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샌드위치와 당근 샐러드
1. 혼자 밥먹는 것은 저녁보다 아침이 중요하다
저녁은 회식도 많고 식당도 많지만 아침은 그렇지 않다. 또한 아침식사는 게으름과 졸림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나는 어릴적 아침 식사 습관으로 이제 홀로라도 먹어야 한다.
어릴 적 아침식사는 어떤 소리와 냄새로 기억되었지?
시끄럽게 틀어진 아침 뉴스에는 체육관에서 울리는 대통령 목소리와 아침 햇살, 전날 챙기지 않은 어지러운 책가방, 그리고 여전히 한가한 고양이, 조간 신문 던지는 소리와 야쿠르트 ,누나 교복 깃 다리려 뿌리는 물 스프레이 소리.
출처: 대통령기록관
아침의 공기는 뉴스와 신문으로 그 날의 역사가 있었고 야쿠르트로 유산균이 있었으며 교복으로 지켜야할 규범과 고양이처럼 한가하게 살겠다는 미래의 다짐이 섞여 있었다.
이제는.
아침을 꼭 먹는 나로서는 7첩반상으로 차려먹으려면 집사를 두던가 해야한다. 아님 내가 집사로 취직하거나.
2. 오늘 아침은 먹다 남은 빵과 당근, 가지로 간단히 먹기로 했다
가지는 후라이팬에 물로 살짝 튀겨서 올리브 기름에 살짝 한번 더 굽는다. 그래서 빵에다 구운가지, 치즈, 당근 잎을 올린다. 삶은 계란은 토핑.
보통은 올리브로 구운 가지에 식빵에 넣어서 먹는다. 햄이나 계란보다 기름에 구운 느끼한 가지는 빵과 무척 어울린다.
오늘은 덴마크 치즈도 있고 샐러드용 당근잎이 있어서 곁들였다.
당근을 캐면 잎은 따로 뜯어서 샐러드를 해먹는다. 당근은 이빨이 부러질 정도로 단단하고 잎은 당근향을 머금은 스펀지케이크 처럼 부드럽다.
샐러드, 고구마와 계란은 회사 간식으로 싸가지고 간다
3. 당근 잎을 먹는 다고? 당신은 당근의 전체 모습은 어떻게 생긴걸까라는 의문이 생길것이다
당근을 먹으며 유유히 사냥꾼 앞을 지나가는 애니매이션은 누구나 보았을 것이다. 그때만이 당근의 전체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장면이다.
워너브러더스의 벅스바니 (출처:위키피디아)
우리는 사용자 입장에서 당근 뿌리만 보았지 전체를 알지 못한다. 마치 전체 상품 중 나사만 돌리는 모던타임즈의 찰리 채플린과 같고 쓰임새를 알길 없는 롱패딩 파카의 지퍼만 접합하는 열대지방의 노동자와 같다.
우리는 제품의 전체를 모르고 우리의 기원을 알지못하는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전체의 공정은 몰라도 다이소에서 간단히 사면 되고 전체 일은 몰라도 사용자가 시킨 것만 하면 된다. 나는 그 사이 모듈화된 노동자가 되었고 부분만 아는 소비자가 되었다.
나의 전체 모습과 정체성, 내가 어디로 왔는지가 궁금할 필요가 없는 인생인가 싶다.
왜냐하면 로컬푸드에 가면 굵은 당근을 천원이면 산다. 난 당근을 키우려고 모든 공정을 힘들게 일구었고, 비용은 밭 가느라 붙인 파스 값만 천원이 뭐야 천만원은 되겠네
내가 키운 것은 믿고 먹는 유기농. 로컬도 유기농이네. 허무. 왜 힘들게 키운 거지? 그럼.
보상심리로 왜 키웠는지 억지로 생각해 본다.
난 처음으로 당근의 잎을 보았다. 줄기도 보았다. 그리고 가지의 보랏빛 꽃도 보았다. 전체를 본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이고 설렘인지를 알게 된다.
당근 전체의 모습. 내가 키운 가지와 숟가락으로 크기 비교
4. 맛있다
글에 너무 의미를 두었다. 그냥 맛있다. 아침에 뉴스를 틀어 놓고 음악을 틀어 놓고 가지 샌드위치를 드셔 보시라. 당근은 걍 잎 안 먹고 뿌리만 먹을 수 있도록 마트에 사 두시면 된다.
가지도.
맛있는 아침식사는 인생의 큰 기쁨이다.
단, 전날 과음이면 이도 저도 안되고 출근하기 바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