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옥경87

아주 편안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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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

 

- 엄마는 아주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다.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것도 그저 편안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시몬 드 보부아르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애도하기 위하여 쓴 자전적 에세이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는 책 제목이 나를 붙잡았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현저히 줄어든 내게 죽음은 조심스럽게 호기심이 가는 주제다. 한동안 예기치 않았던 병으로 호된 수업료를 지불한 뒤 슬그머니 죽음이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보부아르는 엄마의 나이를 "돌아가실 만큼 연세를 잡순"이라고 표현한다. 비록 빈말이라고 하지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그녀의 엄마와 나는 같은 70대이기 때문이다. 어느 시 한 구절처럼 나는 너무 서둘러 여기까지 왔다. 다가오는 그 시간이 아직도 낯설게만 느껴지니 언제쯤 제대로 철이 들지 모르겠다.

 

책은 보부아르가 한 달여 동안 엄마의 병상에서 함께 고통을 나누면서 소원했던 모녀 관계가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담았다. 어머니는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타자로 살도록 강요받았기에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내지 못했다. 그녀는 열정과 욕망을 억제하고 남편의 권위에 순종하며 자신감 결여로 자신의 목소리를 삼키고 살았다. 소유욕과 지배욕이 강했던 엄마는 보부아르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한 억압적인 존재인 동시에 지적인 딸을 무서워했던 열등한 존재였다. 오랜 모녀 사이의 소통 부재는 마주한 어머니의 죽음이 연결고리가 된다. 삶의 끝자락에 이른 엄마와 연대하며 모녀는 서로를 재발견하고 잊힌 서로에 대한 애정도 되살린다. 죽음과 임종이 일상이 된 병원에서 무심해진 의사와 과로로 지친 간호사에게 엄마를 일임하지 않고 보부아르 자매는 어머니 곁을 지킨다. 하지만 어머니의 육체적 고통과 죽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딸들은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엄마가 임종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회복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걸 보는 게 괴로웠다. 또한 그걸 지켜보면서 모순적 감정을 느끼는 우리의 처지로 인해 특히나 힘들었다."

 

얼마 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을 받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신청은 건강할 때 해 두어야 한다. 본인이 직접 신청하고 서명을 해야 하므로 아파서 움직일 수 없을 때는 할 수가 없다.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연명치료는 환자에게는 고통을, 보호자에게는 부담만 안겨줄 뿐이다. 특히 부모가 삶과 죽음의 그레이존(gray zone)에 처했을 때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등록증을 제시하면 자식들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고 무력하게 의사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 때문에 엄마의 삶을 연장해야 하는가?"라고 보부아르는 자문해 보지만 양심의 가책으로 엄마를 죽게 내버려두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만약 보부아르 엄마가 연명치료 결정권을 스스로 행사할 수 있었다면 딸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았을까. 오늘날 우리는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자신의 선택이 아닌 의사나 보호자에게 기대어 원하지 않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보부아르 엄마는 병상에서 뒤늦게 자기 자신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암에 결려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하지만 사랑하는 두 딸의 돌봄 곁에서 비교적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비록 욕창이 몸을 뒤덮고 진정제와 모르핀 주사로 연명은 했지만 자신을 돌봐준 딸들의 손길이 있었기에 고통과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았다. 어쩌면 가족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았으리라. 남편과 자식을 위해 수동적인 삶을 살았던 보부아르 엄마는 자신의 이름이 제대로 불린 적이 없었다.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딸의 애도는 어머니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이름을 세상 밖으로 불러낸다. "누군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라고 보부아르는 말하지만 죽음에 맞서 싸운 엄마를 편안하게 보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과연 나는 보부아르 엄마처럼 사랑이 가득한 돌봄을 받으며 작별할 수 있을까. 그녀에게 연대감과 연민을 느끼는 것은 머지않아 나에게 다가올 그날이 자꾸만 어른거려서다. 교향시 <죽음과 변용>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젊은 시절 죽음을 상상하며 만든 음악이다. 그가 노년에 마주한 실제 죽음 또한 이 교향시와 거의 일치했다고 전해진다. 죽어가는 고통스러운 순간을 내려놓고, 자연에 순응하며, 평화롭게 저 너머로 건너가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위대한 예술가이기에 가능하리라. 이래저래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걸 보니 나도 죽을 만큼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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