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이맘때가 되면 한 해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떠올리며 정리를 하게 된다.
2024년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책이나 영화에서만 접했던 계엄령이라는 것을 실제로 경험 하게 된 '뜻'깊은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그 '뜻'도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떠올리겠지만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올 한해 가장 큰 사건은 보이스피싱에 간접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내가 무척 신뢰하고 존경하는 선생님한테 선뜻 빌려드린 돈이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것이다.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여러 감정들이 화산처럼 끓어오르기를 반복했다.
그 중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스스로를 자책하는 비난의 목소리였다.
'나라도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좀 더 빨리 알아차렸더라면', '이상한 낌새가 들었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말렸더라면', '무엇보다도 내가 선뜻 돈을 빌려드리지 않았더라면...'
누군가를 돕고자 한 나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그 사람에게 더 큰 짐을 지운 꼴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 가장 큰 자책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그분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금전적인 도움밖에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멈춰버리자 더 이상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미안함과 함께 달러 빚을 내서라도 도와주지 못하는 내 모습이 무척이나 부끄럽게 여겨졌다.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으로 내 존재감을 어필하는 것에 익숙한 나에게 이번 사건은 막막함을 넘어서 미안한 마음까지 불러일으켰다.
친구들에게는 이런 내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 너무 당연했다. 친구들은 괜히 엮여서 나까지 더 큰 피해를 입게 될까 걱정하며 더 이상 그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줬다. 나 역시 머리로는 친구들의 조언에 동의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내가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끝까지 도와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를 다그쳤다.
이렇게 불안하고 혼란스런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된 건 명상이었다. 고요함 속에 머물자 마음이 점점 안정되어 갔고, 출렁이던 것들이 멈추자 모든 것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는 나의 마음 뒤에 숨어있는 '두려움'이 보였고, 그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만 내 존재의 가치가 있다.'라는 무의식속 내 목소리 뒤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 속에 떨고 있는 내가 보였다. 나는 그저 가만히 모든 생각과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그런 나와 함께 있어 주었다.
내가 나를 보호하지 않은 채 행하는 행위 뒤에는 언제나 나의 '두려움'이 숨어 있으며, 이 두려움의 존재를 발견하고 인정하지 않는 한, 나의 행위는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제 누군가를 돕고자 할 때면 습관처럼 무턱대고 달려들 것이 아니라 맑은 알아차림의 상태로 나의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살피고, 그 사람이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음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우선이며, 그것이 진실하게 서로를 돕는 방법이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사명이 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경험해야 할 것들은 온전히 신이 나를 위해 준비해 준 선물이다.
내 선물은 온전히 내가, 그의 선물은 온전히 그가 껴안을 일이다.
신의 선물을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껴안을 수 있기를...
그것이 신에 대한 진짜 믿음이 아닐까 한다.
올 한해의 마무리는 신이 내게 준 선물들을 떠올리며, 그 선물에 담긴 신이 나에게 보내는 축복과 사랑의 메시지에 머물러 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