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생각 없이 걷기 5부(18일- 23일)
Camino Day 18. 도로 N-120 유감
오늘 22킬로미터 밖에 걷지 않았다. 말이 순례길이지 직선으로 뻗은 스페인 북부 국도 N-120 노선을 따라 차량 소음과 속도에 노출된 채 순례길이라 하기에 무색한 무성의한 길을 걸었을 따름이다. 초반 약간의 어긋남은 자의적으로 우회해 보려다가 표식 없는 길을 가다 어느 삼천포로 빠질지 몰라 다시 루트로 복귀하는 과정이다.
7월 11일 ~ 27일까지 까미노 루트
2001년이었던가, 태국 북부에 위치한 치앙마이에서 밀림 트레킹을 따라갔다가 그들의 루트 설계에 감탄한 적이 있다. 사람이 바글거리는 관광지 투어도 일단 가이드를 만나게 되면 모든 것을 가이드에게 의존하게 된다. 하물며 오지 밀림에서 외딴 마을에서 숙식을 하며 코끼리 타고 험지를 지나고 계곡에선 대나무 뗏목으로 이동해 가니 가이드는 절대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가이드와 일행을 놓치면 바로 베어 그릴스가 되어 생존해야 하는구나 싶어 바짝 긴장했었다. 물론 그때는 베어 그릴스 시리즈가 나오기 전이니 이 시점에 그 때를 회상하며 베어 그릴스를 인용하는 것은 논리에 맞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동 중에 일행 한 명이 사라져 가이드가 허술한 슬리퍼를 신고 산길을 번개같이 뛰어 오가며 조난(?) 당한 일행을 찾아오는 신공을 발휘하기도 했다.
N-120을 따라 내 키보다도 더 웃자란 옥수수밭을 쳐다보며 지루하게 걷다가 멀리 종탑에 새집을 이고 있는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집을 이고 있는 종탑
마을을 만나고 처음엔 내리 다섯 시간을 걷고 아침도 부실하게 먹은 탓으로 요기할 요량이었다. 그러다 마을 초입의 강가에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보았던 유려한 손놀림의 플라이 낚시꾼을 만났다.
오르비고강에서 하는 플라이 낚시
오르비고 강을 가로질러 넘어가는 다리 위에서 강태공이 날리는 미끈하고 부드러운 포물선의 낚시줄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그 모습에 혹했다.
숨을 멈추게 한 돌다리
돌다리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길 위에선 잠시 숨을 멈춰야 했다.
그러다 미루나무 줄지어 심어 어여쁜 공원 벤치에서 대낮에 애정질 하는 중년 커플을 보고 ‘여기가 로도스다’하고 결론 내렸다.
한낮의 애정질
그리하여 플라이 피싱하던 그 강물에 발을 담그고 차가운 맥주를 마신다.
오르비고강에 발을 담그고 맥주를 마시다
치앙마이때는 스마트폰 없던 시절이라 밀림 투어가 얼마나 오지로 들어갔는지 여행자는 알 길이 없었다. 마지막 날, 밀림(이라고 믿었던) 사이로 익숙한 소음이 들려와 잘 살펴보니 언뜻 잘 닦여진 아스팔트 도로가 살짝 보인다. 아뿔싸 우리는 그동안 밀림 속 깊이 들어와 문명과 단절된 채 지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차도와 겨우 수십 미터 사이를 두고 뱅뱅 돌고 있었구나! 어찌 이들 관광청 루트 설계자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있으리오.
2019. 7. 28.
오늘의 사족 1. 끝없이 이어진 옥수수밭을 보며 생각했다. 밭주인과 협조하여 도로와 얼마 정도 떨어진 밭 사이에 순례길을 만들면 순례자는 차량의 소음으로부터도 해방되고 또 자기 키보다 큰 옥수수 담장을 따라 걷는 맛이 남다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2.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 마을의 미루나무 공원에는 시민을 위한 BBQ 그릴이 설치되어 있다. 가우디 선생을 배출한 나라, 그의 작품이 현존하고 그가 설계한 건축물 옥상에는 수많은 걸작 굴뚝이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바비큐 그릴의 굴뚝을 공공미술로 재현하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그러다 내가 지금 남의 나라 걱정을 할 때인가 싶었다.
