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느니
돌을 모아들일 때가 있고 그것을 흩어버릴 때가
있도다
웃어야 할 때가 있으나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칠 때도 있도다
때를 아는 사람은 지혜롭다
지혜를 구하는 것은
눈 감고 두 손을 모으는 것
숨결을 고르고 가만히 기다리는 것
나를 버리고
그분 안에 드는 것
시몬이 토마스의 무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작별을 고하는 것이었다.
-견습 수사 시절, 토마스가 가르쳐준 노래유. 그분 말로는 궁벽한 산골 노인으로부터 배웠다고 험서, 참 궁상맞은 음색으루 부르던 기억이 새롭구만.
노래를 마친 시몬은 감회 어린 눈빛으로 제단과 경내를 둘러보고는 부질없는 짓이라는 듯 단호하게 몸을 돌렸다.
-그래 어디로 가시려오?
시몬이 바랑을 들쳐메는 아베스라를 향해 갈 곳은 있느냐는 투로 물었다.
-사막으로 가야지요.
아베스라는 주저 없이 그렇게 말했으나 막연하다는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초원을 떨쳐 나올 때만 해도 사막의 현자를 찾아 나서기만 하면 법력 수승한 도인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신기루를 좇는 듯 허망하기까지 하였다.
-그예 사막 어디엔가 있을 현자를 찾아 나서겠다는 게유?
시몬의 말투에서 허허로움을 감지한 아베스라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하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떠돌던 얘기 하나 가 있소.
한 수행자가 돌덩이 하나를 주워다 숫돌에 갈기 시작했지요. 허구헌 날 숫돌 앞에 앉아 돌을 갈아대는 그를 보다 못한 다른 수행자가 비아냥거리며 물었어요.
'뭐 하는 거냐?'
말없이 제 일만 하고 있던 그가 무심하게 말을 했다지요.
'이 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 거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수행자가 기가 막혀,
'어느 세월에 그 돌덩이가 거울이 된다더냐?'
여전히 숫돌 질을 하던 수행자가 손길을 멈추고 말했지요.
'나도 모르겠다. 거울이 될 수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그럼 너는 헛지랄을 하고 있는 거 아니냐?'
그 말을 들은 돌을 갈던 수행자가 탄식을 하며 말을 했다지요.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 어떻게 거울을 얻을 수 있겠느냐!'
말을 마친 아베스라가 시몬을 바라보니 그의 얼굴이 아주 심란해져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아베스라의 얼굴에 슬그머니 웃음이 번졌다.
바람이 불자 흙먼지가 바람을 타고 상승하고 있었다. 정문처럼 버티고 있는 토괴를 나서며 아베스라는 더욱 애잔해 보이는 언덕 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다시 와 봐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들에겐 깊이 생각하는 행위는 큰 의미가 없었수. 계약을 지키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계명에 따라 사느냐 하는 것이지, 그게 무슨 의미인가를 따지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법이 중요하게 된 거고 권위는 그것에 대한 해석에서 나오게 된 거유. 사실 정통주의자들이 우리 수도공동체를 못마땅해 한데는 사제의 권위를 혈통으로부터 수행 여부로 끌어내린 데도 있었지만, 사실은 그 수행이라는 것이 다만 율법 공부가 아니라 명상의 깊이 그러니까 근본을 따지고 든다는 데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우. 그들은 우리를 소아시아를 배회하던 희랍의 철학자들 흉내나 내는 이교 풍의 얼치기들쯤으로 보았던 게지.
시몬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발아래의 작은 돌 하나를 툭 찼다. 돌은 급한 비탈을 타고 흐르면서 저 아래 아득한 협곡 아래로 웅얼거리는 비명을 끌고 갔다. 조심스럽게 비탈길을 내려가던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몸을 돌렸다.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명상이라는 게 쉽지 않더이다. 처음엔 웬누무 잡생각만 대구빡을 가득 채우던지······ 강원에서 율법 조문을 외우는 건 일도 아니었지. 흐흐흐.
물도 흐르지 않는 계곡에 들어서자 길은 평탄해서 걷기가 한결 편해졌다. 시몬이 돌아서더니 내려온 길을 올려보았다. 그리고는 절벽 중간쯤의 계단참처럼 평평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날, 그러니까 우리 공동체가 형제들 간의 마지막 전쟁이 있던 날, 나는 저곳에 있었수. 절벽을 기어 올라오는 형제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 뜨거운 물을 뿌려댔지.
