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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실덩실 어깨춤과 팔일무 - 무엇이 누구 것이냐는 어리석은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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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춤과 팔일무의 기원과 발전

 

덩실덩실 어깨춤을 춘다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관용구이다. "헌재 판결을 듣고 덩실덩실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다"는 식으로 쓰인다. 그런데 독자들은 실제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어본 적이 있으신지? 향린공동체 교우들이라면 풍물패 얼쑤의 장단에 맞춰 그래 보신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평소에 그런 춤을 추지 않는다. 필자의 경우, 어릴 적 기억 속에 동네 경로당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렇게 노시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후 덩실덩실 어깨춤을 실제로 목격한 것은 90년대 말 중국 연변에서였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필자는 또래 젊은이들이 한 데 어울려 놀면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테크노 비트에 맞춰 헤드뱅잉이 유행하던 때였다. 한국에서 사라진 저 춤이 어떻게 중국 동포들에게 남아 있을까?

 

한편 팔일무(八佾舞)라는 춤에서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중국에서 기원했지만 한국에서 보존되고 꽃 피운 것이다.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팔일무는 가로세로 여덟 줄 정사각형으로 맞춰 64명이 일정한 동작으로 추는 춤이다. 이 춤이 유명한 이유는 <논어>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논어 제3장의 제목이 <팔일(八佾)>이다. 공자는 본래 주나라 왕실에서만 출 수 있던 팔일무를 일개 귀족이 자기 집 뜰에서 추고 있는 세태를 한탄해마지 않는다. 이렇게 주나라 때부터 전해져 온 팔일무는 고려시대에 송나라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전해졌고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특히 원래 취지와 달리 공자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釋奠大祭)에 팔일무가 포함됐는데 여기에 중국에서 사라진 전통적 요소가 더 많이 담겨 있어서 중국의 전문가들도 우리의 것을 참고한다고 한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왕조가 종료되고 1960년대 문화대혁명으로 전통문화와 결별했던 중국보다 우리나라에 유교적 전통문화가 더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던 팔일무는 오늘날까지 계속 연구되고 재해석됐으며 2022년부터는 서울시 무용단에 의해 현대적으로 재탄생하여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다. 2023년 7월에는 미국 뉴욕의 링컨센터에서 <일무(One Dance)>라는 이름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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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무> 뉴욕 공연 포스터

 

 

무엇이 누구의 것인가?

 

이렇게 길게 두 춤에 대해 설명한 것은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이다. 덩실덩실 어깨춤은 누구의 것이고 팔일무는 누구의 것인가? 만약 중국이 덩실덩실 어깨춤을 조선족의 문화로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 한다면 우리는 화를 낼 것인가? 서울시 무용단이 <일무> 작품을 한국의 것이라고 소개하면 중국인들은 화를 내야 할까?

 

이러한 질문을 받고 생각이 복잡해지거나 감정이 동요한다면 유럽의 예를 한 번 들어보자. 셰익스피어는 17세기 초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라는 작품을 썼다. 우리가 오늘날 카이사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력적인 야망가라는 이미지와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요염한 유혹자라는 이미지가 모두 여기서 유래했을 정도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친 작품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왜 영국인이 우리의 역사를 멋대로 해석했느냐고 화를 내는 법은 없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러시아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고, 독일 출신 음악가 헨델은 런던에서 활동을 하다가 거기서 죽었다. 유럽에서는 어느 나라 출신의 사람이 다른 나라에서 활동을 하고,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차용하여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특히 고대 그리스와 고대 이탈리아의 언어와 문화는 특정 국적을 넘어 공통의 문화유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유럽의 이러한 열린 전통은 미국으로 계승되어 오늘날 미국은 동서고금을 포괄하는 거대한 문화적 용광로가 되었다.

