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경원84

에드 콘웨이 - 물질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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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세계

(Material World)

저자 에드 콘웨이 | 역자 이종인 | 인플루엔셜 | 2024.3.8.

 

 

우리는 물질문명에 터하여 살고 있다. 물질이 없다면 일상의 삶도 불가능하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실감하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이라는 6가지 물질을 중심으로 인류 문명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탐구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왜 하필 6가지일까? 아마도 저자 나름의 순위 목록과 물질의 현장을 찾는 발품 팔기의 한계 사이에서 이뤄진 타협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이 물질들이 최초로 얻어지는 지저분한(!) 현장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되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필수품으로 변모하는 장소들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구석구석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역시 발품을 팔아서 쓴 글은 현장감이 넘치고 재미가 가득하다.

 

모래는 가장 오래됐으나 가장 현대적인 물질이다. 인류가 실리콘을 구슬, 컵, 보석으로 변형시키면서 호모 파베르(도구를 만드는 인간)의 시대가 열렸다. 현미경과 망원경에 들어가는 렌즈는 인류의 지식의 폭을 넓히고, 보건의료 수준을 높여 평균 수명 연장에 기여했으며, 전쟁의 양상을 바꾸기도 했다. 모래는 콘크리트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보잘것없는 모래알이 실리콘 칩이나 광통신 케이블, 태양광 패널로 바뀌는 과정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기도 하다.

 

모래처럼 흔하지만, 인간 생존의 필수품인 소금은 또 어떠한가? 소금은 역사적으로 무역과 상업뿐 아니라 권력과 압제의 기원이자 저항의 아이콘이었으며, 오늘날 화학 산업과 제약 산업에서 핵심 물질이기도 하다. 많은 화학공장과 제약공장이 암염층 위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다. 클로르알칼리 공정을 기반으로 생산하는 염소, 수소, 수산화나트륨(가성소다) 등은 인간의 생명, 보건, 위생 등에 긴요하다. 소금의 일종인 질산칼륨(초석)은 화약과 비료의 원료로서 인구의 증가에도 감소에도 기여한 역사가 있고, 현재도 그러하다. 역사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소금을 지배한 자가 세상을 지배했다.

 

철은 우리 사회의 뼈대이다. "모래가 세상을 직조하는 실이고, 소금이 세상을 변형하는 마법의 재료라면, 철은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핵심이다."(241쪽) 그런데 강철을 만들기 위해 매년 10억 톤 이상의 석탄이 투입되며, 그 과정에서 전 세계 온실가스의 7~8%가 배출된다. 모든 사람이 선진국처럼 1인당 15톤의 강철을 소비하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강철의 재고를 1,200억 톤으로 늘려야 하는데, 지금까지 인류가 생산한 강철의 양이 300억 톤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온실가스 배출 없이 강철을 생산하는 기술은 아직 실험 단계이고 비용도 많이 든다. 인류는 탈탄소와 개발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충돌하는 딜레마에 아직 머물러 있다.

 

구리는 철보다 먼저 도구로 쓰이다가 강도와 실용성 측면에서 철기에 밀려난 역사가 있다. 제2의 구리시대는 전기와 함께 열렸고, 현대 문명은 구리 전선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진정한 구리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본질적으로 인간의 활동 전반을 화석연료에서 전기 기반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양광패널, 풍력발전기 터빈에서 전기차 배터리, 전기히트펌프, 각종 전선에 이르기까지 구리에 대한 수요는 급성장중이다. 1차 에너지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20%에서 2050년 50%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갑자기 구리가 모든 것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상에 구리는 충분하지 않다. 저자는 지상이든 해저든 구리를 짜내는 지저분한 현장들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구리를 제련하기 위해 막대한 화석연료에 의존해야 하는 역설과 만난다.

 

지난 수십 년간 석유와 가스는 우리가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55%를 차지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지정학적 문제로 탄화수소 공급에 차질이 생기니 유럽 경제가 휘청일 수밖에 없다. 특정한 지질층에만 매장된 석유와 가스를 놓고 얼마나 많은 분쟁이 있었던가? 석유와 천연가스는 연료뿐 아니라 부산물로 플라스틱, 섬유, 비료, 건자재 등으로 변모해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고, 앞으로 연료보다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 필수적인 화학성분으로서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예전에 산업연관분석을 할 때, 농산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석유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화석연료가 없었다면 인류는 생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화석연료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심각한 문제가 되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528쪽)

 

이제 인류는 다음 에너지 전환을 향한 혁명의 시작점에 있다. 그 과정에서 20세기의 검은 황금=석유는 앞으로 하얀 황금=리튬으로 대체될 것이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원에 내재한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저장할 방법이 필요하다. "우주는 우리에게 그(리튬) 보다 더 나은 걸 주지 않았다."(460쪽) 리튬을 비롯한 에너지 저장장치(배터리)에 필요한 광물들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경쟁 속에서 글로벌 서방과 글로벌 사우스 사이에 합종연횡이 전개되고 있다.

 

광물자원과 미래기술을 둘러싼 신냉전 이야기의 결말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기본적 물질세계의 지도에 나타난 연결과 의존의 그물망을 해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5대양 6대주에 걸친 놀라운 상호연결의 세계 덕분에 우리는 물질과 에너지의 구성요소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사는 것이다. 저자의 의견에 모두 동의할 것은 없지만, 저자가 전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며 만난 많은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와 치열한 공부, 그리고 경험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책을 통해 읽는 기쁨과 정신적인 고양을 경험했다. 저자가 호주의 필바라 지역 채굴 현장에서 전하는 인상적인 이야기를 인용하며 책 소개를 마친다.

 

"철, 금, 우라늄, 구리, 리튬 같은 광물이 많이 매장된 곳 치고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권리와 기억을 침해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주칸 동굴들의 파괴와 관련하여 가장 마음에 걸리는 점은 우리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여기에 얽힌 공모자라는 사실이다. 호주산 값싼 철광석은 중국이 전 세계에 저렴한 상품을 계속해서 공급할 수 있었던 주요 이유이다. 호주산 철광석으로 강철을 생산하면, 중국이 그 강철로 공장을 세우고 기계를 만든다. 이 공장과 기계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만들어지고, 배터리가 조립되고, 아이들의 장난감이 제작된다. (중략) 필바라의 값싼 철광석은 국가 간 1인당 강철 불평등을 점차적으로 바로잡는 중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다른 지역과 생활 수준을 맞추는 데 필요한 고속도로, 철로, 학교, 의료 시설을 건설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 대가로 필바라에서 거대한 산과 계곡을 깎아 내고, 문화 유적지를 훼손하고,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사실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철광석을 채굴하는 좀 더 나은 방법이 없을까 묻게 된다." (298~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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