시몬의 그날은 지옥이었다고 했다. 청춘을 불사르며 닦아온 신심과 인격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더라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건너편 절벽을 보는 척하며 아베스라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 그에게 결정적인 충격을 안겨 준 것은 입회동기생을 밀어 떨어뜨려야 했던 일이었다. 정신없이 돌을 던지고 있을 때, 시몬의 눈앞에 그 동기생의 성난 얼굴이 거짓말처럼 부상하듯 떠올랐다. 거친 절벽을 기어오르느라 찢겨 너덜거리는 손가락에는 피가 엉겨 있었는데, 내뿜는 거친 숨소리에는 악마의 단말마가 섞여 쏟아지고 있었고, 푸른색과 흰색이 뒤섞인 눈빛은 날카로운 표창이 되어 무차별로 쏘아졌다. 며칠을 금식하며 신의 은총을 갈구하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순간 시몬은 극한 두려움과 절망감으로 뒤쪽에 세워져 있던 장대를 들어 그의 가슴에 찍어 밀어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어 아주 느린 그림이 시몬의 망막에 잡혔다. 그의 몸이 부질없이 허공으로 기울어지는 순간에 그 친구는 모든 것을 초탈한 듯 편안한 눈빛으로 시몬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신이 그를 내게 보낸 이유를 아직 못 찾고 있수.
시몬의 목소리는 어느덧 더없이 차분해져 있었다. 그의 망막 위를 흐르던 당시의 끔찍했던 영상은 종료되고, 빈 스크린 위로 잘게 부서진 빛의 단속적인 진저리가 꽤 오래갔다.
-난······, 난 말이유, 친구를 죽인, 살인자유. 아시겄수?
시몬의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지고 있었다. 그 갈라진 틈 사이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픔이 느껴졌다.
초조(初祖)로부터 이어져 온 스승들의 가르침을 체계화하고 교의를 따르는 무리를 조직화해야 한다며 아그레경의 편집을 시도하던 아흐마나를 파문한 아베스라의 스승은, 개인의 자유가 조직에 의해 제한될 수 있으며 의도하지 않은 폭력의 굴레에 빠질 수 있다며 강하게 질책했다. 오래전 초원에 불어닥친 폭력이 앗수루의 병대(兵隊) 조직을 배운 출향(出鄕)부족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초조의 고뇌가 또한 그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어느 한 무리에 몸을 의탁하면 그곳의 정서를 거부할 수 없는 사태를 맞닥뜨리게 된다. 개인이 의도하지 않은 폭력은 무리가 걸어놓은 표제에서 배태된다. 시몬이나 그의 동기 수사가 마주했던 현실은 그들의 작위는 아니었으나 결국 책임과 고뇌는 고스란히 개인에게로 귀결되고 만다는 생각에 이르자, 아베스라는 아주 심란해졌다.
시몬도 아베스라도 입을 닫았다. 그저 걷고 걸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풀풀 일면서 그렇지 않아도 메마른 목이 지레 간질거렸다. 아베스라는 기침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정적을 깨기 싫었던 것인데, 그예 식도의 물기가 순식간에 말라버린 듯 견딜 수 없는 갈증과 칼에 베인 것 같은 기침이 솟구쳤다.
-켁, 켁, 켁!
아베스라가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기침을 해 대자, 시몬이 서둘러 허리춤에서 물주머니를 끌러 아베스라에게 건넸다. 연이은 기침과 재채기로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이 감사의 표시로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기괴해 보였던지 시몬은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푸히히히! 그대의 얼굴에서 아주 난감한 처지에 빠진 신의 모습이 보이오!
-신심 깊으신 시몬님이 그럼 불경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다니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손가락질까지 하며 웃어댔다. 그 웃음소리가 협곡의 양쪽 벽을 때리고 반사되면서 천지를 진동하는 듯했다.
-이제 우리는 불더미를 머리에 이고 갈 것이우. 오늘도 구름 한 점 없구려!
시몬이 손바닥을 펴 눈 위에 차양을 만들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럴 때 햇살은 영락없이 예리한 바늘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허리춤의 물주머니 주둥이에 입을 대고 간단히 입술을 축였다. 그런 시몬을 바라보던 아베스라가 우물쭈물 무슨 말인가 할 듯 말 듯 주저하자, 시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할 말이 있는 게유? 어디 갈 곳이라두 생각이 났수?
시몬의 말에 아베스라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게 아니라 궁금한 게 있는데······.
-아니 뭔디 그렇게 뜸을 들인댜? 물어보슈, 뭐든!
시몬의 속 시원한 응답에 아베스라는 입을 열 수 있었다.
-토마스 수사님의 두루마리를 읽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요. 나중에 문제를 일으킨 그 형제들이 참전한 곳 말입니다. 두루마리에 의하면 신의 도시라 표현되었던데 그게 어디죠? 처음엔 예루살렘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 측면에서 아귀가 맞질 않더군요.
