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일행을 기다리느라 수미산 아래 한참을 앉아 있었다.
8세기 석공은 좁아지다 넓어지는 오버행 스타일로 9단을 쌓아 허공에 수미산을 구현하였다.
여름, 소나기 잠깐 사이 푸른 하늘이 언뜻 비치는 소나무 그늘에 앉아 허공으로 창조된 수미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문득 저럴 수가 없다는 생각이 왔다.
돌기둥의 유려함에 매혹당하면 빈 곳에 창조된 수미산을 놓치게 된다.
불국토를 이 땅에 구현하리라 지극정성을 쏟은 그들이 수미산 정상을 저렇게 밋밋한 정방형으로 마감할 리 없다. 왜 저랬을까, 온갖 가능성으로 머리가 혼잡하다.
촌로들에게 부처님의 세상을 온 열정으로 설명하는 해설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70년대 즈음에 해체 대수선하면서 범영루 누각의 높이를 낮췄단다.. 어쩌면 그때..
수미산 돌기둥 위로 팔작지붕이 날아갈 듯하다
천이백 년 전 불국토를 기획했던 사람들은 수미산 위에 부처님의 나라(佛國)를 만들고자 했을 것이다. 빈 곳으로 창조한 수미산 위에 들어선 누각에는 애초 범종이 자리하였다 한다. 그리하여 이름도 수미범종각이었다고..
한여름, 백일몽이 땀으로 젖어가는 등판에 눌어붙어 어서 서늘한 바람을 맞이하러 토함산 석굴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 추신 |
돌아와 1910년대 불국사 옛 사진을 찾아보니 여름 한나절 맴돌았던 생각은 말짱 헛꿈이다. 상부 정방형 석재가 내려앉아 비스듬히 서 있었다. 복원이 허투루 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수미산 꼭대기 모양이 네모라 전승된다니 정상은 화려해야 한다는 나의 고정관념에다 어쭙잖은 미학적 자신감 과잉이 불러온 오류로 결론이 나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