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5부터 7월 1일까지 진행된 '압록강-두만강 북중접경 탐방'에서 탐방자들이 경험하고 느낀 바가 담겨 있는 글들을 공유합니다. 탐방 막바지인 6월 30일 주일 오전에 자체적으로 드린 예배의 이소영 님의 기도문과 김영국 님의 설교문, 그리고 이승무 님의 기행소감을 모았습니다.
---------- 주일 예배 기도문 by 이소영 -----------
은혜로운신 주님
우리나라 최북단에서 가장 밀접한 지역 이곳 훈춘까지 우리를 불러주셔서 예배를 드리게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대련에서 이곳까지 이동하는 동안 우리를 돌보신 주님의 손길이 있어 건강하게 여행일정을 보내며 하나님의 놀라우신 창조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곳 어디에도 주님의 섬세하고 따뜻한 사랑이 심겨있고 아름다운 대자연을 보며 주님의 놀라운 솜씨를 만나보고 있습니다.
우리 여정에서 보게 된 항일운동의 역사 속에서 주님의 삶을 거울삼아 독립을 꿈꾸던 열사의 삶이 우리의 마음속에도 깊이 박힙니다.
모진 고난과 핍박과 고문 속에서도 독립을 위해 싸우며 목숨까지 내놓은 열사의 조국애를 저는 절반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아니 어쩌면 식민지현실을 그저 무난하게 받아들이는 가장 비겁한 삶을 살아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뜨겁고 강한 결기로 독립을 꿈꾸며 투쟁했던 열사들 앞에 묵묵히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지금 내 조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참사에 마음을 쓸어내리며 다시 우리도 뜨거운 투쟁할 용기를 심어주시길 기도합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어느 곳이든 주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압록강변 멀리 갈라진 조국의 땅을 보며 분단의 아픈 역사가 이제 끝이 나고 저곳에서 중국땅을 바라보고 싶다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백두산 천지를 장엄한 모습을 바라보며 벅찬 감동을 받았으며 장백폭포의 웅장함에 주님의 놀라운 솜씨에 큰 은혜를 느꼈습니다.
긴 여정의 시간 동안 가는 곳마다 우리가 탈없이 지낼 수 있도록 항상 지켜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비록 현실정치의 부정적인 영향으로 인해 우리가 늘 공안의 감시상태에서 여행을 보내지만 더욱더 통일된 조국이 되길 소망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서로 다른 세대이지만 우리 팀원들이 잘 소통하며 이해하며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이 여행을 은혜 속에서 행복하게 보내게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루가 지나면 다시 비행기를 타고 우리의 생활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마지막 일정까지 저희를 눈동자처럼 지켜주셔서 건강하게 지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여행을 이끌어준 최필수집사님과 운전기사님 그리고 여행사분들에게도 주님의 크신 사랑이 가정과 삶에 늘 머물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처음과 끝이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주일 예배 설교문 by 김영국 -----------
달리다굼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성서 본문은 마가복음 8장 35절부터 43절까지입니다. 교독하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을 계속하고 계시는데,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따님이 죽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더 괴롭혀서 무엇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이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서,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밖에는, 아무도 따라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사람들이 울며 통곡하며 떠드는 것을 보시고,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떠들며 울고 있느냐?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셨다. 그들은 예수를 비웃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다 내보내신 뒤에, 아이의 부모와 일행을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달리다굼!" 하고 말씀하셨다.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거라" 하는 말이다.) 그러자 소녀는 곧 일어나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엄하게 명하시고,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하늘 뜻 펴기, 일반명사로 설교라는 것은 목사가 평신도를 대상으로 일반적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대화가 아닌 이상 설교 중간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고 설교자가 문답형식의 하늘뜻 펴기를 하지 않은 이상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6/25부터 6/29까지 모든 일정을 함께하고 오늘 같이 예배를 드리는 지금 저는 일방적인 설교자 중심의 하늘뜻 펴기가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5일 동안 함께 보고 듣고 느낀 여러 감정과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 여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모두의 마음에 새겨진 어떤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 그 감동, 그 느낌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단어에 응축하시기 바랍니다. 설교 가운데 제가 여러분 모두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첫날 우리는 점심 끼니를 예상치 못하게 거르고 여순감옥에 갔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당하고 처형당한 그곳. 그곳의 사형장으로 올라가던 길을 기억하십니까?