 

사실 문화는 그런 식으로 섞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누구나 좋으면 쉽게 배우고 즐길 수 있고, 나름대로 자유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 문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문화 현상을 두고 누구 것이냐고 묻고 싸우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K-컬처"에 엄밀한 우리의 전통문화 함량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는 유달리 무엇이 누구 것이냐는 싸움이 많다. 2000년대 초 강릉 단오제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할 때 중국 사람들은 한국이 자기네 것을 훔쳤다며 분개했다. 비슷한 시기 중국이 동북공정이란 이름으로 고구려 역사를 자기들 나름대로 기술하자 한국 사람들은 분개했다. 그 후로 한국은 김치, 한복 같은 것을 중국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화내고, 중국은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기네 전통의상과 언어를 멋대로 차용한다고 화를 낸다. 이 모든 다툼에는 한국이 공자를 자기네 사람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처럼 애초에 사실이 아닌 것도 섞여 있다. 게다가 서로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미디어가 상대방의 주장을 악의적으로 과장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극단적인 견해들을 "네티즌의 의견"이란 식으로 받아쓰는 무책임한 짓을 언론이 했던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언론이 파편화되면서 이런 선정적인 선동은 더 심해졌다.

 

문화는 넘나들고 교섭하고 진화한다

 

이러한 미디어의 장난질을 걷어내고 나도 여전히 무엇이 누구 것이냐는 잘못된 질문이 남는다. 이 질문은 "무엇"의 차원에서 보건, "누구"의 차원에서 보건 일종의 착각이다. 첫째, 우리가 누구 것이냐고 묻는 "무엇"이 문화라면 그 질문은 유효하지 않다. 문화의 기원과 발전은 별도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덩실덩실 어깨춤과 팔일무의 예를 들었듯이 문화는 넘나들고 교섭하고 진화한다. 김치도 그렇고 한복도 그렇다. 특히 중국의 고대문화는 한국ㆍ북한ㆍ일본ㆍ베트남 등 한자 문화권의 공동 자산이라고 봐야 한다. 삼국지는 한나라 말기 삼국시대에 벌어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명나라의 나관중이 쓴 소설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적벽가>라는 판소리를 만들어 불렀고, 일본에서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 팔았다. 강릉의 단오제는 중국 단오절에 기원을 두긴 했지만 별도의 문화전통이 축적된 지역 축제이다. 문화는 특정한 누구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민족과 국가를 소급적용해서는 안된다

 

둘째, "누구"라는 물음도 과거의 국가ㆍ민족이 오늘날과 다르다는 점에서 착각이다. 대표적인 예가 고구려이다. 고구려는 부여의 왕자가 졸본을 도읍지로 삼아 세웠던 나라이다. 그의 손자들이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했고, 고구려 자신도 훗날 평양으로 도읍지를 옮겼다. 즉 오늘날 한반도 거주민과 관계가 깊다. 그리고 대체로 우리 민족은 고구려를 자기들의 직접적인 선조라고 믿고 살았던 반면, 중국의 한족(漢族)들은 전혀 그런 인식이 없었다. 고구려가 강성했던 시기는 중국의 "5호16국" 시대에 해당한다. 다섯 오랑캐와 열여섯 개 나라가 난립했던 혼란기이다. 그런데 고구려는 "5호"에도 "16국"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즉 전통적인 중국인들은 고구려를 자기 역사라고 인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의 도읍지를 비롯한 거대한 영토의 많은 부분이 오늘날 중국이다. 선비ㆍ거란ㆍ여진ㆍ몽골은 물론 한족들도 천년 이상을 옛 고구려 영토에서 터 잡고 살았다. 그 세월을 지나 오늘날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과 우리 민족이 나뉜 마당에, 다민족 국가 중국이 자기 지역의 고구려 역사와 유적을 나름대로 정리하려는 시도를 비판할 수만은 없다. 그것은 마치 우리 혈통을 지닌 사람들이 중국 국적을 가지고 조선족이라는 실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부정하는 것과도 같다. 조선족을 전부 우리나라로 데리고 올 수도 없고, 우리나라가 그들을 직접 관리할 수도 없는 것처럼, 고구려의 역사ㆍ문화를 우리만 얘기할 테니 너희는 말도 꺼내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연히 중국도 고구려를 배타적으로 독점할 수 없다. 고구려에 대해 한국과 중국은 서로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기보다 "그런 나라가 그때 거기에 있었다"라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민족과 영토를 과거에 소급적용해서는 안된다.

 

마치며

 

이상으로 한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는 "무엇"이 "누구" 것이냐는 착각에 대해 알아보았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 따질 것도 있고, 경쟁할 것도 있겠지만 어떤 문화유산이 누구의 것이냐는 불필요한 싸움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세 번째 길목 칼럼을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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