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별91

2025년 천막의 봄 - 새만금신공항 부동의 촉구

2025년 천막의 봄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촉구 전북지방환경청 천막농성

 

 

지난 2월 7일부터 삼일절까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희망 뚜벅이 구미에서 서울 350km 23일 중 9일간 142km를 걷고 나서 열흘 동안 르포를 완성했다. 이미 진은 다 빠졌고 또다시 닷새간 수정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청명이었다. 세종시에서 하던 새만금신공항백지화 천막 농성장을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촉구를 위해 전주 전북지방환경청 앞으로 옮겼다고 했다.

 

"나는 3월 24일부터 26일까지 2박 3일간 연대하기로 했어. 별은 어떻게 할래?"

 

청명은 같이 하자고 말하지 않고 내 의견을 물었다. 그 사안이 무엇이든 청명이 하는 일이라면 옳은 일일 거라는 믿음 위에 그이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렇게 천막농성을 하기 위해 캠핑용품을 준비했다. 침낭과 시트와 베개, 일 년에 하나씩 사 모은 의자와 간이 테이블과 세면도구. 녹색평론 두 권과 <길 위의 신부 문정현 다시 길을 떠나다>와 바느질 도구.

 

 

2025년 3월 24일 월요일 천막농성 1143일 차

 

수업이 끝나자 학교에 미리 와 기다리고 있던 청명을 태우고 전주로 향했다. 전북환경청 앞에 파란 천막이 쳐있었다. 천막 안에는 전북 녹색연합 김지은 사무국장이 수도자처럼 앉아 있었다. 자전거 도로를 피해 인도와 화단에 걸친 천막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각종 살림 도구와 피켓들이 있었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은 2022년 2월 6일부터 세종시 국토교통부·환경부 앞에서 3년 넘게 새만금신공항 철회 촉구 천막농성을 이어왔다. 그런데 2025년 2월 25일, 국토교통부 서울지방항공청이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협의 기관인 전북지방환경청에 접수했다. 전북환경청이 이 평가서에 부동의하면 새만금신공항 계획은 철회된다. 그래서 3월 10일부터 전주에 있는 환경청 앞으로 천막을 옮겼다.

 

피켓 선전전은 출근 시간인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점심시간인 12시부터 13시까지, 퇴근 시간인 18시부터 19시까지. 그간 전국에서 300명 넘는 이들이 자원해서 천막을 지키고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했다. 이제 전북환경청이 환경영향평가에 부동의만 하면 새만금신공항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총력전을 하는 것이었다.

 

청명은 2년 전부터 세종시 국토부 앞에서 새만금신공항 반대 선전전을 했다. 그이가 생각하는 '연대는 각자 할 수 있을 만큼 조금씩 참여하고 경계를 허무는 것'. 주거지에서 가까운 곳 연대체를 찾다가 청주에서 세종시가 제일 가까워 2023년 6월부터 새만금신공항 천막농성을 갔는데, 요일별 당번이 있다는 소식을 성가소비녀회 사도요한 수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평소 새벽에 일찍 일어나니 2023년 10월부터 매주 금요일 아침에 국토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그곳에서 노래 부르고 흥을 돋워 꽤 유명했던 모양이다.

 

한 사람이 무언가를 꾸준히 하면 주변 사람도 관심을 갖고 동화되기 쉽다. 그렇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청명 따라 전주까지 가서 새만금신공항 반대 피켓을 들고 천막농성을 했다. 어찌 보면 작년 7월부터 올 1월까지 거의 매주 부안군 해창갯벌과 전북도청 앞에서 새만금 상시 해수유통과 생태계 복원을 위한 월요 미사에 참석했던 나와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선전전을 한 청명이 한자리에 있는 건 친구 관계를 떠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천막농성 1143일 차 18시부터 19시까지 천막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길 건너 현수막들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수라갯벌에 공항건설은 또 다른 조류충돌 참사를 예고하는 것이다'

'군산공항 이미 있다. 새만금신공항 필요없다'

'폭망한 새만금잼버리가 경고한다. 새만금신공항 부동의하라'

 

피케팅 후 천막 안에서 싸간 도시락을 먹었다. 찬밥에 김치 콩나물국과 장아찌와 파김치와 삶은 달걀이 전부였지만 자급하는 식사가 마음에 들었다.

