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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동거 일기 - (55편의 동거 일기 중 세 편)

일곱째별의 동거 일기.jpg

 

 

 

동거 첫날

콩이 쾌유 일지-첫날밤

Jun 05. 2024

 

2024년 5월 27일 월 콩이 교상으로 인한 우측 요척골 분쇄 골절 사고와 입원

 

5월 28일 화 콩이 우측 요척골 분쇄 골절 교정 수술, 면회

 

5월 29일 수 면회 못함

 

5월 30일 목 면회

 

5월 31일 금 면회, 패드 100매와 간식 48개 배송

 

6월 1일 토 면회, 켄넬 배송

 

6월 2일 일 병원 전화. 새벽 4시 콩이 정상 대변 봄. 사료 잘 먹고 물 잘 마셔서 수액 끊음.

 

6월 3일 월 면회. 원터치 모기장 배송. 켄넬 조립

 

6월 4일 화 면회. 사료 로얄 캐닌 미니 인도어 어덜트 3kg 배송

 

6월 5일 수 매일 칫솔용 간식 48개 배송, 오후 3시 병원. 퇴원. 동네 병원에서 소독과 동물등록. 모기장 환불

 

사고 후 열흘.

지금 콩이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중문을 열어놓은 현관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도어 in door 생활을 해 보는 콩이. (오늘까지의 첫 병원 생활 말고)

 

올해 쓰지 않기로 작정한 신용카드를 콩이를 위해 과감히 긁었다. 병원 가는 길에 리현이 병원비 송금을 위해 전화했지만, 주말도 없이 일하는 사람의 잔고를 몇 달이라도 비우는 건 미안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한 달이라도 통장 잔고가 그대로일 것이고 그럼 이자가 몇백 원이라도 붙을 터. 내 원칙만 철회하면 다른 사람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그 정도 융통성은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2,850,000원. 지난번 것까지 도합 2,950,000원을 화끈하게 일시불로 결제했다.

월급의 두 배 반이다. 내가 봐도 난 정말 멋지다.

 

콩이를 위한 물품은 모두 후배가 쿠○으로 배송해 주었다. 열악한 배송기사 현실을 아는 그 사이트를 보고 있었으면 나는 검색부터 배송까지 스트레스받을 게 뻔했다. 착한 후배가 콩이 선물 고르는 거 즐겁다며 직장 일하면서 몽땅 해결해 주었다.

 

이틀 전 손걸레로 세차해 둔 차에 후배가 사보내준 켄넬에 넣은 콩이를 조수석에 실었다.

사고 다음 날, 수술한 콩이를 면회하고 돌아와 내비게이션에 이 집을 '콩이네'로 저장했다. 일 년 넘도록 주소를 찍어서 다녔다. 휴대폰에 찍힌 그 주소(주인 연락처)를 보고 수의사가 특별 지인 할인 10%를 해주었다. 우리집이라고 하기에는 우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고 내 집도 아니니 우리집이 아니었다.

 

그 콩이네 이층에 콩이가 들어왔다.

처음이다.

목줄 없이 풀어주었을 때도 아래에서 이층을 쳐다만 볼 뿐. 계단엔 한 발짝도 올라오지 않던 이곳은 콩이에게 출입금지구역이었다. 사실 콩이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내 허락 없이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그런데 콩이는 지금 내 집 현관에 버젓이 엎드려 있다. 물론 켄넬 안이긴 하다. 하지만 헥헥거리는 숨소리 그리고 냄새가 집에 섞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무얼 해 줄 때 차라리 돈을 내는 것이 제일 깔끔하고 쉬운 방법이다.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함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

 

그렇게 큰일을 치르고 한숨 돌리고는, 코르크 마개를 못 열어 담양에서 보내준 모스카토를 못 마시고 대신 청주 북토크 때 받은 컨츄리 캠벨 드라이 와인을 한 잔 마셨다. 축배가 아니라 안정주였다. (이럴 때 차가운 맥주는 체질에 별로 좋지 않다.) 평소에 술을 즐기지도 않지만 혼자서 술을 못 마시는 이유는 밤중에도 무슨 일이 생기면 운전을 해서 나가야 할 텐데 도와줄 아무도 없어서였다. 하지만 오늘은 할 일을 다 했고 더 일어날 일도 없을 듯했다.

