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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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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18 - Look for Magic Moments, 롱아일랜드에서 프로방스를

posted Jun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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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k for Magic Moments, 롱아일랜드에서 프로방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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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103 세 된 Julia Hawkins할머니가 Albuquerque에서 열린 National Senior Games(국내 연장자 경기)에서 100미터 달리기를 완주해서 화제가 되었다. 뉴욕타임즈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우리에게 “magic moments”를 열심히 찾고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살라고 이야기해주고 있다. 

https://www.nytimes.com/2019/06/20/sports/julia-hawkins-running.html
내가 경험한 “magic moments”들을 떠올려 본다. 처음 어머니가 미국에 딸을 방문하러 오셔서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Maid of The Mist”란 배를 타고 폭포 중심에서 사방에서 오는 물보라를 맞을 때, 그때 행복한 표정은 일부러 웃으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넘쳐흐르는 환희였다. 오레곤 포틀랜드에 사는 친구와 캐논비치(Cannon Beach)를 운전하고 가다 시원한 숲길에서 창문을 열었을 때 들어오는 피톤치드의 신선한 공기, 생각하면 아직도 상쾌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Sagrada Familia)에 들어갔을 때, 가우디가 이 건축을 위해 일생을 바쳤겠구나하는 경외심에 흘러나오는 눈물… 그런 순간들.  떠올리면 그 때의 감각, 정서들이 고스란히 깨어나는 것 같다.

작년 7월 초에 롱아일랜드 라벤더 농장, Lavender By the Bay에서 경험한 보랏빛 물결도 나에겐 그러한 매직의 순간이다. 라벤더는 일 년 중에 6월 말에서 7월 초 사이 꽃이 피고, 곧  수확을 하니까 볼 수 있는 기간이 한 달이 채 안 된다. 작년 5월 말에 생일선물로 앞당겨 남불 프로방스에 다녀왔었다. 프로방스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라벤더가 가득한 풍광을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아쉽게도 라벤더 밭으로 유명한 세낭크 수도원에 갔을 때 보라빛이 없는 라벤더 밭은 무언가 밋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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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말의 프로방스의 세낭크 수도원

 

 

롱아일랜드 사는 친구가 굳이 멀리가지 않아도 근처에 멋진 라벤더 농장이 있다고, 7월 초 생일 즈음에 함께 가자고 초대해 주었다. 롱아일랜드 레일로드(LIRR)의 Westbury역으로 친구가 마중을 나와 1시간 반을 운전하고 가니, 꽤 먼 거리였다. 차안에서 그동안 밀린 이야기,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농장에 왔다. 그 순간 앞에 펼쳐지는 보랏빛의 향연…  WOW의 순간이다. 밋밋한 세낭크 수도원을 라벤더 빛으로 물들게 한 멋진 생일 선물이 되었다.

농장 안으로 들어가니, 잉글리시 라벤더는 만개해서 벌써 다 꽃을 잘랐고 프렌치 라벤더가 한참이었다. 친구가 꽃을 한번 손으로 훌터 보라고 하니 손에서 라벤더 향이 진하게 묻어났다. 중간 중간 설치한 보라색 의자에서 쉬면서 라벤더의 물결 속에 머무를 수 있었다. 의자까지 꼭 보라색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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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즈워드의 시가 생각난다. 
 

골짜기와 언덕 위를 하늘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외로이 헤매다가
문득 나는 보았네, 수없이 많은
황금빛 수선화가 크나큰 무리지어
호숫가 나무 밑에서
미풍에 한들한들 춤추는 것을.
………………………………
그러나 그 광경이
얼마나 값진 재물을 내게 주었는지 나는 미처 몰랐었다.
이따금 하염없이 수심에 잠겨
자리에 누워 있으면
고독의 축복인
속눈에서 반짝이는 그들
내 마음은 차오르는 기쁨 속에서
수선화와 더불어 춤을 춘다.

 

오늘 본 이 라벤더의 광경이 워즈워드의 수선화처럼 마음이 가난할 때 떠올리면 큰 위안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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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라벤더 커트 한 묶음을 집었다가, 친구가 꽃잎 말린 것이 양도 많고 실질적이라고 해서 대신 한 봉지 샀다. 헝겊을 사서 속을 채워 눈가리개를 만들면 진정도 되고 잠이 잘 올 것 같은데, 내가 어느 세월에 헝겊을 사서 바느질을 할지 아서라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부엉이와 고양이 무늬의 헝겊을 사서 남편 하나 내 것 하나 만들어야지 하는 바람으로 샀다.(일 년이 지난 지금 역시 눈가리개는 만들지 못하고 헝겊 봉지에 채워 옷장에 넣었는데 아직까지 향이 남아 있다.)

오는 길에 눈에 띠는 그릭 음식점에서 기로스와 새우요리를 늦은 점심이여서 그런지 맛있게 먹었다. 길가에 있는 농장에 들려 복숭아를 사서 먹고, 모처럼 달달한 도넛을 먹을까하는 유혹도 받았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찻길에 바로 보이는 비치에서 발을 담가볼 텐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 남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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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 생일을 수박과 참외를 먹는 무더운 여름이 아니라, 라벤더 꽃이 만개한 보랏빛 향기가 가득한 날로 기억할 것 같다. 손에서 라벤더 꽃줄기를 만졌을 때의 묻어나는 향기, 나비와 벌이 날아다니며 바람결에 흔들리는 수많은 라벤더 꽃의 물결, 나도 워즈워드가 수선화에서 노래 한 것처럼, 외롭고 힘든 순간에 이 광경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장시간을 운전을 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 주며 힘과 사랑을 나누어준 친구가 내 삶의 마법의 순간으로 함께 떠오른다.

PS 1. Lavender by the 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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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avenderbythebay.com/
East Marion에 위치한 19에이커의 라벤더 농장. 잉글리시 라벤더와 프렌치 라벤더의 만개하는 시기를 미리 알아보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멀리 농장까지 가기 힘들면 유니온 스퀘어 그린마켓에 Lavender by the Bay 농장의 부스가 있다. 라벤더 화분을 사고 싶었는데 햇빛이 많이 필요하다고 해서 사지 못했다.

PS 2. 맨하탄에서 Lavender by the Bay 농장까지 차로는 두 시간 넘게 걸리니까, 시간 여유가 있으면 하루를 묵으면서 비치나 와이너리, 농장을 구경하고, 롱아일랜드 동쪽 끝인  Orient Point Ferry에서 배를 타고 9군데의 등대를 볼 수 있는 Classic Lighthouse Cruise를 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오리엔트 포인트 선착장 근처의 비치에는 동글동글하고 반투명한, 보석같이 예쁜 조약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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