 

비움 실천의 원조인 청명은 요즘 트레일 러닝 조끼에 모든 살림을 가지고 다닌다. 옷도 얇았다. 대신 내가 두 배로 준비해 갔다. 파카도 두 벌, 침낭과 베개도 두 개씩. 수년간 순례하며 사 모은 것들로 이젠 옆 사람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천막 안 펼쳐진 잠자리 매트 옆에는 핫팩과 귀마개가 있었다. 바로 옆 차도에 차들이 빠르게 달렸다. 그때마다 굉음이 스쳤다.

 

밤의 천막은 소음 외에도 화장실이 문제였다. 환경청은 퇴근 시간이 지나면 문을 닫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려면 170미터 전방에 있는 건물로 가야 했다. 세면대 수도에서 온수는 나오지 않지만, 24시간 열려있는 한 칸짜리 화장실이 감사했다. 오가는 길에 보니 환경청에는 심야까지 야근하는 이들이 있었다. 열 시 반쯤 청명 따라 일찍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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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농성 1143일 차

 

 

2025년 3월 25일 화요일 천막농성 1144일 차

 

새벽 두 시 반에 깼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네 시 반에 다시 깼다. 아침잠 없는 청명 덕에 새벽 다섯 시에 누룽지를 끓여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피켓을 들어 보이며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에 부동의 해야 함을 알렸다. 피케팅을 하며 도로를 유심히 보니 차선마다 금이 가 있었다. 밤새 맹렬히 달리는 차들의 무게를 아스팔트가 감당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오전 11시, 구례와 산청에서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사람들이 승리의 소식을 가지고 연대 방문했다. 며칠째 무섭게 번지는 산불 때문에 인명 피해가 발생한 하동 지역의 활동가들은 오지 못했다.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은 지리산 육모정에서 고기삼거리 거쳐 해발 1170m 정령치까지 약 13km 구간을 친환경 전기열차로 연결하려던 사업으로 사업비만 1000억 원 이상 소요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전북지방환경청이 남원시가 재신청한 '산악용 친환경 운송시스템 시범사업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지난 11일 부동의 결정을 내렸다. 이에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와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은 연대 기자회견으로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부동의를 강력히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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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와 기자회견

 

 

기자 회견문에 따르면, 새만금신공항 사업은 환경파괴·생태학살을 막을 대안이 결코 없으므로 당연히 철회해야 하는 사업이다. 새만금신공항 부지인 수라 갯벌 반경 13km에는 저어새, 황새, 흰발농게, 금개구리, 삵 등 법정 보호종이 무려 64종에 이르며 수많은 야생동식물이 살아가는 생명의 터전이다. 이곳은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의 핵심 기착지로, 이곳을 지나는 도요새의 먹이터이다. 특히 저어새는 세계적으로 오륙천 마리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 1급으로 90% 이상이 한반도에서 번식하고 있다. 그러니 이곳이 사라지면 세계적으로 소중한 생명들도 함께 사라진다.

 

또한 이곳에 서식하는 조류는 24만 마리에 이르며, 환경부의 10년간 자료에도 새만금신공항 부지에는 겨울 철새 154종, 21만 마리로 국내 공항 중 가장 많다. 새만금신공항의 조류충돌 위험도는 최근 조류충돌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무안공항보다 650배(13km 이내:항공기 조류충돌 99%가 공항 반경 13km 내에서 발생. 610배/5km) 높다고 한다.

 

전북지방환경청은 남원의 지리산산악열차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부동의 결정을 내린 것처럼 새만금신공항에 대해서도 부동의해야 한다. 지리산을 살리고 수라갯벌도 살려야 한다.

 

'지리산과 새만금은 하나입니다.

생태학살 자행하는 개발사업에 맞서고 막아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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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한가와 우유도 신공항 반대

 

 

점심 식사는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에서 로컬푸드 밥상을 대접해주었다. 푸짐하고 맛있게 식사하고 돌아오니, 12~13시 피케팅을 김형우 동지 혼자 하고 있었다. 남은 시간 함께하는데 맞은편에서 뿌연 남풍이 거세게 불어 몇 번이나 몸이 뒤로 밀렸다.