눈꺼풀이 내려앉는데도 내가 안 보이면 콩이가 불안해할까 봐 방에 못 들어가고 거실 미니 소파 위에서 읽던 책을 마저 다 읽었다. 딱 잠들면 좋을 이때 굳이 노트북을 켜고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는 이 예측할 수 없이 꼬여 들어 생경한 현실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오늘부로 콩이의 주인이 되었다. 옷고름 자르듯 매정하게 인연을 끊고, 보지도 듣지도 못한 엉뚱한 지역 낯선 집에 와서 콩이를 만났다. 몇 달이 지나도 그대로 비어 있던 집에 넉 달 만에 들어와 일 년 넘게 거의 매일 콩이를 산책시켰다. 따지고 보면 콩이 덕에 내가 산책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주인 없는 집에서 서로를 의지했다.

 

그러다 사고가 났고 하필 주인이 풀어줄 때가 아닌 내가 산책시킬 때였다. 무조건 살려야 하는 생명이기에 애걸복걸 살려냈다. 그리고 이것저것 처리하다 보니 서류가 필요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콩이의 서류상 주인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콩이가 다섯 살이 아니라 일곱 살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동거가 시작되었다. 바로 오늘부터.

선하고 친절한 의사가 신신당부하셨다. 수술 후가 더 중요해서 두 달까지는 절대 안정 실내 사육이 필요하다고. 하는 수없이 콩이는 내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 텅 빈 공간에 개가 한 마리 들어오니 집은 여전히 큰데 하나 있던 공간에 둘이 있으니 꽉 찬다.

콩이는 올라오자마자 오줌을 싸더니 잠시 후 나오려고 발버둥 치더니 대변을 두 번이나 보았다. 고무장갑을 끼고 똥을 집어냈다. 종이 패드를 순식간에 세 개나 갈아치운다. 뭐든지 적고 간소하게 쓰던 생활이 갑자기 휘청댔다.

 

혼자 저녁밥 먹는 게 미안해 중문을 닫고 저녁밥을 먹었더니 비로소 엎드려 조용해졌다.

잠이 드니 코 고는 소리가 코옥코옥 들렸다. 처음 들어본다. 콩이의 코 고는 소리.

 

퇴원 전날 유기농매장에 가서 한두 주치 장을 봐왔다. 한동안 집 안에서 웬만한 걸 해결할 수 있도록. 달걀, 두부, 콩나물, 파인애플, 참외, 완숙 토마토, 국거리와 양념 소고기, 호박, 양파, 당근. 오이, 부추, 대파, 우유. 이 정도면 든든하다. 50% 할인하는 양념 불고기를 뚝배기에 끓여 밥에 얹어 먹었다. 맛은 모르겠고 이렇게 에너지 소비가 많을 땐 단백질 섭취를 해야 한다는 공식이 작동했다. 아프면 콩이를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는 공식 국가자격증을 가진 요양보호사다. 시골 할머니 모시려고 취득했는데 엉뚱하게 개를 돌보게 되었다. 아무렴 어떤가. 성격 아홉 가지 유형 중 내게는 돌봄이 두 번째로 많은 걸 애니어그램 검사로 알고 있다. 누구를 돌봐도 잘 돌볼 자신 있다. 어떻게 보면 변덕이 죽 끓듯 유별난 할머니보다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한결같이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개가 더 나을 수도 있다.

 

12시 간격으로 사료 먹는 걸 병원에서 익혔는지 밤 9시 반쯤 되니 콩이가 요동한다. 사료를 주니 게눈 감추듯 먹는다. 깜빡하고 약을 빼먹어 다시 사료 조금에다 약을 뿌려주지만 허기가 가신 콩이는 도리질을 한다. 하는 수없이 손바닥 위에 사료를 놓고 남은 걸 먹인다.

 

콩이와 동거 첫날.

누군가와 다시 함께 살 수 있을까.

그 첫 시험의 날.

알 수 없이 얽혀 들어오는 인연의 실타래를 가늠할 수 없다.

 

사랑이 죄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이번에도 책임감을 들이대겠다.

그러나 법적으로 얽히는 건 예상도 못한 일이었다고.

그건 얼떨결에 결혼했는데 혼인신고까지 해 버리는 매우 중차대한 일이라고.

그래서 지금 매우 복잡하다고.

그러나 이 또한 또 어떻게 되겠지 하며.

뻑뻑해서 아픈 눈을 껌뻑인다고.

