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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틀랜드 - 세계의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뼈 빠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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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틀랜드

(heartland)

- 세계의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쫄딱 망하는 삶에 관하여

 

 

 

가계도가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가족의 이미지가 아니다. 스물여섯 살에 다섯 번째 결혼한 할머니를 포함한 복잡한 가족관계는 결혼·이혼·재혼이 관습처럼 되어 가난한 이들의 삶의 방식이 된다. 빈곤이 잉태한 노마드 같은 삶으로 가족은 흩어지고 어린 자녀들은 위험에 노출되고 희생이 강요된다. 거친 친구와 어울리고 강간과 성폭력은 일상이 되어 성인이 되기 전에 배속에 아이가 생긴다. 분유 값을 얻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폭력적인 남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두려운 처지에 놓인다. 고통과 궁핍의 고리를 잘라내지 못하고 자기 엄마의 삶을 그대로 답습하는 젊은 엄마들이 적지 않다. 여자라는 이름으로 가난의 옷까지 입게 되면 불평등한 표적의 우선 대상이 된다.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복지국가 미국에서 백인 빈곤층이 감내하는 서사다.

 

<하틀랜드(heartland)>는 부제처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쫄딱 망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다. "내 세계와, 이 나라에서 바라보는 그 세계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진 까닭은 내 출생지에서 대학 캠퍼스나 그 너머로 가서 그곳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지. 나는 그 거리를 좁히고 싶었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목표였던 저자 세라 스마시는 고향의 가난을 자신의 가족을 대상화하여 세상에 알린다. 존재하지 않는 딸, 오거스트에게 가상의 가난한 젊은 엄마가 되어 서술하는 자전적 에세이다. 세라는 미국 캔자스 주 농촌 빈곤 가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조앤 쇼런스틴 펠로우 교수 자리까지 오른다. 미국의 중심부에 위치한 캔자스주는 거대한 황무지로 모래바람과 토네이도에 취약한 관심 밖의 장소다. 외지인이 하품을 하며 차를 타고 지나거나 비행기를 타고 자면서 지나가는 곳이다. 가난한 백인을 일컫는 '레드 넥 redneck'이나 '트레일러 트래시 trailer trash'로 불리는 낙후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치부된다. "부유한 백인의 입장에서 가난한 백인을 보면 신체적으로는 자기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큰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가난의 대물림은 마음의 결핍과 수치심을 안겨주고 실패를 자신들의 잘못으로 돌리며 무력하게 만든다. 정부는 복지 혜택을 담보로 수혜자들의 불평을 잠재운다. 저자의 아버지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세척 용제 회사에서 일할 때 화학 약품으로 중독성 정신병에 걸려 회복하는 데 3년이 걸렸다. 아버지의 사고로 인해 그 회사는 트럭 구조를 바꾸었다.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아빠가 입은 정신적 상처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해 아빠가 아무 분노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었어." 힘 있는 권력자들의 가스라이팅에 길들여져 지금도 구조적인 문제에 침묵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모습이 포개진다. 절대적인 고독이 끝없이 뻗은 곳, 시골 중의 시골에 사는 저자는 캔자스 농부 5세대다. 그녀는 조상들이 짐마차를 타던 땅 위에서 트랙터를 타며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고군분투하며 자존심으로 살아냈다.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접근성도 부족해 좌절감을 느끼지만 광활한 고향땅에서 누렸던 끝없는 자유는 자신을 둘러싼 가난의 울타리를 벗어나 도시로 향한 꿈을 이루는 바탕이 되었다.

 

"엄마와 자녀들로 이루어진 싱글맘 가족이 미국 전체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가난한 가족 형태야." 저자는 임신으로 인한 가난의 악순환을 알기에 섣불리 엄마가 되지 않기로 다짐한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어떤 여자들과 자녀들에게는 불행을 가져온다는 것을 일찌감치 터득했다.

 

부당한 취급을 받을 때마다 오거스트를 생각하며 "내 딸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자문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풍요하기로 이름난 나라에서 가난을 겪는다는 건 가지지 못한 것을 끝없이 자각하며 사는 것과 마찬가지야. 무더운 날 마실 수 없는 차가운 저수지 옆에서 마라톤을 하는 것과 비슷하지." 상상을 초월한 가난의 잔혹함과 빈곤자들을 향한 사회의 경멸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저자와 가족이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견디어 낸 삶이 경외스럽다. 저자에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아빠가 있고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고 주먹질을 하더라도 자신을 사랑해 준다는 가족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러기에 국가가 직시하고 싶지 않은 사각지대에서 힘든 삶을 살아온 그녀가 자신의 의지로 가난의 고리를 끊고 고통으로 얼룩진 가족의 이야기를 따뜻한 마음으로 풀어낼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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