 

모두 돌아가고 조용한 시간이 찾아왔다. 모래바람이 거세게 몰아닥쳐 천막 입구를 지퍼로 닫아 3분의 2 정도 내렸다. 천막에서 읽으려고 책을 세 권이나 가져왔다. 그런데 먼저 배낭에 달린 몸자보 테두리를 홈질로 시쳤다. 세 면을 하고 나머지 한 면이 남았다. 오후 세 시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투두두둑-

 

불어오는 광풍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천막 한쪽 지퍼가 뜯어졌다. 청명은 밖에서 찢어진 천막을 부여잡고 나는 안에서 서둘러 짐을 옮겼다. 현수막을 잘라 천막에 대고 꿰매고, 찢어져 가는 지붕도 꿰매려고 했다. 잠시 후 달려온 김근오 전북 녹색연합 새만금갯벌복원위원장이 실과 바늘을 구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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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천막에서 날아간 물품 주워오는 청명

 

 

30분쯤 후 팽팽문화제 팽수 박상주 동지가 달려왔다. 그는 천막에 구멍을 내 타이로 묶자고 제안했다. 청명은 불붙은 담배로 천막에 구멍을 뚫으러 흡연자를 구하러 가고 나는 텐트 팩을 버너 불에 달궜다. 상주 동지가 밖에서 천막 모서리 옆에 열로 구멍을 뚫고 플라스틱 타이로 묶었다. 전문가 솜씨였다. 이어 들뜬 천막에 팩을 박아 고정했다. 나는 김근오와 함께 찢어져 가는 지붕을 바느질했다. 광풍의 위력을 몸으로 체험해 보니 산불 현장에서 불이 날아간다는 게 비로소 실감되었다.

 

보수공사를 다 하자 저녁 여섯 시가 되었다. 낮에 피케팅 하셨던 형우 동지가 다시 왔다. 전북 녹색연합 김지은 사무국장의 긴급 연락을 받은 그가 자신보다 먼저 도착할 수 있는 상주 동지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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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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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보수공사 후 저녁 선전전

 

 

우리는 함께 18시부터 19시까지 피켓을 들고 저녁 선전전을 했다. 그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천막 공사를 완벽하게 해 준 상주 동지가 빠르게 계산을 했다. 그리고 천막에도 간식을 시켜주었다. 즐겁게 간식을 먹으며 유쾌하게 담소하다가 김근오의 다른 이름 '나오'가 탄생했다. 또 하나의 평등한 관계가 이루어졌다. 밤의 천막에서 웃음소리가 번져나갔다.

 

다들 떠나고 청명이 잠들자, 자정을 전후해 천막 밖에 나가보았다. 밤새 무섭게 굉음을 내는 차량들이 덤프트럭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어딘가에서 또 심야 공사를 하는 건 아닌지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아니었다. 평범한 승용차들과 택시가 지나다닐 뿐이었다. 도시의 밤은 왜 이리 잠들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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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천막

 

 

2025년 3월 26일 수요일 천막농성 1145일 차

 

이른 아침 천막에서 간단히 식사하고 8시부터 9시까지 피켓 선전전을 하고 있었다. 사흘 만에 멀리 남쪽 산의 형체가 드러났다. 그 무시무시하던 황사주의보가 끝났다. 전날 보았던 지리산살리기 정정환 운영위원이 다시 왔다. 숙련된 손길로 기자회견 때 들었던 현수막을 나무에 동여맨 그와 교대하고, 청명을 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주고 왔다. 전북 녹색연합의 김지은 사무국장은 전날부터 아침까지 우리에게 밥을 사주고 싶어 했지만, 청명이 출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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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농성 교대

 

 

청명은 선전전 때 내게 사주겠다던 밥값과 차량 연료비를 합쳐, 지난해 한빛 1·2호기 수명연장 영광 주민공청회장에서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 문제점을 알리며 한수원이 일방적으로 강행한 주민공청회의 부당성을 항의한 영광 지역 탈핵 활동가들에게 청구된 벌금과 소송비용 약 1500만 원 모금에 나와 함께 참여했다. 그동안 청명의 운동 방식을 곁에서 보아온 나로서는 어느 곳에서나 직접 참여와 후원으로 연대하는 친구의 모습이 늘 대단해 보였다.

