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후드> 외 5편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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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난해하고 상징 가득한, 그러나 매력적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2023

Metacritic Score - 91

Rotten Tomatoes Score -97


은퇴를 두 번째로 번복하고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10년 전 첫 번째 은퇴번복 후에 만든 <바람이 분다>가 일본 제국주의를 간접적으로 긍정한다는 구설수에 오른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변명 같은 느낌은 준다. 감독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하야오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많은 비용을 들인 영화라고 하는 만큼 기존의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었던 매우 화려한 특수효과를 많이 도입하였다.


주제를 한 마디로 말하라면 히틀러(여기서 상징적으로 일본 천황이 아니라 히틀러 느낌을 주는 것으로 대치한 것은 천황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못하는 일본인의 한계라고 볼 수밖에 없다)가 기획하는 파시스트 사회를 거부하고 사람들 간의 순수한 관계와 사랑에 기반한 사회를 선택한다는 비교적 단순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내용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갖가지 상징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많은 평자들로부터 난해하다고 비판받았고 하야오 감독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라고 할 만큼 스토리가 꼬여 있다.


애니메이션은 기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하야오 특유의 판타지가 아니라 미국 SF영화에서 볼 수 있는 판타지가 많이 섞여 있다. 여러 장면에서 미국 SF영화의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것이 특별한 흠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왠지 좀 낯설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스토리가 난해하고 상징적 장면이 많아서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힘든데, 두 가지만 말하자면 중반에 등장하는 묘지의 정체는 아무런 설명도 없어 그것이 왜 등장하는지 모르겠고, 소년의 방안에 있던 전등에 쓰인 큰 검은색 갓이 전반부에는 등장하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사라지는데 그 이유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하야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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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후드>

- 최소한의 연출로 최고의 영화 만들기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2014

Metacritic Score - 100

Rotten Tomatoes Score -97


영국의 마이클 앱티드 감독은 23살에 영국에 사는 7살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7 Plus Seven>에 담았다. 그 후 56년간 <21 Up>, <28 Up>, <35 Up>, <42 Up>, <49 Up>, <56 Up>, <63 Up> 제목으로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목의 숫자는 등장인물의 나이이다. 모두 같은 사람들을 다루려고 했지만 피치 못해 사람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이 시리즈는 영화 역사상 기념비적인 다큐멘터리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1995년 <비포 선라이즈>, 2004년 <비포 선셋>, 2013년 <비포 미드나잇>을 통해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만남과, 극적인 재회와, 중년의 결혼생활을 담았는데, 이 또한 동일한 배우를 18년에 걸쳐 나이를 들어 가는 모습과 함께, 찬란한 낭만이 어떻게 일상의 삶에서 낡아지는 지를 보여준 전무후무한 프로젝트였다.


링클레이터는 이러한 호흡을 즐기는 듯 <보이후드>는 무려 12년의 촬영 기간을 두고 6살의 아이가 18살에 대학에 들어가는 모습까지를 한편의 영화에 담아내는 놀라운 역작을 만들어냈다. 앞서 언급한 두 프로젝트는 사정에 따라 중단을 해도 관계가 없지만 <보이후드>의 경우는 중간에 그만둘 수가 없는 프로젝트이다. 만약에 중간에 주인공인 어린 남매에 어떤 사정이 생긴다면 낭패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링클레이터의 가장 큰 미덕은 연출의 최소화이다. 유명한 감독일수록 자신의 스타일을 한껏 뽐내기 위해 다양한 기교를 부리거나 자기만의 스타일을 눈에 띄게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링클레이터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게 시간의 흐름을 따라간다. 관객을 매료시키거나 현혹하기 위해 극적인 플롯을 구성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2시간 45분에 달하는 이 영화는 관객이 한눈을 팔지 못하게 붙들어맨다. 대단한 위력이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성장영화가 아니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의 사회상이기도 하고, '어머니 되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버지 되기'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년의 성장 과정이 도리어 특별한 굴곡이 없이 밋밋하게 다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누나 역을 맡은 소녀는 링클레이터 감독의 실제 딸인데, 본인이 영화에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후반에 갈수록 비중이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영화의 제목이 'Boyhood'가 아니라 'Childhood'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성장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룬다기보다는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룬 영화라고 할 수가 있다.


에단 호크는 워낙 링클레이터 감독과 함께 하는 관계이기에 12년간 이 프로젝트를 이어 가는데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어머니 역의 패트리샤 아퀘트도 12년의 삶을 이 영화와 함께 한 것에 찬사를 아끼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영화는 각종 영화상을 휩쓸며 무려 175개의 크고 작은 상을 받았고 까다로운 평론가들로부터도 100점 만점에 100점(메타크리틱스), 97점(로튼토마토)이라는 전무후무한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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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

- 가해자와 피해자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 2023

Metacritic Score - 91

Rotten Tomatoes Score -91


악의 평범성, 악의 일상성 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악에 대한 무감각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떨치기 어려운 악의 유혹은 악의 주체를 타자화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많은 유대인 홀로코스트 영화와 궤를 같이 하면서도 단순한 악의 타자화가 아니라 주체, 즉 내면의 악을 응시하도록 만든다.


이 영화에는 악이 비주얼 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너무나 평화롭고 일상적이며 그저 우리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는 아우슈비츠의 '괴물'을 묘사한다. 영화는 절대로 관객의 감정이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인물에 대해서도 클로즈업이 없다. 그저 냉정하게 지켜보라고 말한다. 끔찍한 악의 향연은 오직 음향 효과를 통해서만 표현된다.