첫날밤 단동, 동쪽을 붉게 물들인다라는 모택동의 의지가 서린 그 땅에서, 늦은 밤 압록강 강가를 걸으며 강물에 손을 담그며 왜 우리는 감격해야 했을까요?
수풍댐 앞 도도히 흐르는 압록강 강물 따라 유람선을 타고, 가끔은 동포들이 흔드는 손길에 답하며, 뼛속까지 시원한 그 물에 발을 담그고 수풍댐을 만들었던 제국주의 일본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집안의 고구려 유적은 역사교과서에 갇혀있던 우리의 시야를 확 틔워 주었습니다. 백두산 북쪽 능선을 올라 천지를 마주 보고 섰을 때의 그 감동은 다시 생각해도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장백폭포의 장쾌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일제가 설치했던 간도 영사관에 걸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에서 우리 교육의 한계와 협소함에 놀랐습니다. 연길에서만 대항일투쟁으로 목숨을 바친 수천의 인물들 앞에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당시 세계에서 세 번째 크기의 수풍댐을 건설했던 제국주의 일본이지만, 그들이 영원할 것 같았지만, 그 기세와 압제에 굴하지 않고 자주민의 염원을 버리지 않았던 그리하여 대부분 꽃다운 20대 30대에 삶을 마감해야 했던 수많은 젊은이를 앞에서 숙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주시인이 묻힌 곳을 찾아 그 앞에서 함께 추모 기도회를 가진 것은 우리가 세운 계획에는 없었지만 계획의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 또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는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일정 내내 우리를 밀착해 온 중국 당국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우리 차량을 막고 걸어서 이동하라고 요구하였는지 그 의도를 알 수는 없으나 용정 언덕길을 따라 옥수수밭 사이로 걷는 길은 동주 시인을 추모하기 위한 우리의 마음가짐을 준비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일광산에 올라 북녘 남양시를 바라보며 두만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모두의 가슴이 벅차올랐을 것입니다. 이제 여정의 가운데 가운데 각자의 가슴을 울린 사건을, 사연을, 사람을, 지명을 그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모두 가슴에 품은 말씀을 한 마디씩 해주시기 바랍니다. (돌아가면서 말씀을 듣는다)
저는 일제의 간도 총영사관(현재 일본군 죄증(罪證)박물관)에서 보았던 3,234명 연변지역 항일 열사 가운데 꾀꼬리라 불린 12세 소녀의 얼굴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 소녀가 어찌나 노래를 잘 불렀으면 꾀꼬리라 불리었겠습니까? 그녀는 누구의 말을 듣고 항일투쟁의 길, 민족독립의 길에 나섰을까요? 예수가 회당장의 딸에게 달리다쿰이라고 하자 죽었던 것으로 여겨지던 소녀가 일어나서 걸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여정에서 예수께서 소녀에게 말하였던 달리다굼을 들었을까요?
우리에게 달리다굼을 알려주셨다면 우리는 이제 일어나서 어디로 걸어가야 할 것인가요?
압록강 수풍에서 불었던 바람
2,600미터 고지 백두산 천지에서 불었던 바람
두만강 도문에서 불었던 바람
그 차고 시원한 바람에 우리는 흔들립니다. 제국의 힘과 자본의 안온함에 흔들립니다.
고린도후서 8장 9~15절 말씀을 교독하시겠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가난하심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일에 내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지난해부터 먼저 실행하기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원하여 한 그 일을, 끝마치는 것이 여러분에게 유익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일을 완성하십시오. 여러분이, 자원하여 시작할 때에 보인 그 열성에 어울리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 일을 마무리지어야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자기의 형편에 맞게 바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까지 바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그 대신에 여러분을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형을 이루려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넉넉한 살림이 그들의 궁핍을 채워 주면, 그들의 살림이 넉넉해질 때에는, 그들이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하기를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한 것과 같습니다.