 

 

 

동거 엿샛날

콩이 쾌유 일지-살아가는 조건

Jun 10. 2024

 

08:40 콩이에게 목줄을 해서 안고 바깥으로 나갔다.

모래 위에 소변을 보고는 꼭 앞발로 땅을 헤집으려 해서 목줄을 들어 올린다. 철심 박은 다리에 무리가 가면 절대 안 된다. 남의 밭 배추에다 꼭 소변을 본다. 노지 배추 사시는 분들 꼭 깨끗하게 세척해서 드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오늘 아침은 시원하게 소변 두 번.

 

08:47 바깥에 있는 제 물그릇의 물을 마신다. 내가 스테인리스 그릇을 사다 놓았는데 나중에 집주인이 실리콘 그릇을 사 오셨다. 사용 직후부터 물때인지 시커멓다. 그래도 자기가 쓰던 거니 익숙할 거다. 다시 안고 올라오니 내가 전에 사다 놓은 스테인리스 물그릇의 물을 알아서 마신다.

 

09:00 사료 로열 캐닌을 그릇에 덜어주니 먹지 않아서 내 손바닥에 놓으니 콩이가 먹는다.

딸기잼에 약을 섞어 손가락에 묻혀 주니 핥아먹는다. 아침 임무 완료.

 

수제 요거트가 거품 나고 물과 분리되어 묽고 맛이 지나치게 시다. 종균을 주신 릴리에게 문자로 물어보니 밖에서 이틀 있었으면 종균이 죽었을 거라 하신다. 그리고 한 말씀,

 

'살아가는 조건이란 모든 존재에게 나름대로 중한 포인트~~~^^'

 

17:20 나가고 싶어 하는 표정이라 밖에 데리고 나갔다. 덜 마려운지 두 번 소변.

 

저만치에서 오토바이 탄 남자와 목줄 안 한 시커멓고 커다란 개가 오길래 얼른 콩이를 안고 돌아섰다. 콩이를 안은 내 걸음은 느리고 큰 개도 오토바이도 빨라 어느새 그 개가 가까이 왔고 남자의 오토바이도 다가왔다.

 

"콩이 퇴원했어요?"

"네. 그런데 두 달 간 걸으면 안 되고 실내에 있어야 돼요. 다리에 철심 박아서."

 

시커먼 개는 계속 콩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남자는 "괜찮아요."라고 말했지만 나는 큰 개가 거슬렸다.

 

"얘가 큰 개 트라우마가 있을 거예요."

 

남자는 냉큼 갔고 개도 따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안고 있는 콩이 뒷발이 덜덜 떨고 있었다. 한동안. 집 앞에서 내려주니 제 실리콘 그릇의 물을 마셨다.

상추밭에 월요일에 누군가 하얀 비료를 뿌려주었는데 상추가 죽어가고 있었다. 정읍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상추가 떠올랐다. 그 상추는 밭을 이전해도 잘 자랐는데 얘네들은 비료를 뿌려줘도 죽어가네. 작년엔 상추가 잘 자라서 왜가리네 원도심레츠에도 한 봉지 뜯어다 주었는데 올해는 시원치 않다. 상추 하나 제대로 못 키우면 뭘 키울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콩이 하나 돌보는 것도 벅차다.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상처 부위 소독을 해줘야 하고 발과 넥칼라도 걸레로 닦아줘야 한다. 그리곤 칫솔 간식을 주니 잘 먹는다.

창문을 끝까지 활짝 연 첫날이었다.

 

20:10 콩이가 켄넬에서 나오려고 애를 쓴다. 뭔가 마려운 듯. 철문을 열어주었더니 나와서 착 앉는다. 목줄을 채우라는 표시다. 답답한 목줄을 자청해서 하라고 하다니.

문득 10년 전 썼던 개에 관한 에세이가 떠올랐다. 개와 인간과 신에 관한.

이번엔 순종에 대한 단상이 떠올랐다. 그토록 순종적이라서 사랑받는 개. 순종이 안전을 보장한다는.

그동안 정해진 틀이 싫어 얼마나 자유롭고 싶어 발버둥 쳤던가. 그래서 벗어나면 또 울타리나 품을 그리워하고는. 그랬다. 캔넬 나사를 조이던 날 이 넓은 세상에서 안길 품 하나 없는 내 처지가 울적했었다.

내게 살아가는 조건이란 무엇인가?