 

그날 밤 청명과 문자 인터뷰를 했다.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촉구 2박 3일 천막농성을 하면서 느낀 점과 앞으로 어떻게 연대할 것인지요?"

 

"일명 비움길을 통해 연대하는데, 비움길이란 누구나 즐겁게 살기 위한 공감과 연대의 발걸음이다. 당면한 지구시스템의 위기를 맞아, 시대적 과제인 양적 질적 에너지 전환의 실천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사회는 크게 인간사회와 확장된 생명 사회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저마다의 활동을 이어가며 생존과 풍요를 꿈꾼다. 이는 관계라는 그물망에 기대어 이루어진다. 생명체 간의 협력과 대립을 통한 삶의 결과는 생존과 풍요의 질을 좌우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협력보다는 대립을 낳았으며 강한 권력주의 사회로 자리 잡는다. 결국 파괴적 형국의 잔재는 생명 사회에 각종 위기로 나타난다. 경제위기, 전쟁위기, 핵위기, 기후위기 등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생명 사회의 파괴를 목표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사회구성의 개체로 존재하는 인간의 행태가 어떤가에 따라 현재와 미래의 파국과 희망이 결정된다. 생존과 풍요의 삶은 누구나 원하는 희망이다. 개체인간과 인간사회는 모든 생명체의 희망을 추구해야 한다. 누구나 생존과 풍요가 보장되는 생명 사회로의 전환. 누구나의 희망을 바라봐야 한다.

 

역사는 권력의 역사다. 폭발 직전의 위기시대로 몰아온 권력의 역사는 중지되어야 한다. 역사적 전환의 시대여야 한다. 의식의 전환,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하다. 위험성을 감지하며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끊임없는 추구, 권력적 행태에 대한 반성과 성찰. 비록 당장은 낮은 권력 행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환경이라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자본주의가 죄어놓은 권력적 틀을 조금씩 조금씩 끊어내어야 한다.

 

부분과 전체를 아우르는 삶,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삶, 생존과 풍요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비록 그 연대의 흐름이 더딘 슬로우 slow 운동일지언정 말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보다 인간은 잔인하고 무자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편리함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그 편리함이 언젠가 나의 눈물로 돌아온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혼돈을 두려워하지 말자. 처음 길은 원래 어렵다."

 

청명의 40년 노동과 운동의 현재가 집약된 에너지 전환 실천과 대안에 관한 생각 중 일부를 발췌했다. 지금은 거대 담론 중 구체적 행동 실천인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촉구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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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

 

 

2025년 3월 28일은 2003년 새만금 삼보일배를 시작했던 날이자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천막농성 1147일 차였다.

 

'새만금 상시 해수유통으로 바다를 살리자!

새만금신공항 백지화로 수라 갯벌 지키자!'

 

2003년 새만금 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 평화를 염원하는 삼보일배를 기억하며, 전북도청에서 새만금 살리기 기원 100배를 하고, 전북도청에서 전북지방환경청까지 행진 후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촉구 결의대회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수업이 있어 안타깝게도 함께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틀 후인 3월 30일,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가톨릭 갤러리 현에서 김정용 사진가의 4.16 세월호 11주년 사진전 준비를 돕던 중에 완두로부터 동영상을 받았다. 문정현 신부님께서 3월 28일 '새만금 살리기 행동의 날'에 환경청 앞 천막에서 기도하며 사시겠다는 선포였다.

