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지82

받아들이다 보면

부부의 세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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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께서 배에서 일하시는 게 보인다.

말이 필요 없다. 오랜 세월 함께 일해 온 가락이 있는 것이다. 그저 밀고 당기는 그 움직임이 춤을 추는 것 같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평화로운 풍광이지만

그물을 걷어 올리고 팔딱거리는 생선을 얇고 촘촘한 그물에서 꺼내는 작업은 막상 달려들어 해 보면 만만치 않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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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그저 큰오빠가 그리로 시집가라고 하니, 거기는 나무해서 불 때는 데 아니고 농사도 안 지으니 편하게는 살 거라는 이야기만 듣고 시집을 와서 한평생을 사셨다.

 

첫날밤에 처음 얼굴을 보고 60년 세월을 매일, 매시간을 함께 움직이며 영락 바늘과 실처럼 사신다. 부지런하고 재빠른 여자 권사님과 느리고 살짝 하기 싫은 티를 내며 일하시는 남자 권사님.

 

​때로 마음에 안 들고 속도도 안 맞지만

그래도 맞춰가며 삼시 세끼 함께 드시며 사신다.

 

.......​

 

나는 남편이 평생 백수였다. 그렇다고 놀고먹는 타입도 아니었고 가족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였을 뿐.

 

일을 하려고 해도 매번 할 수 없는 일들에 가로막히고, 생각해 주려고 해도 빈손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나는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오랜 세월을 따로국밥으로 살았다. 그가 사는 세계는 나로서는 종잡을 수 없는 사업의 세계였고 내가 사는 세계는 1+1은 2라는 산수의 세계였다.

 

그리고

그 중간에 놓인 다리가 신앙의 세계였다.

 

​우리가 맞는 구석은 신앙과 교회가 유일했다. 다행인지 뭔지 우리는 어린 시절에 교회에서 만나 교회생활을 같이 해서 공동의 추억과 사람들이 있다.

 

가끔은 이혼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적어도 안 맞는 사람 꼴 보는 마음고생은 안 했을 텐데..... 생각도 해 봤지만 막상 그때나 지금이나 이혼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이런 극과 극,

두 부부가 이 섬에 모여 가끔 예배도 드리고 얼굴 보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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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한날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살아온 부부나, 부부로 엮여 있어도 각자의 삶을 살며, 아직도 '저 인간은 뭐 하며 살까?' 궁금증을 유발하는 우리네나 결국은 사는 게 똑같다.

 

어쩌면 같으면서도 다른

다르면서도 같은 게 부부의 세계는 아닌지.

 

 

섬의 여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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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시작되었나 보다.

온 집안에 눅눅함이 스며들고 반갑지 않은 손님, 지네도 나타난다. 며칠 전에는 밤에 누워 책을 보다가 잠깐 일어났는데, 어머나, 베개 옆에 지네가 있다.

 

만약 불 끄고 자고 있었으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으니 나는 그 후로도 같은 자리에서 세 마리나 더 손가락 굵기의 지네를 잡아야 했다. 암만 생각해도 그동안 물리지 않은 게 오히려 기적이다. 아니 하나님의 돌보심인가?

 

그리고는 오만 정이 떨어져서 침대에서 못 자고 소파에서 자다가 모기장을 주문해서 설치하고서야 그 안에 들어가서 잔다.

 

실정이 이러다 보니 누가 여름에 오겠다고 하면 난감하다. 살아보니 여름의 섬은 사계절 중 가장 불편하기 때문이다.

"왜 하필 여름이야?" 물으면

대답들이 한결같다."

"여름날 섬, 낭만적이잖아."

 

피식 웃지만 이해는 한다. 나도 안 살아봤으면 그렇게 말했을 테니까. 하지만 낭만은 허술하고 겁이 없고 때로 위험하기까지 하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낭만과 멀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뿐일까.

하찮아 보이는 모기도 여기서는 강적이다.

첫여름이 오기 전, 모여 점심을 먹으며 내가 물었었다.

 

"섬에 살면서 제일 무서운 게 뭐예요?"​

"모기"

"예?"

설마 했는데 진짜란다. 그리고 진짜였다.

 

섬마을 모기는 한번 물리면 쓰리고 아픈 게 한 달이 간다. 어쩌다 모기 물린 자리를 슬쩍 스치기만 해도 처음 물렸을 때의 그 통증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주민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

"섬 모기 무서워, 오지 마"

 

섬의 여름은 습하고 뜨겁다. 창문을 열면 습기가 들어오고 닫아놓으면 펄펄 찐다. 긴 하루가 저물어 해가 질 무렵이면 다들 그런다.

"아이고, 인자 불구뎅이가 들어가네.'

 

그 여름이 오고 있다.

이제 이 장마가 지나가면 우리는 미역 작업을 해야 한다. 섬 주변을 배를 타고 돌며 돌미역을 따고, 미역을 간추려 모양을 내고 건조시키는 작업.

 

이번엔 서울에서 교회 청년들이 봉사를 오겠다고 연락이 와서 이런 애로사항들을 설명해 드리고 그래도 좋다면 오시라고 했다. 노인네들만 비글거리는 이 섬에 젊은 기운이 왁자하게 스며들면 덕분에 낭만 한 스푼 먹을 수 있으려나, 하다가도 아니 낭만이고 뭐고 지네 꼴 안 보고 모기한테나 안 물리고 무사히 지나갔으면...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

 

나는 내가 백수의 아내인 것이 부끄러웠다. 그게 내 죄도 아닌데, 내 잘못도 아닌데... 아무리 부부라지만 한 사람의 삶을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또 그 사람 역시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섬 생활 역시도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받아들이다 보면 요령도 생기고, 피할 길도 보이고 지나가기도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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