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
현우진의 홀로요리 10 - 음식에 대한 세 가지 성격
“이 옷은 어디서 사셨어요? 처음 보는 색깔이에요. 국방색(군사문화의 잔재)도 아닌 것이……여기 사람 아니시죠? 코트가 특이한 게 예쁘네요.”
슈퍼 아줌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나는 대답도 하기 전에 계산대 옆 정육코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떻게 이걸 슈퍼마켓에서 팔 수 있지?’
한우 생고기를 슈퍼에서 파는 거였다.
“이거 먹을 수 있어요?”
정육 코너 아저씨의 당연한 걸 왜 묻지 하는 표정, 그럼 못 먹는 거 파나? 라는 표정.
서울은 생고기하면 냉동이 아닌 냉장고기를 말한다. 하지만 이곳은 생고기하면 날 것으로 먹을 수 있는 소고기를 말한다. (육회는 편의상 양념된 것, 육사시미라는 일본말을 넣은 것은 날로먹는 것으로 구분한다.) 서울에서 먹기 힘든 건데, 여기는 슈퍼에도 널렸네. 만 원어치 샀더니 된장찌개 끓일 때 넣으라고 잡부위를 공짜로 주셨다. 여기서는 잡부위라고 표현했지만, 오늘 도축한 정말 맛있는 한우 부위였다.
집에 들어오니 생고기를 펼쳐보니 참 많이도 주셨다. 소금에 생고기를 찍어 먹었다.
이것이 홀로요리의 정수였다. 사실 홀로요리의 정수는 라면과 캔 참치를 먹는 거지만.
한우를 소금에 찍어서 혼자 먹으니 너무 맛있었다. 뭔들 안 맛있겠나.
아무런 살림살이가 없이 이곳에 왔던 시절이었다. 냄비 하나, 숟가락 젓가락 프라이팬만 있었다. 남은 생고기와 한우 잡부위를 라면에 넣었다.
무슨 맛인지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소고기를 라면을 넣었더니 정말 삼양 소고기라면 맛이 났다. 아…그래서 소고기라면이구나. 인공첨가물과 향과 MSG가 아니라 정말 소고기라면을 먹었다. 아 각자 재료의 고유 맛이 있구나. 인공적으로 흉내 낸 걸 먹지 말고 정말 고유의 맛을 내는 재료를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새로 살게 된 동네와 친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슈퍼마켓에 갔다. 천 원 주고 깻잎을 샀다. 포장된 깻잎 봉투를 뜯는 순간, 깻잎의 향이 너무 진해서 연기가 나는 것 같았고, 깻잎 포장지 사이로 알라딘의 지니가 나타날 정도로 향이 진했다.
음식은 정말 향이 중요하구나. 향은 싱싱함이었다. 향을 잃어버리는 것은 생기를 잃는 것 같다는 것을 알았다. 향이 난다는 것은 싱싱하고 생기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향이 나는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 것을 프랑스 향수처럼 싱그럽고 상큼한 향이 나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건 크리스치안 디오르의 생각일 뿐이겠지.
향기가 난다는 것은 자신의 고유함, 개성, 생각을 지키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지난 홀로요리에도 말했듯이 당근 잎을 샐러드로 만들어 먹을 때도 잎에서 당근향이 난다. 잎은 당근 출신이니까. 방금 딴 가지를 바로 베어 물면 사과향이 난다. 루꼴라 잎은 정말 갓김치처럼 톡 쏘는 맛을 내며, 겨울 무는 루꼴라 향과 사카린 맛 같은 달콤한 향이 흙뿌리 사이로 피어난다.
그 어떤 향도 좋다 나쁘다로 비교할 수 없이 고유의 향이 있다. 그래서 감에서 감 향이 나는 것이고 감에서 감 맛이 나는 이유와 같다. 악취가 아닌 향기가 나는 것은 바른 생각, 바른 행동과 더불어 자신의 고유함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또 하나, 자신의 생각이 늘 싱싱해야 향기가 나는 것이다. 싱싱한 사람은 향기가 난다. 그리고 향기 나는 재료로 요리를 해야 한다는 것, 깻잎의 교훈이었다.
세 번째로 어떤 식당에 갔을 때 일이다. 아니 어떤 식당이 아니라 대부분 식당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거 먹어보라고 독특한 식감을 느낄 것이라고.
‘식감?’
예를 들어 서울에서는 민어회가 비싸서 얇게 먹는 것이지만 민어회는 두껍게 먹어야 한다. 그래야 떡살 같은 ‘식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완두콩도 새로운 식감이었고, 죽순도 새로운 식감이었다. 토종닭도 질긴 것 같은 데 질기지 않은 식감, 수타로 만든 우리밀 칼국수도 새로운 식감이었다. 그렇다. 음식에서 식감이란 것이 있구나. 그것은 탄력과 같고 각자 재료의 내부에 있는 밀도와 같다. 질기지는 않지만 흐물흐물하지 않은 식감이 좋다는 것을 느꼈다. 생각이 너무나 단단하지 않고 그렇다고 흐물흐물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게 고유의 맛과 향, 그리고 식감이 있고 제각각이다. 한우와 깻잎, 민어회가 가격은 다르지만 각자의 맛과 향기, 그리고 식감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동네는 내게 요리를 알려준 곳이다. 그리고 홀로 있다는 것은 외롭다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가만히 동네를 둘러보면, 도시가 있지만 숲과 강으로 둘러싸져있다. 멋있게 표현했지만 주위가 시골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길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전에 공수부대가 길 두개만 막아도 이 동네가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먹는 걸로 장난치는 걸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동네이기에 같이 먹고 같이 단결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내일이면 여기를 떠난다.
지금 일하는 곳이 시골스러움에서 도시로 완성되면 난 떠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예언했으니까. 가볍고 심플하게 살아야지해도 떠나기 위해서 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책도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좀 남아 있네.
내일 떠날 곳은 또 어떤 곳일까?
그래도 홀로 요리는 계속되겠지.
나주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