 

[▶ 유튜브에서 보기]

[▶ 유튜브에서 보기]

 

아아~ 우리 신부님

 

 

2025년 4월 1일 화요일 새만금 백지화 천막농성 1151일 차

 

월요일 수업을 하고 화요일에 전주로 달려갔다. 만우절 거짓말처럼 구순에 가까우신 문정현 신부님이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천막 맞은편 환경청 앞길에 새로 친 천막 앞에 앉아계셨다. 그 앞에는 두꺼운 목재가 놓여 있었다. 문정현 신부님 서각기도 작품이 될 나무들이었다. 천막과 보도블록을 달군 따사로운 오후 햇볕 아래에서 완두는 서각 글씨에 검은 아크릴 물감으로 칠을 하고 있었고, 더덕과 마후라는 땅바닥에 털썩 앉아 고기 잡듯 그물에 글씨를 바느질로 덧대고 있었다. 장기 농성을 하자면 일감이 있어야 한다는 전문시위꾼들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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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바람 천막 농성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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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님과 완두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무기한 천막농성 첫날, 신부님의 출사표를 게재한다.

 

"전북지방환경청의 새만금 국제공항 환경영향평가 부동의를 촉구한다."

- 전북지방환경청 앞, 천막농성에 돌입하며 -

 

길 위의 신부 문정현

 

박정희 유신 독재가 가고 전두환 군부독재,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로 겨우 이뤄낸 민주화, 이후 다시 유신 독재의 잔재인 박근혜가, 그리고 촛불 혁명을 통해 형성된 문재인 정권은 윤석열 정권을 만들었습니다. 세상이 참 더디게 바뀌어 가는 사이 결연했던 맹세를 뒤로하고 많은 동지들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권력을 좇아 기득권 언저리로 향했습니다. 세상이 조금은 바뀌었나 싶으면 어김없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세력들이 득세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부정과 부패, 생명을 말살하는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재난과 참사가 번갈아 일어나며 무고한 생명들이 처참히 죽어가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파괴는 좌나 우, 진보나 보수와 상관없이 행해졌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새만금 사업입니다. 정권이 7번이나 바뀌는 동안 새만금 사업은 타당성이 검토되기보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개발의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바다가 통장'이라며 새만금 갯벌과 바다에 기대어 살던 어민들은 생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갯벌을 서식처로 삼은 생명들은 파괴의 한복판에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2003년 3월 28일 오랜 동지이자 형제인 문규현 신부는 삼보일배로 65일을 기어서 부안 해창 갯벌에서 서울까지 고난의 행진을 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는 저로서는 매일이 눈물바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몸을 던지는 것으로도 부족했을까요.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새만금 개발사업은 파괴의 화신이 되어 마른 갯벌 위에 모래성을 쌓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새만금 국제공항을 짓는다고 합니다. 군산미군기지 바로 옆 수라 갯벌에 짓는다고 합니다. 군산 미 공군의 전투기가 날아오르는 폭음을 들을 때면 마음속에 화가 불같이 일어납니다. 자국민을 지켜야 할 정부가 나서서 주민들의 땅을 빼앗아 미군에게 바치고, 정작 주민들이 미군 기지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은 나 몰라라 했던 게 지금껏 정부가 보여준 태도입니다. 그런데 미군기지 바로 옆에 공항을 지으면서 독립적인 민간 공항이라고요? 그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실제로 공항의 기본계획에 주한미군의 요구를 수용했고, 관제권도 미군이 갖습니다. 이게 민간의 국제공항일까요? 사실상 미군기지 확장입니다. 사람들을 속이고 또 속입니다.

 

수라갯벌에 가 보십시오. 온갖 생명이 넘실거리고 새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나마 살아 있는 갯벌을 또 파괴하겠다고요? 조류충돌위험이 무안공항보다 610배 높다는데 이곳에 공항을 짓겠다고요? 도대체 이 생명들을 파괴하는 죄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까.

 

새만금 국제공항 기본계획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가 현재 전북지방환경청에서 검토 중에 있다고 합니다. 환경영향평가에 환경청이 '동의' 의견을 낸다면 새만금 국제공항은 일사천리 진행될 것입니다. 무안공항의 제주항공 참사를 겪고도 조류충돌 참사가 예상되는 새만금 국제공항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이 부끄러움을 어찌할까요. 수라 갯벌을 쓸어버리고 미군기지를 확장하는 새만금 국제공항이라는 이 사기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이 억울함을 어찌할까요. 저는 이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전북지방환경청 앞 천막 농성에 함께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길 위에서 한평생을 인권과 평화를 위해 싸워왔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일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언제나 길 위에 섰습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사제인 저로서 제 할 몫을 다 할 뿐입니다. 비록 90을 앞둔 늙은 몸이지만 이 어리석은 사업을 막아내야 한다는 절절한 기도를 하려고 전북지방환경청 천막농성에 합류합니다. 비상계엄 사태 후 대한민국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해 혼란스럽지만, 제발 생명과 평화에 대한 양심으로 전북지방환경청이 새만금국제공항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부동의'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할 것입니다.

