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다리 산책을 시민의 품으로
-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아 도보다리 산책의 시민 참여를 제안한다.
지난해 4월 27일 남북 정상이 DMZ에서 함께 한 도보다리 산책은 한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선명한 이미지로 보여줬다. TV로 생중계된 이 역사적 장면은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머지않아 실현될 수 있는 현실이라는 점을 전 세계에 인식시켰다. 하지만 올해 2월 합의문 없이 끝난 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은 평화의 길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또 보여주었다.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해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남북이 협력해 추진할 사업으로 도보다리 산책의 일반 시민 참여를 제안한다. 다수의 시민이 비무장지대 도보다리를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면, 이는 시민이 주체가 되어 평화의 시대를 열어간다는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할 것이다.
냉전 체제가 평화 체제로 전환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개성공단으로 인한 실질적 이익이 남쪽 기업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입주 기업들이 가동 중단 이후 지속적으로 개성공단을 다시 열어달라고 요청해 온 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 한반도 구성원들은 평화를 열망하고 있고, 평화 체제를 실현하려는 노력은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시민사회의 여론 형성은 다수 대중이 의견을 표출하고 수렴해가는 집단지성의 과정이다. 여론은 사안의 합목적성과 긴급성에 따라 촛불집회와 같은 목표 지향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도보다리 산책의 시민 참여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시대정신을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가는 목표 지향적 행동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구세력과 새롭게 등장한 세력 사이에 긴장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냉전’에서 ‘평화’로의 전환은 ‘군사적 대결’에서 ‘경제적 협력’으로 균형추가 이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짐 로저스와 같은 세계적인 투자자가 금강산에 리조트를 보유한 한국 기업의 사외이사로 등장한 점은 ‘이익의 균형점 이동’이라는 동향을 감지할 수 있는 신호다. 이 신호를 따라 군산복합체라는 소수의 이익 독점자로부터 경제협력이라는 다수의 이익 공유자로 힘의 중심점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려왔던 소수세력에서 민간의 경제 교류와 개발 협력으로 이익의 주체가 전환되는 과정에서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쥐고 있던 기득권을 놓아야 하는 구체제는 전열을 정비하고 저항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우리 앞에 이러한 전환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예견되는 갈등을 조율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어렵지만 이 조율을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과거 냉전으로 발생한 이익은 소수에게 집중되었으나 현재 추진하는 평화체제와 경제협력의 과실은 다수에게 돌아가는 구도라는 점이다. 냉전이 가져온 분단체제에서 대화와 협력을 통해 평화체제로 가는 길에서 갈등을 뛰어 넘고 역사와 사회의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의지다. 민주주의를 형성해 가는 과정에 주체로 참가하는 다수 대중, 특히 깨어있는 시민들이 평화를 실현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일상에서 평화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도보다리 산책의 시민 참여로 시작하자.
이 제안이 가능한 것은 남북 군사 당국이 판문점 선언 이후 수차례에 걸친 회담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는 조치를 가시화했기 때문이다. DMZ 내 군사 시설과 장비에 대한 실질적인 무장해제를 통해 휴전선이라는 냉전 공간이 평화의 공간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시민이 참여하는 도보다리 산책의 공간적 범위가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DMZ 전역에 ‘평화올레’가 놓이기를 기원한다. 도보다리 산책이 일상화되고 이를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은 평화 체제를 다지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시민사회가 주도해 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 DMZ 평화인간띠 연결과 같은 대규모 시민참여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새로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시민들이 남북 정상이 시작한 도보다리 산책을 삶의 일상에서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