BBQ 그릴과 굴뚝
Camino Day 19. 바람을 안고 걷는다는 것
세상을 살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안고 가야 할까?
며칠 전 구름도 없고 바람도 없고 햇빛만 화살처럼 대지로 내려꽂히는 날에 걸으면서 든 생각은 이러하다. ‘이런 날씨만 피하면 얼마든지 걸을 수 있겠다.’
비가 한바탕 뿌리고 지나간 다음 아침 기온이 7-8도에서 맴돈다. 한여름 날씨라고는 믿기 어려운 이 온도에 도저히 홑겹 차림으로 나설 수 없어 반팔에 긴팔 그 위에 오버트라우저까지 껴입고 새벽길을 나선다.
서늘한 순례길 새벽
아침나절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좋은 소식이나 그렇지 않은 소식이나 걷는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거리 순례길에는 역시 평정심이 우선이다. 아침에 오르비고 마을을 막 벗어나는 지점에 노란색 순례길 화살표가 두 방향을 동시에 가리키고 있다. 좀 짧은 길 그리고 더 길지만 마을을 거쳐 가는 길. 주저하지 않고 긴 길을 택했다. 어제 오르비고 강에서 플라이 낚시를 하는 강태공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 걸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갈림길에서 긴 길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갈림길에서 선택한 길
서늘하다 못해 추위를 느낄 정도라 모자 대신 버프를 뒤집어쓰고 걸었다. 오후에 접어드니 바람이 더 강해져 모자를 쓸 수도 없다. 아스토르가 시내에 들어서 식수대에서 물 마시고 배낭을 고쳐 매고 있는데 낯익은 말이 들린다. “이 마을에서 머무르세요?” 우리말로 하는 인사에 반가움이 절로 났으나 답은 반대로 나올 수밖에 없다. 머무를 계획이 없었으니.. “아뇨, 전 조금 더 갈 겁니다.” 머무르느냐 묻는 말이 순간 라면 먹고 갈래요로 들릴뻔 하였다.
가우디 선생의 아스토르가 주교관
가우디 선생이 서른다섯에 의뢰받아 설계한 아스토르가 주교관은 실용이 예술을 존중하여 기능은 정교하고 자태는 아름답다. 그가 창조해내 건물 입구 포치의 유려한 아치는 왜 재생산되지 아니하는가? 혹여 내가 집을 짓게 되거나 어떤 건물을 짓는 일에 관여하게 된다면 저 어여쁜 아치를 닮은 문을 건물 중앙에 배치하리라!
아스토르가 주교관 입구의 유려한 아치
맞바람을 안고 오후 내내 걸었다. 아침에 받은 메일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이 바람은 나의 대퇴이두근과 비복근에 지속적인 피로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바람을 안고 걸었던 시간의 누적이 그 근육들에게 때론 통증을 동반할 것이다. 하지만 그 누적의 결과는 나의 뒤태를 매력적으로 변신시킬 것이다.
나는 이 맞바람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바람을 안고 걷는 길
2019. 7. 29.
오늘의 사족 1. 남은 순례 구간 어딘가 라면을 순례자 식사메뉴에 포함한 알베르게가 있다는 소식을 오늘 접하였다. Good News, 복음과 다름없다. 2. 무심, 이 말을 오래도록 생각한다.
