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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의 걸으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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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의 걸으며 생각하며 3 - 파리에서 3.1절 100주년을 맞으며

posted Mar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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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하며 - 파리에서 3.1절 100주년을 맞으며

장송 드 사이(Janson de Sailly)라는 낯선 이름이 있다. 변호사였던 그는 꽤 부유했나 보다. 그가 기부한 재산으로 설립한 고등학교(Lycée Janson de Sailly)가 지스카드 데스탱 대통령, 리오넬 죠스팽 총리, 브루니 사르코지 여사 등 명사들이 다닌 파리에선 꽤 이름 있는 명문고로 꼽힌다.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배우 소피 마르소의 아들이 다닌다는 풍문을 듣기도 하였다.

파견 왔던 첫 해 2017년 겨울 가족들과 파리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 발자취를 따라 가보기로 하였다. 오페라 가르니에 위쪽 삼위일체 교회 근처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 위원부가 있다. 2006년 삼일절에 우리 정부와 파리시의 협조로 현판식을 하여 지금 그 현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파리 위원부와 더불어 장송 드 사이 고등학교도 우리에겐 의미가 있는 곳이다.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청사 현판-1.jpg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청사 현판

 


작년 가을 학기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첫째가 어느 학교로 진학할지를 결정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물론 가고 싶다고 다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공립 고등학교의 진학은 시험 없이, 지원한 고등학교에서 중학교 성적과 기타 사항을 고려하여 입학 여부를 결정한다. 불어가 짧아 더 상세한 내용은 알지도 못하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여기 와서 자주 내가 학부형이 맞나 하는 자괴감이 들곤 한다.
장송 드 사이 고등학교는 이위종 열사가 다닌 곳이다. 그는 이준, 이상설과 함께 헤이그에 파견된 특사였다. 구한말 외교관이었던 이범진 공사가 프랑스로 부임하였을 때 이위종 열사가 이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이후 러시아 육사를 거쳐 (프랑스 육사를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동부전선에서 러시아 장교로 활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학교 안에는 당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역사를 설명하는 상설 전시물이 있다고 들었다.


 

장송드사이 고등학교 정문-1.jpg

장송 드 사이 고등학교 정문에서

 

 

큰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17세기 프랑스 극작가로 명성이 높은 몰리에르의 이름을 따서 만든 Lycée Molière이다. 장송 드 사이 고등학교를 가고자 했으나 입학허가를 얻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같은 이름의 중학교를 졸업하고 교실만 바뀐 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기실 진학을 위한 상담을 할 때 큰 아이의 중학교 선생님들이 다른 학교로 옮기는 것보다 익숙한 교정, 같은 스타일의 교과 과정으로 운영하는 몰리에르 고등학교로 진학하기를 권하였다. 몇 개월 지나고 보니 그때 왜 그렇게 권하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일이 잘되어(잘못되어로 쓰는 게 맞을 것 같기도) 장송에 합격을 하였더라면 추가로 더 고생을 하였을 것이 틀림이 없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마다하고 굳이 장송을 지원하고자 하는 이유를 큰 아이에게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다. 몰리에르는 일 년 다녀 보았으니 새로운 학교는 어떤지 궁금하다고 그리고 좀 규모가 큰 학교가 어떤지 경험하고 싶다는 답이 왔다. 몰리에르는 한 학년에 2반 정도로 단출하나 장송은 십여 학급이 넘는 대규모이다. 학교가 한 블록을 차지할 만큼 사이즈도 크다. 이위종 열사가 아니라 친일 했던 작자가 다닌 학교였더라도 그런 생각을 하였을까 잠시 상념에 잠긴다. 오늘 3.1절 100주년 되는 날이다.

 

 

몰리에르 고등학교 정문-1.jpg

몰리에르 고등학교 정문

 

 

오늘의 사족: 1. 프랑스는 5,4,3제 학년을 운영한다. 중학교가 4년제이고 중2 때부터 제2외국어를 시작한다. 둘째가 작년 가을부터 스페인어를 선택하여 배우기 시작했는데 평음(平音, 예사소리)에 격음(激音, 거센소리)과 경음(硬音, 된소리)의 자음 발음에 보이는 데로 읽으면 되는 이 언어가 마음에 드나 보다. 불어보다 쉽단다. 영어와 스페인어를 불어를 통해 배우는 고통이 여전히 남아 있긴 하지만..
2. 중학교 때 3년 동안 제2외국어를 배우니 고등학교에서의 제2외국어는 이미 중급 수준이다. 어쩔 수 없이 큰 아이는 고등학교 제2외국어로 한글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모국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하는 아이러니가!
3. 학생 개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학제 시스템이다. 한글과 같이 제2외국어로 선택하는 학생의 수가 적은 과목의 경우 학생들을 별도로 모아 지정한 학교에서 토요일 수업을 진행한다. 토요일 한글을 수업이 열리는 곳이 장송 드 사이 고등학교이다. 큰 아이는 매주 장송을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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