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순환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생태적인 경제를 찾아서
1. 쓰레기 제로운동과 순환경제
2. 경제사상사에서의 순환경제 관념
3. 자본주의 경제는 어떻게 순환과 균형에서 벗어나는가?
4. 인구문제와 경제 그리고 생태환경
5. 대안경제의 추구 1): 공동경제와 경제 민주주의
6. 대안경제의 추구 2): 협동조합과 대안화폐
▶7. 대안경제의 추구 3): 생태경제학과 탈성장
8. 제국문화에서 벗어나려는 아나키스트의 경제관
9. 생태사회주의의 흐름
10. 한반도에서의 순환적이고 생태적인 경제 발전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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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대안경제의 추구 3): 생태경제학과 탈성장
사람들 간의 경제활동은 기본적으로 계약과 거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렇게 계약과 거래의 상대가 명확히 존재할 수 없으면서 사람들의 생활에 간섭하고 영향을 주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런 것은 사경제(私經濟)의 영역이 아니고 공공경제(公共經濟)의 영역으로 취급된다.
환경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것은 경제활동이란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니고 무대를 이루는 시설과 장치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배경과 주변의 것들이 사람들에게 계약이나 거래를 통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그리고 부정적인 영향들을 준다. 이런 것을 외부효과(externalites)라고 한다. 환경 경제학은 이런 것들을 교환경제 바깥에서 내부의 행위자들에게 작용을 가하는 요인들로 보고 이를 공공 영역의 문제로 다루어 적절한 공공 정책으로 대처하는 데 필요한 논리적인 생각을 펼쳐 나가는 것이다.
생태경제학은 이런 환경경제학과 다르다. 생태경제학은 계약과 거래에 의한 사적인 교환 경제에 대해 주변의 무대장치로 존재하면서 시장에서의 교환거래와는 상관없는 방식으로 개입하는 생태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산과 유통 활동 자체가 물질과 에너지원의 공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라서 생태계는 인간의 재산권 안에 있건 바깥에 있건 상품생산의 원재료를 제공해 주고 버려진 쓰레기와 폐수, 폐가스를 흡수하여 희석시키거나 분해하는, 인간 경제활동의 불가결한 출발점 그리고 (집에서는 화장실에 해당하는) 종착점을 이룬다고 보는 것이다. 지구의 생태계는 고갈되거나 퇴화되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일정 수준의 원재료를 공급할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인간사회의 일정 수준의 분뇨, 오폐수, 쓰레기까지를 분해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대부분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 그리고 물의 순환 그리고 흙에 존재하는 미생물들의 활동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사회의 산업 활동은 16세기 초에 땅 속에 흐르는 지하수를 퍼 올리는 양수기(pump)에 해당하는 기능을 하는 장치를 발명하면서 석탄과 금속광물을 대량으로 지상으로 채굴해 낼 수 있게 되었고, 지하자원을 원재료로 해서 대량으로 상품을 생산하도록 많은 사람들을 힘든 장시간 노동에 견디는 노동자로 만들었다. 1차 산업인 석탄과 금속광물의 채굴과정에서는 노동절약적인 기술혁신은 쉽지 않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과 싸워서 자연을 무력화시키는 투쟁에서는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장치는 별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채굴되고 가공된 원재료를 들여다가 가공하는 공장 환경에서는 계속해서 노동절약적인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노동자들 수에 비해 그들이 작동시키는 고정자본재의 크기 그리고 그들이 처리하는 원재료의 양의 비율은 지난 200여 년의 기간 동안 꾸준히 상승해 왔다.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구가 늘어나는 것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지구상에는 생산시설과 도시의 하부구조를 포함하여 인공적인 시설물들과 소비물자들이 늘어나는 추세가 꺾이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
생태경제학은 지구가 유용한 물질과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능력과 폐기물을 흡수하는 능력 그리고 인간사회의 물질 가공 및 소비 수준 간에 균형이 과연 맞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 균형이 맞지 않고 인간들의 경제활동에서 요구하는 물질량의 수준이 땅의 물질공급 능력을 초과하는 상태가 상당기간 지속된다면, 땅은 거덜 나고 생태계의 생명 부양 능력은 피폐해지고 황폐화가 진행되어 지구상은 사막화 면적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힘든 조건으로 퇴화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고도성장에 의존하는 경제 시스템은 물질공급이 이를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단계를 맞이하게 되고 생태환경이 피폐해지면서 맑은 물과 공기를 무료로 제공해 주는 기능도 점차 줄어들게 되어 파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1970년대 초에 미래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들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지금과 같은 경제 시스템의 작동 방식은 몇십 년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보여준 바가 있다. 그것이 "성장의 한계"라는 로마클럽 보고서다.