무심히 걸어 종탑이 있는 저 마을에 도착하다
Camino Day 20. 보행 중 금주 원칙을 다시 위배하다
산티아고 순례를 프랑스 남쪽 마을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했다면 첫날부터 산행을 경험해야 한다. 첫날 예약한 숙소는 피레네 산맥 중턱의 산장이었다. 그렇게 첫날 산을 넘고 내리 18일을 평지와 약간의 구릉을 걷다가 오늘 이십 일째 되는 날 다시 산을 넘는다.
산길 가운데 까미노 표지석에서 배낭을 고쳐매다가 이틀 전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중년의 신사분과 인사를 하게 되었다. 짊어지고 온 견과류와 말린 과일을 나눠 먹다 잠시 동행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산길 가운데 신발을 고쳐매다가
동남쪽 억양은 두어 마디 인사에 금방 드러나고 경북에서도 대구 근처의 독특한 악센트는 동네 사람 말투이니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동향 출신이니 금방 중고등학교 이야기가 나오고 이내 작고한 첫째 형님의 고등학교 선배인 것이 드러났다. 2003년에 세상을 버렸으니 햇수로 17년 전이다. 마치 어제 일처럼 형님 이야기를 주섬주섬하시는데 걷다 옛 기억이 폭포수처럼 소환된다.
철십자가 언덕, 순례자들이 고향에서 가져온 돌과 글씨로 고갯마루에 다시 조그만 산을 만들었다
군대에서 다친 무릎을 여태 보듬어 살아오다 작년에서야 수술을 하고 일 년을 기다려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벼르고 별러서 카미노 노정에 나섰다 하신다. 걷다 병 날일 없어야겠다 생각하여 다음 마을로 무거운 짐을 택배로 보내 놓고 가볍게 나선 차림이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배낭을 보내놓았다는 마을에 금방 다달았다. 차나 한 잔 하고 헤어지자고 바에 들어섰는데 맥주 디스펜서를 보시더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맥주 한 잔 하시잖다. 사양할 수 없지 않은가!
큰 거 두 잔을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섰다.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은 한없이 가볍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기억의 소환으로 bittersweet 하다.
2019. 7. 30.
당신의 보트는 지금 어디에
오늘의 사족 1. 카미노 구간에는 유독 먼저 간 사람을 기리는 표식이 많이 보인다. 오늘 만난 문장 앞에서 잠시 서 있었다. “The boat is safer anchored at the port but that’s not the aim of boats.” 안전한 항구에 정박한 배, 그리고 항해를 위해서 떠나는 배. 나의 배는 지금 어디에 있나!
순례 이십 일째 노을을 바라보며
Camino Day 21. 문어와 카약
21일째 걷는다. 이제야 속이 좀 덜 복잡하다.
오후에 안사람과 문자를 주고받는데 뜬금없이 “당신도 길에서 도 닦아요?” 하길래 그냥 눙치고 넘어갔지만 사실 지금 별생각 없다. 걷기 시작한지 이십 일이 넘어가니 처음 글 쓸 때 떠올렸던 ‘까미노 생각없이 걷기’가 되나 싶다. 의지나 명상 같은게 아니라 육체를 극한으로 밀어 붙여 억지로 오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안사람과 문자 주고 받기
이메일 오면 저녁에 몰아서 답장하고 문자는 오면 걷다가 작은 전화기 자판으로 걸으며 보내기도 어렵고 해서 건너뛰는 경우도 있고 정히 답을 해야 할 상황이면 그냥 보이스톡으로 해결 한다. 되는 일은 되는대로 안 되는 일은 안 되는대로.. Que Sera, Sera!
갈리시아 근처로 오기는 온 모양이다. 여기 문어 요리가 알아준다고 하던데 오늘 묵는 알베르게 근처로 걸어 들어오는 마을에 문어 요리 간판이 여럿 보인다.