지난주 향린과 섬돌의 어린이부가 여름 나들이를 함께 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이 쓴 기도문을 읽고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 더 예쁘게 해 주세요.
겉과 속이 더 아름답길 바랍니다.
하느님 돈 잘 버는 직업을 갖게 해 주세요. 그리고 그 돈을 이웃과 나누게 해 주세요.
하느님 따뜻한 집에서 쉴 수 있어 감사합니다.
또한 소중한 친구들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탐방 소감문 by 이승무 -----------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1일까지 대련에서부터 백두산을 거쳐 훈춘까지 열세 명으로 된 여행단에 속해 유람을 다녀왔다. 나와 아내의 일생에서 처음이고, 나의 경우엔 우리 가까운 일가 내에서는 처음으로 그런 여행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아주 감격스러웠다. 특히 백두산을 참례(參禮)하며 그런 감정을 가졌다.
수많은 중국인 인파와 함께 백두산 북쪽 사면을 차량으로 올랐다. 차에서 내려서도 마치 극장에 줄을 서서 표를 사고 들어가는 긴 줄을 선 인파가 천지(天池)를 보기 위해 촘촘히 언덕을 올랐다. 사람들의 얼굴은 흥분되어 있었고 행복에 가득 차 보였다. 대부분이 나처럼 일생에 처음 백두산을 오르는 사람들이었겠다.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얼굴마다 어찌 그리 행복해 보이던지.
흰 구름 몇 점 외엔 맑고 푸른 하늘 아래서 신비로운 백두산 천지를 보러 온 한국 사람들, 중국 사람들 또 다른 사람들. 그냥 바람 쐬고 놀러 왔다기보다는 신성하게 여겨지는 장소에 마음 한 구석에 쌓아둔 숙제를 풀고 다시 빈 마음 안에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찾아오지 않았을까.
그렇게 그곳에 오를 수 있기까지의 지나온 과정과 인생길에 감사하는 마음을 아니 가질 수 없다. 그리고 분명히 그 산과 그 물은 벅찬 감격으로 좁은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힘을 가졌다. 어느 나라 사람이건 어느 민족이건 상관이 없이 우리는 행복한 삶을 원하고 작은 행복에 감격하며 우리 주변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에 또한 기뻐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렇게 참례를 마치고 설치된 야외 식탁에 모여 앉아 산장에서 파는 컵라면과 소시지 몇 모금의 음료로 점심을 먹는다.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싸들고 온 것을 펼쳐 놓고 시끄럽게 떠들며 게걸스럽게 먹는다. 먹을 의욕과 힘이 더 생기고 들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삶이 기대되는 것이 아닐 수 없겠다.
대자연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이어서 방문한 장백 폭포에서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 엄청난 동력을 가지고 24시간을 쉬지 않고 물을 떨어뜨리는 자연의 발전기다. 이는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강한 에너지를 충전해 준다. 그리고 그 물이 흘러가며 바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과 온갖 동식물들을 살려준다. 이 땅 위의 생명들이 무슨 힘으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산 밑으로 내려가면 일상의 삶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고 저마다의 짐으로 피곤한 것이 보통이다. 부당한 권위와 강제에 짓눌리고 당연히 사람이 누려야 할 자유를 속박하는 제도들이 너무나 많다. 못 가게 하고 못 만나게 하고 귀찮게 만들고 사람에게 굴욕감을 주고....
하지만 지금의 작은 행복을 누리도록 자신을 던져 후손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생각한다면, 이 작은 행복은 작은 것이 아님을 알고 이를 충분히 행복해해야 할 이유가 있다. 또 많은 이웃들과 후손들을 위해 좀 더 큰 행복의 계단에 오를 여건을 마련해 줄 책임도 우리에게는 있다. 그래서 이 여정을 말해주는 나의 키워드는 '행복'이었다.
2024 압록강-두만강 북중접경 탐방
여순박물관(관동군 사령부)
석식 박물관 옆 만두 (교자)
중식 컵라면
1800~1930
선바위, 明東村, 명동학교, 윤동주 생가
1300
두만강공원, 검문 (good c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