 

2025년 4월 1일

 

 

저녁 6시가 가까워지자 전날 밤새 천막을 지킨 완두는 철수하고, 마후라와 먼저 있던 이들은 탄핵을 외치러 각자의 지역으로 향했다. 곧이어 대전에서 데모 자매 은실과 명이가 왔다. 1151일 차 밤 천막 당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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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일 차 저녁 선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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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 자매 명이와 은실

 

 

신부님과 더덕과 우리는 환경청에서 보이는 동태탕 집으로 갔다.

"제가 대접할 테니 마음 놓고 드세요."

수저도 들기 전에 내가 말했다. 가난해 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식당에서 여러 사람이 밥을 먹을 때 먹는 내내 누가 계산할지, 각자 계산할지 염려하느라 밥을 음미할 수 없음을.

 

평화바람에게 밥을 사기란 쉽지 않다. 2019년 가을, 제주 제2공항 반대 9일 기도에서 평화바람을 처음 만나, 2022년 봄바람 순례 후 작년 여름부터 월요미사와 팽팽문화제를 통해 자주 만난 셈이었지만 항상 그들이 정성껏 차려준 밥상을 받았다. 어쩌다 식당에 가서 바지락죽이나 짜장면을 먹어도 늘 신부님이 계산하셨다. 그게 참 이상하고 신선했다. 여태 본 목사님들은 대부분 잘 차려진 밥상에 감사헌금까지 받는 게 당연한 문화였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며칠 전 상주 동지가 한걸음에 달려와 찢어진 천막을 말끔히 보수해 주고도 밥까지 사준 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기뻤을지도.

 

깜깜한 밤이 되자 데모 자매들에게 천막 사용법을 알려주고, 신부님께 핫팩을 세 개 드리고 천막을 떠나왔다. 불 꺼진 전북지방환경청 앞에 천막 두 동이 밤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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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안 문정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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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4월 3일 오전 11시가 되자 즉흥적으로 하루 금식을 시작했다. 다음 날 오전 11시가 대통령 탄핵안 판결일시였기 때문이었다. 평소엔 아나키스트를 꿈꾸지만, 국가를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평소 하는 일도 험한 데다가 며칠 전 '집필 노동자들이 직접 쓰는 윤석열 파면한 줄 선언'을 했기에 운명이 더 험난하게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상식이 대통령의 덕목이 되었다. 이 땅의 민주주의 역사를 45년 후퇴시킨 수치를 두고 판관들은 무얼 망설이는가.'

 

 

2025년 4월 4일 금요일 새만금 백지화 천막농성 1154일 차

 

이른 아침, 평소 강의 때 입는 감색 울 재킷 왼쪽 깃에 빨간 동백꽃과 노란 리본 배지를 달았다. 강단에서 신념을 일부러 드러내는 건 처음이었다. 어쩌면 계약 기간이 연장되지 않을 수도, 학생들과의 즐거운 만남이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운명의 날이라는 떨림 때문이었다.

 

오전 11시 정각부터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판결문 낭독이 시작되었다. 전문을 싣고 싶지만, 맨 마지막만 싣는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오후 보충수업까지 마치고 전주로 달려갔다. 바듯이 1154일 차 저녁 6시 퇴근 선전전이었다. 문정현 신부님, 문규현 신부님, 완두, 무밍, 재이, 세연, 김지은 전북 녹색연합 사무국장과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김성만 회원, 전북 녹색연합 조선원 회원, 사회주의정당건설연대 황정규 사무처장. 그중 문정현 신부님께 반갑게 다가갔다.

 

"신부님~"

"어떻게 왔어?"

"기뻐서요."

