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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무 지음, 2016 - 난생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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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양정무 지음, 2016, 사회평론

 

 

나이가 들수록 역사나 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닐 것 같다. 어느 곳이든 유적지다 유물이다 해서 뚫어지게 쳐다봐도 그 역사를 모르면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은 채 의미 없이 눈만 고정시키게 된다. 혹시 그 자체의 배경은 자료를 통해 어찌어찌 알아낸다고 해도 긴긴 역사의 맥락 속에서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면 또다시 머릿속이 하얘지기 일쑤다. 운이 좋아 잘 아는 분의 유려한 설명을 듣는다고 해도 당시에는 다 이해될 것 같고 감탄마저 하지만 그때뿐, 역시나 내가 찾아서 익혀야 남는 거구나라는 뼈아픈 깨달음이 곧이어 찾아온다. 어째서 예전에 세계사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까 라는 후회도 해본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1학년 올라갔을 때 수업시간표에서 세계사라는 과목을 발견하고 가슴 두근거렸던 기억이 있다. 첫 세계사 시간, 정년퇴직이 코앞이신 연세 지긋한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리고 말씀하셨지. 여러분, 우리 학교는 대학교 입시 과목으로 세계사는 배우지 않아요. 그러니 이 시간이 세계사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이고 앞으로는 이 시간에 다른 과목 선생님이 들어오실 겁니다. 순간 약간의 실망감이 스쳤었다. 결국 이를 계기로 나의 세계사 실력은 중학교 수준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할 구실이 생긴 셈이다.

 

세계사 특히 미술사를 알고 싶다는 열망이 점점 커지면서 우선 책을 찾기 시작했다. 주로 추천을 받은 것은 <옥스퍼드 세계사>, <곰브리치 세계사>, <서양미술사> 등이고 대략 읽어도 봤는데 역시나 뒤늦은 지식 습득에는 한계가 있는 것인지 읽을 때는 좋다고 끄덕끄덕 하나 책을 덮는 순간 머리에서 바로바로 휘발되곤 했다. 좀 더 쉽고 좀 더 구체적이고 좀 더 재미있는 책은 없을까 수없이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만난 책이 바로 이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일명 '난처한 미술이야기' 시리즈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로 있는 양정무 교수에 먼저 신뢰가 갔고 출판사 사회평론에 다시 한번 신뢰가 가서 선뜻 고른 1권은, 사실 처음 펼쳤을 때 이건 뭐지? 라는 인상을 받았다.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는 글의 형식이 매우 낯설었고 마치 나를 초등학생 취급하는 느낌도 들어서 계속 읽을 수 있을까 살짝 망설여지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더랬다. 그런데 이 책,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저자는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의 말을 인용한다. "위대한 국가는 자서전을 세 권으로 나눠 쓴다. 한 권은 행동, 한 권은 글, 나머지 한 권은 미술이다. 어느 한 권도 나머지 두 권을 먼저 읽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중 미술이 가장 믿을 만하다." 미술은 왜곡되기 힘든, 과거가 남긴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미술에 담긴 원초적 힘을 살려내고 미술에서 감동뿐 아니라 교훈을 읽어내고 세계를 보는 우리의 눈높이를 높이고자 이 책을 썼다, 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1권은 원시미술로 시작하여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술까지를 포괄한다. 첫 장, 원시미술의 도입 질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솔직히 인기 있는 르네상스 화가나 고흐 같은 인상파 화가도 아닌데 현대인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먼 옛날 원시인들의 미술 작품을 뭐 하러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마음을 콕 집어내는 듯한 이 첫 질문. 왜 우리는 역사를 얘기할 때마다 뭐가 뭔지 상상도 안 되고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은 원시시대부터 시작하는 걸까.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한 마음으로 뒤이은 답을 읽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시인이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문명이 무척 고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우리가 꿈꾸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궁금해하지요. 앞으로 원시미술을 살펴보면서 점점 느끼실 테지만 그건 원시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원시미술은 최초의 인류가 머나먼 후손, 바로 우리에게 선물하는 가장 꾸밈없는 답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 책은 독자가 궁금해할 만한 질문들을 계속 던지면서 세계의 문명과 미술을 처음부터 찬찬히 짚어가는 독특한 형식을 취함으로써 자꾸 읽게 만들고 오래 기억에 남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삽화다.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그림과 사진이 페이지마다 하나 이상씩은 들어가 있어서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 각 장의 말미에 '난처하 군의 필기노트'를 통해 그 장에서 기억해둬야 할 내용을 요약하고 한 시대가 끝날 때마다 다시금 주요 삽화와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구성 또한 좋다. 1권은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지만 (다른 권들도 대체로 이렇지만) 읽다보면 어느새 끝나 있을 정도로 재미있고 다 읽고 나면 지적 충만감도 주는 그런 책이다.

 

이 시리즈는 현재 8권까지 나와 있다. 1권에 이어, 그리스-로마 문명과 미술 (2권), 초기 기독교 문명과 미술 (3권), 중세 문명과 미술 (4권),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 (5권), 초기 자본주의와 르네상스의 확산 (6권), 르네상스의 완성과 종교개혁 (7권), 그리고 바로크 문명과 미술 (8권)까지, 나올 때마다 가슴 뛰는 심정으로 구입하게 된다. 어디론가 여행을 갈 때 다시 한번 읽고 마음에 새긴 채로 가고 싶은 시리즈이기도 하다. 세계사와 미술사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저 앉은자리에서 역사 여행을 하는 값진 경험을 선사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언젠가 어딘가로 떠나 머무를 때 역사적 유물을 병풍처럼 사진 배경으로 남기는 데 급급해할 게 아니라 아는 것을 확인하고 그래서 감동받고 그래서 내 사고와 인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경험을 만끽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읽을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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