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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빵

압록강 항일.jpg

 

 

지난 6월 말 사회적 협동조합 길목에서 압록강-두만강 북중접경지역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주일을 포함하고 있는 일정이어서 지역에 있는 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기로 계획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탐방단이 자체로 조직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단장이라는 직함으로 그날 하늘 뜻을 제가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하늘 뜻 제목은 "달리다굼"입니다. 달리다굼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성서는 마가복음이며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달리다굼!" 하고 말씀하셨다.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거라" 하는 뜻입니다.)

 

우리 일행은 일제가 간도지역에 설치했던 총영사관을 방문하였습니다. 현재는 일본군 죄증(罪證)박물관으로 이름 짓고 일제가 행했던 만행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연변지역에서만 항일 활동으로 돌아가신 분이 3,234명이고, 이들 열사에 대한 기록물이 여기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꾀꼬리라 불린 12살 소녀의 얼굴이 내내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때까지 저는 하늘 뜻 펴기를 하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습니다. 이후 사정으로 자체적으로 주일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그 주에 주어진 성서본문을 찾아보니 바로 달리다굼이 나오는 저 마가복음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소녀에게 일어나거라 하는 말씀은 자연스럽게 12살 소녀 항일열사와 연결되었습니다.

 

"꾀꼬리처럼 노래를 잘 불렀던 그 소녀는 누구의 말을 듣고 항일투쟁의 길, 민족독립의 길에 나섰을까요? 우리 탐방단은 이번 여정에서 달리다굼이라는 말씀을 들었을까요"라고 하늘 뜻 펴기를 마무리했습니다.

 

하늘 뜻은 현장성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자리, 이곳에서 벌어지는 현장을 성서와 더불어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탐방단의 하늘 뜻은 함께 압록강 두만강에 펼쳐진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항일의 현장을 보고 그 감동을 공유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번 주 주어진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6장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하고 말씀하셨으므로, 그분을 두고 수군거리면서 말하였다.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부모를 우리가 알지 않는가?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는가?"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서로 수군거리지 말아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나는 그 사람들을 마지막 날에 살릴 것이다.

예언서에 기록하기를 '그들이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하였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은 다 내게로 온다.

이 말은, 하느님께로부터 온 사람 외에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하느님께로부터 온 사람만이 아버지를 보았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의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것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하~ 이번 주의 말씀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주 들어서 잘 아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파브르는 곤충기로 유명한 학자입니다. 그는 곤충기를 쓰기 3년 전인 1876년 식물기를 썼습니다. 이 책 15장은 접붙이기입니다. 여기서 몇 구절 인용하겠습니다.

 

만일 역사가 기록을 좀 더 오래 보존해 왔더라면 가치 없는 잡초에서 다양하게 개량된 식물이 탄생하기까지의 길고 수고로운 노력을 엿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한 종에서 이롭게 개조될 무한한 잠재력을 알아본 기막힌 직감을 생각해 보라. 변변찮고 말 안 듣는 야생 식물을 잘 키우고 개량하기 위한 인내와 노력,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붙들고 완벽한 상태로 지속시키기 위한 보살핌을 생각해 보라. 그러면 적어도 우리가 먹는 과일과 채소에는 그것을 길러낸 농부의 땀방울보다 훨씬 많은 것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안에는 잡초를 작물로 변신시키기 위해 쏟아부은 100세대의 노동과 노력이 축적되어 있다. 그대들은 선조들이 창조한 과일과 채소를 먹고 산다. 우리는 과거의 노고, 기운, 창의력 덕분에 산다. 우리의 뒤를 이은 미래 세대도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가 가진 두뇌의 힘과 팔심 덕분에 잘살게 된다면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제대로 마쳤다고 마음 놓아도 좋으리라.

 

저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의 힌트를 이 구절에서 찾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어 살고 있습니다. 그 누군가에는 잡초를 먹을만한 것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애써온 우리의 선조도 포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자의 글을 몇 구절 인용하겠습니다.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에서 가져왔습니다. 노자 도덕경 13장은 총욕약경(寵辱若驚)으로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받거나 욕을 먹으면 놀라니, (寵辱若驚)

(이것은) 큰 근심을 제 몸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貴大患若身)

어째서 사랑을 받거나 욕을 먹는 일에 놀란다고 말하는가. (何謂寵辱若驚)

(사람들은) 사랑을 받는 것은 좋은 것으로 알고 (寵爲上)

욕을 먹는 것은 나쁜 것으로 안다. (辱爲下)

그래서 그런 것들을 얻어도 놀라고 (得之若驚) 잃어도 놀라는 것이다. (失之若驚)

이것을 사랑을 받거나 욕을 먹는 일에 놀란다고 말하는 것이다. (是謂寵辱若驚)

어째서 큰 근심을 제 몸처럼 귀하게 여긴다고 말하는가. (何謂貴大患若身)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까닭은 내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내게 몸이 없다는 경지에 이르면 (及吾無身)

내게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吾有何患)

제 몸을 (진실로) 귀하게 여기고 천하를 위하는 사람에게는 (貴以身爲天下者)

천하를 맡길 수 있다. (若可寄天下)

제 몸을 (진실로) 사랑하고 천하를 위하는 사람에게는 (愛以身爲天下者)

천하를 다스리게 해도 좋다. (若可託天下)

 

이제부터 무위당 선생님 말씀입니다. '자기'를 벗어나서 제한이 없는 무아형식에 처하면 말이지, 그러면 우주가 자기와 하나로 되는 거라. 예수나 석가나 이런 분들은 뭐냐하면 우주와 자기가 하나로 되는 무한한 무아형식에서 사신 분들이지. 그런데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유한한 자아형식에 빠져서 산단 말이야.

 

그러니까 총욕(寵辱)이 나에게 대환(大患)이 되는 이유는 내 몸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급오무신(及吾無身)이라 즉, 나에게 몸이 없다는 그 경지에 이르면 거기에 무슨 병통이 있겠느냐. 그래서 장자(莊子)를 읽어보면 지인(至人)은 무기(無己)라는 말이 있지. 완성된 사람은 사(私)가 없어. 한정된 자아형식에 갇혀서 살지 않는단 말이야. 그러니까 장자의 지인(至人)은 한정이 없는 무아형식 속에서 사는 사람이지.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경우는 장천하어천하(藏天下於天下), 천하를 천하에다가 감추고 사는 사람인 거라. 무슨 말인고 하니, 내 안에 우주가 있고 우주 안에 내가 있다 이 말이야. 예수의 말씀이 그 말씀이지. 나를 따르고자 하는 자는 '자기'를 버리라고 하셨는데, 바로 아상을 여의라는 즉, 자기를 버린 자라야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이제 우리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돌아가신 임보라 목사님이 안식년을 마치고 오셨을 때 저는 공동의회장 직분을 맡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충분히 쉬고 재충전을 했다고 말했지만 그 기간 동안 반려동물장례지도사 등 여러 종류의 반려동물 관련 자격증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르며 비인간동물과 함께 하는 목회로 영역을 확장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신중했으나 사실은 둔감하였으며 그 연유로 여러 질문을 하였습니다. 내 안에 우주가 있고 우주 안에 내가 있는 그 경지를 알지 못하는 자가 그 길로 가려는 분의 꿈을 어찌 헤아릴 수 있었겠습니까? 목사님은 늘 그러하듯이 여러 번 신중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설명하였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교우 모두는 그가 펼쳐 놓았던 마음 자락에 한 번쯤은 들어갔다 나온 경험을 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에베소서 5장 1절에서 2절 말씀을 읽고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에베소서 5장 [새번역]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사랑으로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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