그러면 지금과 같은 금융 경제 시스템에서 물질 사용량의 팽창을 통제할 수가 있는가?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차입하려는 기업체들이 많이 있고 금융기관이 기업체에 빌려 줄 수 있는 경영자금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금융시장에서는 수요 공급의 관계에 따라 일정한 이자율이 형성되며 자금을 차입하는 기업체는 약속된 기한에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한다. 갚아야 할 돈에 이자가 포함되므로 투입한 자금의 규모보다 더 많은 매출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물론 이자에는 돈을 떼일 위험의 부담에 대한 보험 비용도 포함이 된다. 그러나 수요 공급의 원리에 의해 그 이상의 순수한 이자를 더한 이자율이 정해지는 것이 보통이라면 이는 규모가 계속 성장하는 경제를 반영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런 성장하는 경제는 논리적으로 반드시 물적인 팽창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생산과정에 들어가는 노동력의 양이 줄어들면서 반드시 물적인 생산수단의 구입가치는 늘어나게 생산수단의 높은 가치는 더 많은 가공과정과 노동력 투입을 반영하고 이는 결국 물적인 원재료의 더 많은 소비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인구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 경제에서는 물론 노동력과 물적인 자본의 대체비용 외에 순이익을 모두 자본가들이 생산에 투자하지 않고 소비한다면 이론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경제는 가능하다. 생태경제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Herman Daly는 존 스튜어트 밀의 고전 경제학에 나오는 stationary state를 재소환하여 steady-state economy를 제창했으며, 이는 쉽게 말해서 성장하지 않는 정태적인 경제 시스템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 시스템은 지금까지 확대 재생산의 방식으로 물적인 팽창을 계속해 온 것이 역사적 사실이며, 물적인 팽창의 속도는 인구증가의 속도를 앞질러 왔다. 이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물질을 가공하여 경제에 투입하려는 방편에서인지 고정자본재와 사회간접자본을 파괴하는 가공할 위력을 가진 무기들을 첨단해서 배치하고 있다. 이론적인 가능성과는 상관없이 이러한 군사주의와 금융경제의 속성은 정태적인 무(無)성장 경제 시스템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과 같은 물적 팽창의 경제는 그 자체가 반(反)평화적이고 반(反)생명적인 경제다. 인공지능(AI)은 높은 노동생산성을 기대하게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과잉투자가 발생할 것이고, 계속되는 혁신으로 교체주기가 빨라지면서 물질과 에너지의 투입을 줄이기는커녕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성장에 대한 강박과 군사주의는 몇 백 년 전에 시작된 서구의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수천 년 전 문명의 시작과 함께 제국이 생겨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문화적으로 타고난 관념 속에 이런 속성들이 심어져 있다고 본다면 탈(脫)성장은 결코 쉽지 않다. 최소한 성장의 강박에 제동을 걸고 화석에너지와 금속 등 지하자원으로 된 원재료의 사용최소화, 군사무기 생산과 수출에 대한 반대의 운동으로 문화적이고 잠재의식 차원의 근원적인 전환의 계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특히나 피상적인 견해에서 값싸고 많은 전기를 공급해 준다는 핵발전의 불가피성에 대한 강변은 성장 중심의 경제 시스템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탈성장의 문화 확산을 위해 생명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범(凡)인도주의적인 사상과 종교, 문학, 예술, 교육 분야에서부터 움직임이 있어야 그런 기반 위에서 정치적인 의제화가 가능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