 

어느덧 해남의 나무도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뒤에선 완두가 천막 앞에 떨어진 신부님의 서각 부스러기를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싸악싸악 비질 소리에 일상이 점점 회복되는 듯했다. 그랬다. 지난 겨우내 우리는 파괴적 몰상식의 극치 때문에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모든 게 마비되었고 그럼에도 살려고 기를 썼다. 마치 얼어붙은 땅 밑에서 오그렸던 생명을 틔워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꽃망울처럼. 그렇게 천막농성 1154일 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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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문규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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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4일 차 저녁 선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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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신공항부동의촉구 천막농성 1154일 차

 

 

2025년 4월 8일 화요일 새만금 백지화 천막농성 1158일 차

 

3월 24일 1143일 차 농성 천막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내 눈엔 꽃나무가 제일 먼저 들어왔다. 한뎃잠 잘 사람보다 햇빛 못 받는 화단의 꽃나무가 걱정되었다. 그런데 4월 8일 1158일 차 농성 천막 안 철쭉에 분홍 꽃이 피어있었다. 바야흐로 봄. 천막 속 꽃나무가 햇빛 받고 비 맞을 수 있게 '전북환경청은 죽음의 공항이 아니라 생명의 갯벌에 동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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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전북 녹색연합 사무국장

 

 

그것을 위해 김지은 사무국장은 끊임없이 새로운 피켓을 만들었고, 정의당 시의원과 도의원이 나와 있었고, 맞은편 천막에는 문정현 신부님의 일명 팬클럽 회원들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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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님 서각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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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님 서각 기도

 

 

향유 옥합 깨뜨려 예수님의 발을 씻는 마리아가 그랬을까? 일주일 가까이 천막을 지키는 해남의 나무는 인도에서 배운 손길로 문정현 신부님의 50년 전 인혁당 사건 때 크레인에 떨어져 부서진 무릎과 갖은 경찰 폭력으로 멍든 종아리를 오일로 마사지해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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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님의 부서지고 멍든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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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의 나무와 문정현 신부님

 

 

저녁 6시가 되자 피켓들이 전북지방환경청 퇴근길에 줄지어 섰다. 피켓 사이로 해남의 나무가 부는 멜로디언 가락이 흘렀다.

오는 4월 11일 금요일 오후 5시 전북지방환경청(전북 전주시 덕진구 안전로 120) 앞 새만금신공항백지화행동 농성장에서는 새만금 신공항 중단을 위한 작은문화제를 연다. 해남의 나무와 김형우 동지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밤이 되자 한 젊은이가 인스타그램을 보고 천막 밤샘 농성하러 왔다. 덕분에 군산과 전주에서 보따리 싸 오신 연세 있는 분들이 귀가하실 수 있었다. 연대가 점점 확장되고 있다. 새만금신공항 사업은 철회해야 한다. 수라갯벌은 보존되어야 한다. 생명은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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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KB06165 1158일 차 저녁 선전전 (해남의 나무).JPG

 

 

4월 2일, 전북지방환경청은 국토교통부 서울지방환경청에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1차 보완을 요구했다. 조류 및 육상 해양동물에 대한 정밀조사, 13km 이내의 조류충돌 저감 대책, 세계자연유산 훼손, 새만금호 준설 영향 등에 관한 보완이었다. 이에 국토부 서울지방항공청은 보완서를 제출해야 한다. 전북지방환경청이 제출된 보완서에 동의하면 이 사업은 착공 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그러나 부동의하게 되면 새만금신공항 사업은 취소된다. 수라 갯벌의 운명이 전북지방환경청의 결정에 달려있다.

 

군산공항이 있는데도 그 옆 수라 갯벌 메워 거기 깃들어 사는 귀중한 생명들을 학살하고 중국 코앞에서 중국도 못 가는 신공항을 짓겠다는 새만금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에 전북환경청은 마땅히 부동의 해야 한다. 새만금신공항의 조류충돌 위험도는 179명의 희생자를 낸 무안공항보다 650배 높다. 이렇게 치명적인 충돌 위험도를 무시하고 동의한다면, 또 다른 조류충돌 대참사를 예고하는 것과 다름없다. 동식물과 사람 모두의 생명을 살리는 건 상식이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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