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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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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몽골의 추위는 매서웠다. 올여름 더위가 늦은 가을까지 이어지는 와중에 느닷없이 찾아온 영하 20도의 추위는 정신을 번쩍이게 만들었다. 좋은 계절, 트레킹으로 찾았던 몽골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 앞으로 과제 수행을 위해 몇 차례나 더 몽골을 찾아야 할 처지다. 일이 목적이니 산뜻한 날씨를 기대하기는 난망하다. 몽골 영토 중부 내륙 도시인 하르허린(몽골고어: ᠬᠠᠷᠠᠬᠣᠷᠣᠮ, Хархорум 카라코룸)1)이 출장지 중 하나다. 울란바토르에서 서남 방향으로 360km 떨어진 곳이다,

 

양, 염소, 말, 소, 낙타 그리고 돼지까지 온갖 종류의 동물들이 방목된다. 그들은 초원의 식량을 찾아 무심히 도로를 넘나든다.

 

길이 나기 전에 그들의 땅이었을 것이다. 물론 길이 난 이후로도 그들은 무심히 다닌다. 사진엔 지평선 넘어 산줄기들이 보이나, 울란바토르에서 하르허린으로 이동하는 7시간 동안 차창 밖 풍경은 대부분 소실점이 보이는 도로의 양쪽으로 끝없는 지평선 초원이다. 초원의 환상은 금방 깨진다. 평화롭고 안온해 보이지만 사실은 온통 똥 밭이다. 저 풀을 다 뜯어먹었으니 그 섬유질이 어디에 가겠는가? 자연스러운 순환의 과정이리라. 똥이라고 하나 그저 섬유질 무더기일 뿐이다. 자연스럽게 밝고 다닌다. 이미 풍화되어 흙이나 진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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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무시로 도로 위를 넘어 다니는 사정이니 아뿔싸 이런 사체를 몇 번이나 목격할 수밖에 없다. 덩치가 큰 말이다. 상태가 아직 멀쩡한 것 보니 사고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다. 백골이 된 동물이나 살점이 반쯤 남은 것들도 여럿 보았다. 실크로드 중요한 요충지는 비단과 같이 고가의 오가는 물건에 통행세를 매겨 제국으로 번성하였을 것이다. 튀르크, 위구르를 거쳐 몽골제국에서 카라코롬은 전성기를 누리며 번성하였다. 고도(古都)에 아직 윤곽이 뚜렷한 토성(土城)에 도시의 자취가 흐릿하지만 확연하다. 밀레니엄이 흐르고 다시 초원화 되어가는 곳에서 만난 쌍봉낙타는 이곳이 이국(異國)의 땅임을 확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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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쌍봉낙타, 키가 무려 버스 높이와 비슷하다. 이들을 길들여 타고 전투에 나갔다면 그 크기와 높이에 상대는 기가 질릴 것이 분명하다.

 

다급한 일 없어 보이는 초원의 도로에서 급한 손짓을 만났다. 맨 앞자리에 자리 잡고 도로의 소실점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나는 얼른 버스에서 내리며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좋은 일 한번 하고 갑시다~"

 

연구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써 내려가던 가냘픈 손들이 한둘 내리기 시작하더니 한 무리가 되었다. 통역이 있었으나 손짓과 표정으로 대충 감을 잡았다. 장정 셋으론 말을 들이받고 서버린 승용차를 밀어 올릴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제 힘쓸 일만 남았다. 몇 번이고 헛심만 쓰다 겨우겨우 사고 차량을 트럭 적재함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한몽 협력은 느닷없이 옛 제국의 화양연화(花樣年華)를 구가했던 카라코룸의 드넓은 초원을 가로지르는 도로 위에서 일어났다. 십여 분 힘을 쓰는 동안 차가 한 대 지나가다 섰고 역시 운전자는 협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며칠 후 태평양 건너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자국 제일주의를 내세우는 그가 이끌 미래에도 우리는 이웃 나라와 이렇게 힘을 합해 살아야겠다고 출장 내내 생각하였다.

 

계획가로 살면서 밀도는 늘 골치 아픈 그래서 극복해야만 하는 주제였다. 몽골의 사고 현장을 보며 높은 밀도가 지닌 속성을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가 누리는 대부분의 다양한 서비스와 그 신속함은 높은 밀도 덕분이었다는 깨달음이 왔다. 지구상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몽골에서는 사소한 사고가 자칫 생명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앰뷸런스도 경찰도 견인차도 이 광활한 곳에서는 난망한 일이다. 실제로 출장의 목적을 수행하며 만난 몽골 측 인사로부터 밀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부럽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들에겐 이 대지의 광활함이 막막함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나와는 비슷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극복해야 할 난제(難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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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시도 끝에 사고 차를 트럭 위에 올려놓았다. 출장단의 첫 번째 한몽 협력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협력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나는 여러 제국의 수도였던 곳에서 그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만트라를 외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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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Хархорум, 키릴문자 X는 '흐'로 발음한다. 기원은 카이여서 히읗과 키읔 발음이 혼재할 수 있다. P는 R로 발음한다. X는 무성연구개마찰음은 목젖이 떨리지 않는 'ㄲ흐' 정도로 읽어야 하고 P는 유성치경전동음이니 우리말에는 없는 혀를 떨며 성대를 같이 울리며 내는 ㅎ발음이라 어려움이 있다. 그러고 보니 카라코룸이나 하르허린이나 별 다른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다. 표음문자인 몽골 고어(古語)로 하르허린은 ᠬᠠᠷᠠᠬᠣᠷᠣᠮ 필체가 심히 아름답다. 원래 세로로 사용하는 문자이나 한글에 표시할 방법이 없어 가로로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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