절대적으로 난해한 영화지만 매혹될 수밖에 없는 2013년 영화 <언더 더 스킨> 이후 10년 만에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더욱 문제적인 이 영화를 내놓았다. 이 영화가 문제적인 된 이유는 유대인인 글레이저 감독이 이 홀로코스트의 '괴물'을 현재 이스라엘의 평범한 일상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감독이 분명히 의도한 것이었고, 그것을 수상 소감을 통해 표현하기도 했다. 같은 홀로코스트 수작 <사울의 아들>을 만든 유대인 감독 라즐로 네메스는 이에 분노했지만, 마찬가지로 유대인 감독인 조엘 코엔은 지지를 표명했다.


"손쉽게 희생자들과 동일시하기보다는 우리에게 내재된 가해자와의 유사성을 보는 시도가 필요한 때라고 느낀다"

-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수상 소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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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종사>

- 투자자의 입맛

왕가위 감독, 2013

Metacritic Score - 73

Rotten Tomatoes Score -79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는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왕가위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포스트모던 스타일리스트라고 할 것이다. 사실 대중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다. 그런데 몇몇 영화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까 대중성을 획득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대종사>를 보니까 전에 봤던 영화였다. 그런데 전반부 조금 지나니까 보다가 꺼버린 영화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는 이 영화가 왕가위 감독의 영화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잔뜩 힘이 들어가서 온갖 폼을 다 부린 '빵 조각 쪼개기 무술쇼'를 보고, 그리고 배우라기보다는 인형으로 등장하는 송혜교를 보면서 아이구머니나, 하면서 꺼버린 듯하다.


그런데 전반부가 끝나고 후반부로 끌고 나가면서 전형적인 왕가위스러움이 영화를 채우고 있다. 왕가위의 영화는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다. 어떤 철학적이거나 미학적인 난해함이 아니다. 스토리는 평범하지만 그것을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감추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렇다고 완전히 감추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왕가위 영화는 여러 번 봐야 스토리를 제대로 따라잡을 수가 있다. 그와의 숨바꼭질은 늘 흥미를 자아낸다. 이것이 그냥 장난이 아닌 이유는 왕가위가 영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개척하고 그것을 미학적으로 승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킬 요소를 배치한 초반부는 그런대로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는 후반부는 아무리 생각해도 투자자의 요구에 따라 상당히 잘려나간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종반부에는 갑자기 익숙한 음악이 배경에 깔린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주요 테마이다. 왜 굳이 다른 영화에 사용되어 널리 알려진 그 음악을 사용한 것일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대한 오마주인가? 잘 모르겠다. <화양영화>에 사용된 기가 막히게 절묘한 음악을 떠올린다면 뭔가 촌스럽게 느껴진다.


영화의 중후반부까지는 무술영화치고는 이상하리만큼 클로즈업에 의존한다. 영화에서 배경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블러(Blur) 처리되어 나온다. 배경이 등장하는 것은 오로지 플롯 전환을 위한 설정화면에서 뿐이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 배경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나는 이것이 왕가위 감독의 어떤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1930년대의 중국 무대를 세팅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서 그렇게 한 것인지 모르겠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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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 마이너스 원>

- 일본의 고질라에 대한 집착

야마자키 타카시 감독, 2023

Metacritic Score - 81

Rotten Tomatoes Score -98


야마자키 타카시 감독의 <고질라 마이너스 원>(Godzilla Minus One, 2013)은 고질라 영화의 최고 걸작으로 남을 것이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고질라 영화들은 매우 서툰 특수효과에서 시작되었지만 이 영화는 충분한 최신의 특수효과를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고질라 영화가 몇 편이나 되는지 헤아리기 힘들지만 제법 잘 만들었다고 평가되는 영화만으로도 10편 가까이 된다.


일본 문화가 고질라에 집착하고 또 그만큼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 이유는 태평양전쟁의 패배, 그것으로 인한 가치관의 혼란을 해소시켜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고질라의 탄생을 미국이 태평양의 비키니 섬에서 인류 역사상 가만 야만적인 수소폭탄 실험을 한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일본의 정신을 상징하는 '카미가제'를 부정하면서 시민사회의 성숙함으로 재구성한다.


그냥 한 번 볼만한 영화이기는 하지만 일본 영화 특유의 연기 방식(물론 만화에서 유래한 것이긴 하지만)이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왜 이리 과장된 감정 표현으로 연기를 하는 것인지. 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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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삼각형>

- 너무 노골적인 사회 풍자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 2022

Metacritic Score - 63

Rotten Tomatoes Score -72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깊게 숙고하게 만드는 매우 지적인 영화를 만든다. <더 스퀘어>(The Square, 2017)가 가장 걸작이지만,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Force Majeure, 2014)가 더 큰 인상을 남긴다.


가장 최근작인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 2022)은 칸느 황금종려상 등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받았지만 나에게는 외스틀룬드 감독의 기존의 영화만큼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묘사하는 대상이 구체성을 상실하였고, 현대 사회 일반으로 너무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우화이며 현대 사회의 메타포이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직접적이고 노골적이어서 나의 뇌를 자극하지 못한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이미 나의 뇌에 존재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분 부분 상황의 설정과 탁월한 대사는 외스틀룬드 감독의 놀라운 지적 성숙에 다시 감탄하게 만든다. 그래서 여전히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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