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진의 홀로요리 12 - 카레의 기억
엄마는 치매.
다행인 것은 치매 중 가장 낮은 등급을 받아서 생활에는 큰 지장은 없다. 다만 노쇠하신 아버지가 안 계시면 걱정이 된다.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 엄마는 식사준비를 직접 하신다. 여전히 카레를 잘 만드신다. 그냥 남들과 똑같은 카레이다. 당근과 감자, 양파를 넣고 카레가루를 넣고 물 붓고 끓이신다. 이게 끝.
당연히 맛있다. 엄마가 해준 카레가 여전히 제일 맛있다. 사실 카레는 그냥 물만 넣고 야채 대충 넣으면 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간단하지만 맛있다.
엄마는 카레를 기억하시는 거다. 그러나 잊는 것들이 있다.
그 전에 내가 오기만 하면 그렇게 용돈을 달라고 하시더니 지금은 갑자기 그런 말씀이 없어졌다. 돈을 사용하는 법을 잊으셨다. 그리고 나보고 홀로 살지 말라고 그렇게 닦달하시더니 이제는 그런 말씀이 사라졌다. 내가 어디서 사는 지도 모르신다.
예전에는 엄마가 들려준 카레의 기억이 있다. 엄마는 어릴 때 집에서 오빠가 이상한 노란 국을 끓인 것을 기억하셨다. 오빠가 일본에서 가져온 노란 국은 맛과 향이 특이했다고 했다. 위키피디아에 찾아보니 카레는 1925년 즘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카레가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10대 때 처음 카레를 먹어본 기억을 갖고 계신 거다.
엄마의 카레에 대한 이야기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지금은 해방과 한국전쟁, 포항제철 증축 등을 거치고 거쳐 엄마가 돌아갈 곳이 사라졌다. 고향이 없어졌다. 엄마의 집은 오빠가 보도연맹으로 붙잡혔을 때 빼내느라 논을 많이 팔았다고 했다. 동네 머슴들은 거의 죽었다고 보면 된다고 했으니까. 또 다른 오빠는 사업한다고 논을 팔았다고 했다, 땅은 미군정을 지나 한국전쟁 때 비행장을 만들기 위해 없어졌다. 그리고 그 고향의 모든 들판과 시냇물과 길들은 포항제철 공장을 짓기 위해, 확장하기 위해 용광로 속에 녹아 없어졌다.
그 기억들이 엄마의 카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간다. 물론 지금은 엄마의 첫 카레 맛이 뭔지 기억하지 못할 거다. 내가 아무리 맛있게 만들어 본들 엄마의 카레를 다시는 만들 수는 없는 것처럼.
그래도 한번 내가 카레를 만들어 볼까.
가지 넣은 카레 만들기
재료준비는 양파 감자 당근 외에 가지와 양배추, 파프리카를 준비했습니다
1. 육수 준비
닭육수 (또는 한우 등심을 넣을 땐 꼭 안 넣어도 된다. 당연한 거 아닌가. 어디 감히 한우를 넣는 데 맛없을 수 있겠는가.)
카레도 나름 국물이라 감칠맛을 내기 위해 육수가 필요합니다. 요새 닭육수 스톡도 파니까 그걸 이용하셔도 됩니다. 이번엔 깔끔하게 쌀뜨물로만 넣으려고 합니다. 따로 고기를 넣으니까요.
2. 채소준비 : 양파와 양배추를 볶습니다
양파, 양배추는 먼저 준비합니다.
냄비에 기름 또는 버터를 넣고 양파를 넣습니다. 양파는 단맛을 내죠. 갈색이 나도록 볶습니다.
양파는 갈색이 되었을 때 냄비에 양배추를 넣습니다.
양배추가 맛이 비밀입니다. 단맛도 내고 식이섬유가 있어 나중에 찰진 맛을 냅니다.
양배추를 넣는 게 노하우, 완성된 카레에는 양배추 맛이 안납니다. 비밀 레시피
3. 카레의 기본 준비 : 감자와 당근을 다른 냄비에 물 조금만 넣고 삶습니다. (채소 준비에 포함되죠? ^^)
바쁠 때엔 감자와 당근을 전자레인지에 7분 정도 돌립니다. 그러면 다른 재료 준비할 때 다 익겠죠.
감자가 카레에 없으면 전분이 없어서 카레가 정말 국이 됩디다.
그리고 전자레인지에 감자와 당근을 모두 푸욱 익힐 필요는 없어요. 또 한 번 끓이니까요.
4. 고기준비 : 양배추가 숨이 죽으면 고기를 넣습니다. 고기 대신 단호박과 브로콜리
고기는 닭고기도 좋고 돼지고기도 좋고 소고기도 좋습니다. 소시지 일 경우에는 물이 끓고 나중에 넣어도 될 거 같아요. 채식을 위해서는 고기 대신 단호박 조금하고 브로콜리를 넣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게 더 훨씬 개운하고 깔끔합니다.
양파가 볶아지면 양배추를 넣습니다. 숨이 죽으면 고기를 넣습니다
5. 모든 재료 투하 : 사과가 있음 넣어요
양파와 양배추가 있는 냄비에 익혀놓은 감자와 당근을 넣고 물을 자작하게 부어 끓입니다.
조금 더 단 맛을 내려면 사과를 넣습니다. 반드시 껍질을 깎아서 반 개 정도 넣으면 됩니다.
그리고 사과는 푸욱 익히는 게, 아삭한 식감과 카레재료들과 상반되지 않는 식감이 좋을 것 같네요.
6. 카레 투하 : 부드러운 맛 + 매운 맛 반반씩
예전에 일본카레가 유행이었죠. 지금은 또 불매운동을 하다 보니 국산 카레만 쓰기로 했습니다. 일본 카레는 대부분 느끼하다고 하는 데요. 일본카레나 순한 맛 카레가 남은 게 혹시 집에 있다면 국산 ‘매운맛’카레를 반씩 섞어서 넣는 게 노하우입니다. 그러면 부드러운 맛과 칼칼한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7. 토핑 : 가지와 파프리카
카레가 다 되었는데 채소를 더 첨가하고 싶을 땐 가지와 파프리카를 넣어보세요.
단, 가지와 파프리카는 카레가 다 끓고 마지막 1분 전에 넣으시면 됩니다.
왜냐면 가지와 파프리카는 금방 흐물흐물해지니까요. 그리고 카레맛이 강해서 파프리카 향이 카레에 죽을 수도 있어서 1분전에 넣으면 좋아요.
다 끓이기 1분 전에 가지와 파프리카를 넣습니다
자, 카레가 다 되었네요. 이것도 밥도둑이지요.
밥도둑인 게 저는 혼자 먹든 둘이 먹든 양 조절이 안돼요. 일단 한 냄비 끓이게 되서요. 어쩔 수 없이 많이 먹어야 합니다.
심야식당에 나온 이야기가 있어요. 뜨거운 카레에 식은 밥의 유혹을 누가 이기겠냐고요
카레의 기억은 무엇이든 좋지요.
맛있는 카레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