책에 늘 사인해 주는 생명, 평화, 자유, 사랑인가? 그걸 모두 갖출 수 있을까?

 

모래더미와 다리에서 되돌아오며 배추밭과 이웃집 담벼락 등에 콩이는 여섯 번이나 소변을 보았다. 밤새 편안할 것이다. 다시 안고 계단을 올라와,

20:25 물을 마시고 로열 캐닌을 손바닥 위에 올려주니 싹싹 다 먹고, 저녁 가루약도 딸기잼에 섞어 스푼으로 주니 안 먹고 손가락으로 주니 핥아먹는다.

저녁 임무 완수.

 

콩이 수술 부위 상처를 소독해 줄 때면 콩이 입김이 내 콧구멍으로 들어온다. 처음엔 힘들었는데 이젠 괜찮아졌다. 몇 마디 할라치면 털이 들어오는지 목구멍이 칼칼하다. 같은 공기를 가까이에서 들숨 날숨하는 콩이랑 나는 밀접하다.

 

20:40 콩이의 일과가 다 끝났다.

그동안 모르고 거실에서 밤늦게까지 형광등 켜놓고 글 쓰던 걸 멈추고 작은 방만 불을 켜고 거실엔 소등해 주었다. 그동안 콩이는 가로등 불빛 정도의 어둠에서 밤을 보냈을 것이다. 지금처럼.

 

동거 6일 만에 우리는 서로에게 적응했다.

 

작가 정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길래 늦은 밤 긴 통화.

일주일 전 안부 문자가 왔길래 설명이 길어 글 'thanks for my love in action'을 보냈더니

애 많이 썼다고. 생명을 살리느라. 자꾸 눈물이 난다더니,

 

'별, 당신은 참

말할 수 없는 '참'이에요

말로 할 수 없는 참이고요'

 

그 문자가 내내 훈훈했는데 전화하는 동안 계속 운다.

코가 막히도록 운다.

생명을 살리고 지키는 일이 그토록 울 일인가.

그렇게 운다.

그게 그렇게 고맙다.

 

 

 

동거 쉰 닷새 날

콩이 쾌유 일지-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밤

Jul 29. 2024

 

새벽에 눈을 뜨니 세 시 반쯤.

쌓인 일이 많아 부담감 때문인지 푹푹 찌는 더위 때문인지 꽤 일찍 깼다.

자정을 많이 넘기기 전에 잔 덕분인 듯.

 

일주일째 몸이 아프다. 지난주 부안 촬영 후 파상풍 예방접종 부작용인지 잠결 선풍기 바람이 몰고 온 감기 기운인지 모르겠다. 개도 안 걸리는 여름 감기라니……. 수건도 몰아서 주 1, 2회 세탁기로 돌리는데 잠옷은 매일 빤다. 땀에 푹 젖은 잠옷을 다음 날 또 입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새벽에 원고 최종 교정 후 송고!

 

07:25 콩이와 산책 겸 소변.

산책길 자귀나무 꽃 한 송이 남음.

콩이는 또 대변.

맞은편 집 아주머니께 인사했더니 나더러 콩이 엄마라고, 주인은 신경도 안 쓴다고 하신다. 주인도 신경은 쓰신다. 다만 연세가 있으시고 시골 분이시니 도시 정서와는 다를 뿐이다.

 

07:54 사료 주니 먹고 조금 남김.

 

다른 원고를 조금 쓰다가 다시 잠듦. 하지만 정오 전에 일어나 고민 고민 끝에 외출 결정. 몸도 아프고 할 일도 태산이지만, 그래도 오늘 해서 죽지 않을 만큼 힘들면 하는 게 낫다.

 

13시 콩이를 밖에 묶어 두고 칫솔 간식 한 개 주고 사료 부어 놓고 출발.

두 시간 거리의 부안 해창 갯벌로 감.

 

15~16:30 새만금 생태계 복원 기원 월요 미사와 뒷정리.

오는 길에 약국을 찾아보았는데 시골이라 약국도 찾아가는 족족 다 문을 닫음. 네 군데째 들러서 5천 원짜리 액상과 알약 혼합 비타민제를 사 먹고 집에 돌아오니,

 

19시. 콩이는 오늘 동거 이래 최장 여섯 시간 동안 바깥에 있었다.

사료는 조금 먹었고 마지막 한 송이 남은 자귀나무 꽃까지 산책하면서 맞은편 집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잘 있었다고 한다.