-예루살렘일 리가요? 그 먼 곳일 리가 있겠수? 게다가 당시 그곳은 폐허, 아니 이렇게 말하면 그곳에 살던 이들에게 실례네, 어쨌든 그곳은 파괴된 성소요 사제들도 없던 곳인데.
-그래서 말입니다. 유다인들에게 거기 말고 또 다른 신의 도시가 있었다는 건가요?
-에레츠!1)
-뭐라고요?
-바빌로니아에 끌려온 유다인들이 고통스러워한 것은 성전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부재였수. 공간이 주는 안도감이라는 게 있잖우? 상징적이라 할지라도 물리적 공간의 부재가 주는 박탈감의 크기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라우. 더구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에서는.
키루스가 제국을 압박하여 들어오자 바벨론의 통치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유다 공동체에 대한 압박도 조금 느슨해졌다. 그 무렵 바벨론의 유다 지도자들은 성소를 갖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시온이 아닌 곳에 성소를 갖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겨 끝까지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귀환하는 날까지만 유지한다는 조건은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을 떠올렸다. 바벨론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비밀리에 사제와 서기관들을 보내어 옛 기록에 부합하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곳을 에레츠라 불렀수. 아무것이 없어도 좋았다고 당시를 회고하던 전승들이 지금도 불리고 있지. 그냥 마음 둘 곳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던 게유.
키루스가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고 모든 민족에게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포용정책을 펴자, 과장 섞인 표현이라고 애써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에레츠는 작은 예루살렘이라 불릴 수 있을 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유다인에 대한 키루스의 예루살렘 귀환 허용 이후, 페르시아에 남은 사제와 서기관들은 회당중심의 새로운 신앙공동체 운동을 펼쳤기 때문에 에레츠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졌지만, 여전히 페르시아의 유다인들에겐 고향과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 문제가 생긴 것은 크세르크세스 치세 때였다. 바빌로니아에서 반란이 일어나 제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진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반란군의 일부가 에레츠가 있는 우르를 접수해 버렸다. 몰락한 지방의 소읍이어서 페르시아에서는 별 신경도 쓰지 않다가 아무래도 성가셨는지 진압군을 보내었는데, 많은 유다인들이 페르시아군에 합세하여 싸웠다. 에레츠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절벽공동체의 참전파들도 그때 무기를 든 것이었다.
-마침 바빌로니아의 반란군이 무참히 진압되자 우르의 반군은 그야말로 결사 항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우. 크세르크세스왕이 아주 무자비했거든. 그러니 전투가 치열해져 참전 수사들의 피해도 컸던 게유.
시몬의 얘기를 들으면서, 아베스라는 스승이 왜 그렇게 아힘사(ahimsa)2)를 힘주어 말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힘사는 다른 생명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자신을 살리는 일인 것이다. 아! 전쟁에는 영웅이 없다. 제아무리 뛰어난 전과를 올려 뭇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사람일지라도 찢기고 부서져 조각난 영혼을 어쩌지 못하여 짐짓 과장하고 허세나 일삼는 환자가 있을 뿐이다. 폭력은 타인이 아니라 그것을 저지른 사람의 인성과 신성을 파괴한다. 신의 도시를 지키겠다고 나선 수도자들도 전장에 선 그저 피아를 구별하는 단순한 판독기가 될 뿐이다. 거기서 신의 음성을 들을 수는 없는 것이다.
-뭘 그리 골똘히 생각허슈? 내가 주제넘게 그대에게 권면하자면 사막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타락해 가는지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라는 거외다. 인간을 알지 못하고 신을 만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알지 못하면서 의와 구원에 이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우. 신은 인간이 꾸는 꿈을 통해 그에 걸맞은 개입을 하신다우. 그 이상을 보여주시진 않는단 얘기유. 인간 너머의 꿈을 꾸는 사람은 초월자이면서 가장 낮은 자, 한 마디로 외로운 사람이지. 우히히, 주제를 한참이나 넘어가는 얘기를 허고 보니 대구빡이 다 아프네. 사램이 지 주제를 잘 지켜야 허는 건디. 그건 그렇고 아오슈나르(Aoshnar)란 사람을 한 번 만나 보슈. 좀 괴짜이긴 허지만 괜찮은 인간이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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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브리어 '에레츠(ארץ)'는 '땅'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땅, 하나님이 지으신 땅이다. 의미가 확장되어 고향을 말하기도 한다.
2) 흔히 불살생(不殺生)이라 번역되어 불교와 자이나교의 중요한 교리로 이해되지만, 필자는 아리안 공통의 원체험에서 나온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조로아스터교와 베다에서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오낙영(글쓴이,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