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무83

아나키스트의 경제관

자연의 순환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생태적인 경제를 찾아서

1. 쓰레기 제로운동과 순환경제

2. 경제사상사에서의 순환경제 관념

3. 자본주의 경제는 어떻게 순환과 균형에서 벗어나는가?

4. 인구문제와 경제 그리고 생태환경

5. 대안경제의 추구 1): 공동경제와 경제 민주주의

6. 대안경제의 추구 2): 협동조합과 대안화폐

7. 대안경제의 추구 3): 생태경제학과 탈성장

8. 제국문화에서 벗어나려는 아나키스트의 경제관

9. 생태사회주의의 흐름

10. 한반도에서의 순환적이고 생태적인 경제 발전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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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국문화에서 벗어나려는 아나키스트의 경제관

 

아나키스트들은 대체로 당사자들이 마르크스주의자들처럼 어떤 특정 이념을 따르는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19세기에는 삐에르 조세프 프루동(Pierre Josephe Proudhon)이 빈곤의 철학으로 알려진 Philosophie de la misère(1846)를 써서 자신의 경제사상적인 입장을 밝혔다. misère는 빈곤으로 번역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극빈의 비참한 상태를 의미한다. pauperism과 동의어다. 말하자면 프루동은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새로 생겨난 극빈계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이 생계수준 미만이 될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그 원인은 생산수단 내지 자본을 독점적으로 소유한 자본가들의 순이윤 때문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생산원가를 제외한 부가가치로 발생된 부분에 대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소유권 이외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잉여가 생긴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리카도의 이론처럼 노동가치설에 기초하여 노동자가 산출하여 노동자에게 돌아갈 몫이 자본가에게 돌아가는 것을 문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임금 수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노동자의 작업환경, 노동시간 등 모든 면에서 노동자가 인간으로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19세기 초반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문제의식과 일치하는 것이다.

 

19세기말의 크로포트킨이란 러시아의 아나키스트는 "들녘, 공장들과 작업장들"(1901)에서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거대한 공장과 분업, 노동의 단순화 경향을 비판하고 도시와 농촌, 농업과 공업의 분리가 물적 풍요를 가져다주었다고 해도 그것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을 피폐해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도 심각한 문제인 것으로 본다.

 

이러한 경제사상적인 경향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자크 엘륄의 기술사회 비판으로 이어지며, 루이스 멈포드는 기술과 도시 문명에 대해 예리한 비판을 가했다. 자크 엘륄은 유럽 재세례파의 아나키스트적인 전통을 계승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학자로서는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와 레오폴트 코르(Leopold Kohr)가 부의 축적과 성장을 추구하는 경제발전의 이데올로기에 경종을 울렸다. 인간의 행복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레오폴트 코르는 Breakdown of Nations라는 책에서 작은 지역 단위로 국가를 해체하자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 머레이 북친의 사회생태학도 아나키즘의 사상으로 대안사회의 질서를 제시한다. 요컨대 아나키즘은 거창한 문명의 진보 이면에서 인간이 과연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실존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질문을 계속 던져오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위계질서로 짜인 사회구조를 해체하고 분권화된 작은 공동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이루어 가야 한다는 주장인 것 같다. 그다음으로 현존하는 사회질서가 거대한 제국의 폭력적인 수단에 의한 지배의 질서인 데 대하여 이에 반대하는 강한 평화주의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 우상 파괴적이고, 기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이상적이고 급진적인 대안을 내세우기는 하지만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누구든 쉽게 부정하기는 어렵다

 

생태적으로는 오랫동안 전해져 오는 생태적 지혜를 되살려서 대자연에 적응하고 인위적인 첨단 기술보다는 자연의 생명력에 의존하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문명에 반대한다.-인간, 생태, 지구를 생각하는 세계 지성 55인의 반성과 통찰"(존 저잔 저, 정승일 역)에는 이런 방면으로 생각해 온 많은 선각자들의 글이 실려 있다. 허먼 데일리가 체계화한 생태경제학도 이러한 근본적인 성찰과 접목된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서양에서 19세기 초부터 일관된 주장을 펼쳐오고 있는 데 비해 학계나 대중들에게서 별로 호응을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톨스토이, 크로포트킨, 간디와 같은 사람들의 국가권력에 비협조하는 고결한 아나키즘이 지식인들의 많은 관심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치열한 전쟁과 현실 정치를 겪으면서 이런 생각들을 관심을 가지고 받아들일 여유가 사회에 없었다. 프루동의 Philosophie de la misère를 비판한 마르크스의 Misère de la philosophie는 아나키스트 경제사상을 논파했다고들 이야기하지만 프루동의 사회경제사상은 상당한 통찰력과 논리를 갖추고 있었고 그의 중요개념들은 레옹 발라를 통해 경제학계에 영향을 미쳤다. 이를 기초로 하여 프랑스 사회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상호주의자(mutualist) 협회가 있어 노동자들의 상호부조와 협동운동을 해 오고 있다. 현대경제학의 시조로 알려진 레옹 발라도 젊은 시절 협동조합 운동에 참여했었다.

 

국가 이전에 그리고 국가권력과 상관없이 오랜 옛날부터 인간들은 자연의 지형적인 조건에 적응하여 삶을 영위해 왔고 자연이 순환하는 계절이라는 시간감각에 맞게 의식주와 관련된 문화를 발달시켜 왔다. 유럽에서 18세기말에 발명된 석탄을 연료로 하는 증기기관에서부터 그러한 시간적 순환 감각이 점차 깨어지고 산업경제가 급성장함에 따라 사람들의 삶에 큰 변화가 닥쳐왔다. 이는 세계적인 분업구조 안에서 펼쳐지는 경제활동의 영향이었고 이 과정에서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국가의 역할이 필수적이었다. 다시 자연의 산과 물로 이루어진 지형에 적응하고 자연의 순환에 맞는 시간관념을 가지고 사는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생명력과 노동자들의 건강을 고갈시키는 기존 방식의 경제성장으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기에 적어도 자연의 지형과 순환의 흐름을 재발견하고 이에 친숙해지는 과정은 길을 잃은 인간을 되찾기 위해 거쳐온 경로들을 확인하는 데서도 필요해 보인다.

 

인간이 살아가는 자연지형적인 환경인 수계(水系, watershed)를 조사하고, 그 안에서의 의식주가 어떻게 영위되어 왔는지에 대한 역사를 밝혀내고, 옛날의 삶의 형태들을 창조적으로 복원해 내는 작업을 권하는 원시반본주의자(primitivists)라고 하는 녹색 아나키스트들이 존재한다. 천문기상이나 지리와 분리된 추상적인 금융 경제 관념만을 가지고서 기후변화시대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가 중심 사고에서 나온 국민경제가 경제성장에만 매몰되고 거대한 기후변화 문제를 외면해 왔다면, 국가 없이 오랫동안 자연 조건에 기대어 살아온 인간들의 역사와 지혜를 되찾는 것은 앞으로도 문화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해 가야 하는 현대인의 정당한 반응이다. 이런 점에서 자연 순환 경제의 감각과 아나키스트의 경제 사상에는 깊은 연결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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