 

자동차로 퇴근하시던 옆집 아저씨는 미용한 콩이랑 나를 보시더니,

"콩이 호강하네, 호강하네."

거듭 말씀하신다.

그 아저씨는 지난번에도 개도 주인을 잘 만나야 된다고, 그동안 콩이가 똥구덩이에 살다가 평생 최고로 행복해 보인다고 하셨다. 콩이 오기 전부터 그 집에 사셨으니 콩이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바로 옆에서 다 보고 계셨던 거였다.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 다 생각을 하고 있다. 그걸 어떤 식으로든 기회가 있을 때 발설하고 만다.

나는 그 아저씨 덕분에 두 번의 위로를 얻었다. 처음에는 내 마음의 충격과 상처를 염려해 주셨고, 두 번째는 콩이의 실내 생활이 좋긴 한데 답답한 건 아닐까 반신반의하던 내게 '콩이 평생에 최고로 행복해 보인다'라고 단언해 주셨다.

제삼자의 평가가 필요할 때도 있다. 이번 사고와 동거를 통해 나에겐 긍정적인 반응이 매우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부정적인 조언이나 사무적인 평가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콩이는 내가 짐을 가지고 2층으로 올라가니 급한 마음에 남은 사료를 와구와구 먹는다. 콩이는 보통 어디 가려고 하면 남은 사료를 급하게 먹는다. 배가 차야 나가서 활동할 때 좋다는 걸 아는가 보다.

동거 쉰 이튿날째 마지막 X-ray를 찍으며 선물로 최초 미용을 시켜주었다. 사흘 후인 오늘부터 바깥에서 재울까 하다가 모기떼 기승에 털도 없는 얇은 피부가 걱정돼 20시쯤 데리고 들어왔다. 물로 배와 발을 씻기고 키친타월과 드라이기로 말려주고 연고를 발라주었다. 현관에 두었다가 시원한 다용도실로 옮겨주었다.

 

아픈 개한테 북어가 좋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서 주일에 황태채를 사다 놓았다. 외부 생활하기 전에 북어를 고아서 먹이고 내려보내야겠다.

 

*

 

지금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 새만금 가는 길에 문자가 왔다. 보험금에 대한 손해사정내역이었다. 그러니까 5월 27일 월요일 콩이 사고 후 수술한 28일에 사고 현장에 가봤다가 유기견들인 줄 신고했다가 주인이 있는 개인 줄 알게 되었다.

다음 날인 5월 29일, 수술비 마련을 위해 하지 않던 당근에 내 새 자전거 리어패니어 세트를 내어놓자마자 가해 견주 전화가 왔었다. 가해 견주는 운전자 보험 특약 일상배상책임보험에 한도 없이 가입했다고 했다. 알아보니 그 보험에서 자기네 개가 남의 개를 물었을 때 치료비를 배상해 준다고 했다. 가해 견주는 자기 부담금 20만 원만 내면 된다고 했다.

 

콩이가 퇴원하던 6월 5일 수요일, 손해사정사가 찾아왔다. 몇 가지 서류에 사인하자, 나와 콩이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동물 등록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손해사정사는 당장 보험금을 받을 건지 치료가 다 끝난 후 받을 건지 정하라고 했다. 동물병원에 가서 물어보니 통원 치료 후에 받으라고 알려주셨다.

콩이 퇴원하는 길에 동물등록을 했다. 비용은 2만 원이었는데 이 지역에서는 동물보호정책으로 추후에 환불해 준다고 했다. 콩이는 태어난 지 7년 만에 출생등록 아닌 동물등록을 한 셈이다. 나라는 서류상 주인이 생긴 것이다.

 

6월 12일 X-ray를 찍고 발사(실밥 뽑기)했다.

 

6월 26일에 동네 병원에서 X-ray를 찍었다. 그 병원에선 X-ray 자주 찍어서 좋을 것 없다고 한 달 후 마지막으로 찍고 확인하자고 했다.

 

콩이 사고 난 지 두 달 된 7월 26일 금요일, 마지막 X-ray를 찍고 진단서와 함께 청구서 사진을 손해사정인에게 보냈다. 애견용품과 구충제, 사료, 미용 등은 보험 처리되지 않고 오로지 치료비만 청구할 수 있다.

