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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주일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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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20도를 밑도는 추위와 목과 눈이 따끔거릴 정도의 대기오염을 안고 사는 한겨울 울란바토르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에 탄핵 2차 투표가 있었다. 출장 동안 낮에는 연속으로 이어지는 회의로, 밤에는 탄핵 정국의 뉴스를 몰아 보느라 기도문을 한 줄도 적지 못하였다.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내리고 짐을 기다리는 컨베이어 벨트 옆에서 탄핵 투표 결과를 기다렸다. 1980과 2024가 겹치며 식은땀이 흘렀다. 잠시의 환호와 함께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주일 아침 단숨에 기도문을 적어 내려갔다.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7분, 대한민국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다음 날인 4일 오전 1시 01분,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어 신속하게 무력화(無力化)되었습니다.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열흘이 지난 어제, 12월 14일, 국회 재적의원 300명 전원이 참석한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에서 204명이 찬성하여 탄핵안이 통과되었습니다. 대통령은 취임 2년 7개월 만에 그 직무가 정지되었습니다. 근현대사를 거치며 사회 곳곳에 켜켜이 쌓인 민주주의 자양분과 성숙한 시민 의식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이끌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공교롭게 그 와중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작가는 수상 기념 강연 '빛과 실'에서 평생의 화두와 같은 질문을 이야기합니다. 제주 4.3 항쟁과 80년 오월 광주의 죽음을 마주한 작가는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두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다고 합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과거의 억울한 죽음을 드러내어 그들의 원한을 풀 수 있을까요? 그 아픈 과거를 현재가 치유할 수 있을까요? 수학여행 갔던 배가 침몰한 진도 앞바다, 축제를 즐기기 위해 나갔던 이태원 거리의 학생과 젊은이들의 영혼을 마주 보며 형식만 달라졌을 뿐 역사는 반복된다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우리 민중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그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도하고 광장에서 거리에서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오월 광주 YWCA에서 생의 마지막 밤을 보낸 박용준 님이 남긴 글입니다.

 

우리의 양심이 기도하게 하고 광장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한강 작가는 이전의 두 질문을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고 바꾸어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빚지고 있습니다. 세월호 304명, 이태원 159명의 희생자를 기억해야 할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4.3 제주를 오월 광주를 잊을 수 없듯이 세월호와 이태원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내면에 양심과 민주주의를 쌓아가는 지난 세월을 통해 어제와 같은 역사의 현장을 축제로 승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이 그들을 살리는 길이고,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이 산 자의 현재를 구원할 수 있는 길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심어주신 양심과 자유를 언제나 어디서나 지니고 주님의 삶을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저희를 이끄시옵소서.

민중의 벗 되시고 아픈 이의 영혼을 치유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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