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빗길에 근 한 시간을 달려 그녀를 만나러 갔다.
우리는 초면이었고 나는 그녀의 남편과 먼저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녀는 사람이 지나다니기에 좀 비좁은,
그리 크지 않은 마트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초롱초롱한 눈빛에 활기가 느껴지는 다부진 인상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보면서 왠지 그의 아내는 가녀리고
슬픔이 목까지 차올라 기력 없이 지쳐있을 거라 상상했었는데.
미리 전화하고 갔던 터라 우리는 눈인사를 나누고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함께 밥을 먹으러 나왔다.
그녀가 가자는 대로 차를 몰고 가며 내가 운을 떼었다.
"제가 댁의 남편을 좋아하거든요. 허락받으러 왔어요."
"아, 조심해야겠는데요?"라고 그녀가 말을 받았다.
함께 밥을 먹으며 내가 물었다.
당신에게 남편의 존재는 어떤 의미냐고.
그녀는 든든하다고 했다.
"같이 있으면 온기를 느끼지요."
아, 든든하다니,
예상치 못한 답변에 나는 순간 목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말하는 그 든든한 남편은 버거씨병을 앓고 있다.
그것도 20대 초반에 발병해서 30년 세월 동안을 지내며
이제는 사지가 다 절단되어 병원에 누워있다.
썩어 들어갈 때마다 잘라내다 보니
두 다리는 이미 사타구니에서 한 뼘 정도만 남아있고
팔뚝도 시꺼멓게 뭉뚱그려져 있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사람이 이러고도 살 수 있다는 것에 생명의 경이와 더불어 충격을 받았었다.
그는 매일 고통 때문에 꼬박 밤을 새운다.
말기 암 환자가 하루를 편히 지낼 수 있는 양의 진통제를 맞아도
그에게는 듣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고통과 씨름을 하는 것이다.
이제 또 절단하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남은 부위가 얼마 없으니 수술조차도 못 한다.
그래도 그는 늘 사람을 기다리고 반기고
자기가 날마다 대면하는 그 어둠의 세력과의 싸움을 조롱하듯 들려준다.
비록 혼자 있을 때는 악에 받쳐 몸부림을 치기도 하겠지만
사람들과 있는 동안은 밝은 모습으로 곧잘 웃고 농담을 한다.
나는 힘들고 막막해서 왜 사는지... 싶을 때면
그가 생각나고, 그를 보고 나면
내가 얼마나 엄살쟁인지를 알게 된다.
그 사람을 남편으로 두고 사는 여자는 어떤 심정일까 궁금했는데
든든하단다, 온기를 느낀단다.
한결같이 퇴근하면 병원에 들러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그래도 힘들 때는 어떻게 하느냐 물었더니
빙굿 웃으며 '가끔 동료들이랑 술 마시죠' 한다.
내가 그녀를 보고 싶었던 것은 힘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는데
도리어 내가 힘을 얻고 왔다.
그녀가 기어코 들려주는 양파 한 부대와 함께.
사지가 다 절단되어 누워있는 남편을 든든하다고 말하는 그녀는
오늘 내 완벽한 스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