 

오전 10시 반에 사진을 보냈는데 사정인이 오후 3시쯤에 도착했다. 신분증과 통장 사본을 가지고 나가 서류 한 장에 사인했다. 일주일 내로 처리된다고 했는데 주말 지나고 월요일에 벌써 입금이 되었다. 정말 빠르게 처리해 주었다.

 

사고 나던 날, 정신을 차릴 수 없던 그 당시, 항생제 먹여 데려오라는 집주인에게 수술비를 전액 대겠다는 조건으로 콩이 다리 수술을 받게 했다. 동물병원 의사도 가능성 없다던 시골 가해 견주의 배상은 그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

 

20일 전인 동거 서른 닷샛날, 큰고모가 궁금해하셔서 콩이 사진을 한 장 보내드렸더니 문자가 왔었다.

 

'콩이가 편하고 기분 좋은 표정이네. 사람이건 짐승이건 도움과 사랑을 받음은 행복을 느끼게 하겠지? 진실된 베풂은 나에게도 보람을 느끼게 하지.~ 콩이가 잘 회복됨은 너에게도 편안함과 기쁨을 주는 거란다.~~ 그냥 집주인 말대로 했다면 평생 마음의 짐으로 순간순간 괴로움이 따를 거야.~~ 인간 각자의 본연의 숨겨진 마음의 결실이랄까? 네가 바르게 자라서 고모는 참 좋단다!!'

 

나는 '진실된 베풂'을 했을 뿐인데 기대하지 않았던 경제적인 배상을 받았다.

두 달간 꼼짝 못 하고 집에 묶여 있어야 했지만, 그동안 큰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바르게 자랐다는 칭찬을 받았다.

남의 눈에 티라도 잡힐까 봐 안간힘을 쓰고 살았었다. 어디 가서도 꼬투리라도 잡힐까 봐 지레 방어막을 치고 살았다. 그동안 얼마나 긴장되고 힘들었는지 모른다.

남의 개 산책시키다 사고 난 걸 책임진 게 바르게 자랐다는 칭찬을 받다니 정말 감사하다.

때론 나는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하는 점검을 한다. 그런데 내 '본연의 숨겨진 마음의 결실'이 사랑과 박애로 보인다면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순간에 사고 발생한 콩이를 구하고 고친 건 그동안 우리 사이에 쌓인 사랑과 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콩이고 콩이가 나였다고 해도 콩이는 나를 구해주고 고쳐주었을 것이다.

 

콩이는 어느 집에서 이곳으로 팔려와 집주인과 세 번의 세입자를 맞았다. 첫 세입자가 강아지 키우고 싶다고 해서 집주인이 사 오신 게 콩이다. 귀여운 아이들이 살았다던 그 집은 이사 가고, 다음에 살던 사람은 커다란 개를 안고 거실에서 함께 자던 사람인데 그 개를 콩이가 물어서 이사 갔다. 세 번째 만난 나는 혼자인데 콩이만 쳐다본다. 그러니 콩이도 상대적으로 내게 사랑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모두 콩이를 좋아하고 사랑했다. 이번 사고 후 그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감사하다. 콩이는 나 한 사람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멀리서 응원과 마음으로 받았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나로부터의 사랑이 무한대로 퍼져나가는 엄청한 힘. 그 힘을 받아 콩이가 완쾌해가고 있다.

 

이제 오늘 밤이 이 동거의 마지막 날이 될 것이다.

콩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 달간 실내 생활을 해보았다. 나를 보면서 인간이 어떻게 먹고, 얼마나 많이 씻고 청소하고,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음악을 듣고 사는지 처음 보았다.

나도 처음엔 냄새나고 더러워서 힘들었던 콩이와의 동거가 하루 두 번씩 안고 계단을 오르내리니 점점 익숙해졌고, 내가 움직이는 족족 쳐다보는 CCTV 같은 눈길이 부담스러웠던 동거가 콩이가 내려가고 나면 그 미소가 아쉬울 것이다. 현관에 콩이가 버티고 있으니 그동안 잘 때 무섭지 않았다.

 

이제 콩이는 밖에 나가도 2층에서 소리가 들리면 내가 무엇을 하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내가 보이지 않아도 예전보다 더 구체적으로 친근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했다. 그것이 동거다.

아픈 상대를 완쾌할 때까지 책임지고 자립할 때까지 도와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그 사랑의 실천인 동거까지 할 수 있게 해 준 콩이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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