹쳐지지 않는다. 백석에겐 인생무상이란 말도 사치스럽게 들릴 듯하다.

 

백석은 1996년 1월 여든다섯 살로 생을 마감했다. 김연수 작가가 마지막으로 언급한 1963년 이후부터 시인은 33년을 더 살았다. 알려지지 않은 일곱 해 마지막 이후의 시간이 궁금하다. 문자의 세계를 떠나지 않았던 그가 땅 설고 물 선 삼수에서 견디어 낸 오랜 세월이 믿기지 않는다.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하며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했을까. 시를 쓰지 않고 산다는 것은 시인에겐 죽음을 뜻한다. 시는 백석이 혹독한 인생을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부모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북녘땅에 남는 것은 그에겐 선택 너머 운명이었으리라. 만약 백석이 분계선 너머 남쪽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따라갔다면 그의 삶은 달라졌을까. 잃어버린 천재 시인에 대한 애석함으로 새삼 남북분단의 아픔이 되살아난다.

 

시를 쓰지 않고 자연인으로 돌아간 백석이 말년을 불행하게 살았다고 감히 단정 짓고 싶지 않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는 것. 어떤 시를 쓰지 않을 수 있는 것.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었다." 기행의 독백처럼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살았을까. 비록 백석이 훗날 주체사상 찬양 시를 썼다고 하지만 원망의 마음보다 연민의 마음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일제강점기 시절 주위 시인들이 일어로 시를 발표했지만, 백석은 단 한 편도 일어로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믿고 싶다. 천불이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살길이 열리듯 백석은 끝까지 소망을 놓지 않고 남은 생을 향한 뜨거움을 간직했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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