걷고 난 다음 언제나 옳은 올리브와 맥주
빨래해서 널고 남은 올리브를 안주로 캔맥주를 홀짝이며 어제 저녁 과하게 마신 포도주 덕분에 건너뛴 순례기 써서 올리고 알베르게 오는길에 보았던 그 문어 집을 찾아 나섰다. 몇십 년 동안 한국 문어 요리에 길들여졌으니 이국땅의 색다른 조리법이 입에 딱 맞을리 없다. 삶은 문어에 갈리시아 지방의 시즈닝을 뿌려서 먹는 건데 내 길들여진 입에는 우리나라 초고추장만큼 문어에 어울리는 양념도 없는 것 같다.
갈리시아 지방의 명물 문어와 맥주
한 접시 해 치우고 ‘오늘은 글감이 없으니 생각도 없고 머리도 비어 좋다’라고만 쓰고 자야지 하고 숙소로 걸어오는 다리 위에서 카약을 힘차게 저어며 다리 밑을 오가는 모습을 보았다. 한 학기하고 탈퇴했지만 나는 대학때 조정부였었다. 1987 언제나 소환되면 눈물콧물 사정없이 흘렸던 매캐한 최루가스와 한열이 형이 떠오르는 숫자다.
석양 빛을 받으며 동네 강을 저어가는 카약
87년 당시 수업 거부는 했어도 조정부 연습에는 꼭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동틀 무렵 한강에 모여 콕스(조타수)가 있는 포(four, 네 개의 노가 있는 조정 보트)를 타고 해가 떠오르던 한강을 가르며 노를 저었던 생각이 난다.
한참을 다리 위에 서서 노 젓는 모습을 보다 왔다. 숙소인 성당 옆 공립 알베르게 앞에 카약이 물살을 가르며 지나가는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지류가 흐른다. 왠지 모르게 그 강물에 발을 담그고 싶었다. 문어 먹으며 마신 맥주가 확 깰 정도로 차고 시리다.
맑고 시린 강물에 발을 담그고
2019. 7. 31.
오늘의 사족 1. 발 사진이 많이 올라간다. 어쩔 수 없다. 순례길 내내 발에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다.
Camino Day 22. 순례자 메뉴
순전히 순례자 메뉴에 따라 나온 와인탓이다. 땀을 비 오듯 쏟으며 프렌치 카미노의 세 봉우리 중 마지막을 오늘 넘으려고 했으나 30킬로미터를 걷고 난 이후라 도저히 걸음이 앞으로 나가지 않느다. 산정을 4킬로 앞두고 다행히 마을이 있어 오늘은 여기에서 머물기로 하다. 어제와 같이 성당 옆에 붙어 있는 공립 알베르게인데 벽이 두터운 것이 시원하다.
산 중턱 초원에서 맥주를 마시다
늘 그렇듯 빨래해서 널고 동네에 하나 있는 구멍가게 가서 맥주 한 캔 사서 홀짝인다. 조용해서 좋다. 산 중턱에 넓게 조성된 초지를 보며 찬 맥주를 마시는데 아무 생각 없다.
막바지에 다다르니 하루 주행거리가 비슷한 순례자들을 같은 동네에서 자주 마주친다. 아침 출발할 때 늘 알베르게 입구에서 증명하듯 사진을 찍는데 오늘 알베르게 옆 베드는 아침에 사진 찍어준 폴란드 출신의 연세가 좀 있으신 레이디이다. 동네 채식메뉴 식당 앞에서 만난 두상이 예쁜 마드모아젤은 얼마전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는 알베르게에서 만난적이 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그녀는 머리를 시원하게 밀었다. 채식주의자를 순례객 중에 흔히 만난다. 길을 걸으며 도로 표지판 STOP 사인 밑에 ‘Eating Meat’라고 써놓은 글을 심심치 않게 본다. 나를 보고 채식 메뉴를 찾느냐고 묻는다. 나는 고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녀의 입가에 엷은 웃음이 지나간다. 몇 마디 나누다 보니 목덜미며 쇄골 근처가 울긋불긋한 것이 심상치 않다. 베드 버그의 습격에 당했나 보다. 나도 초기에 오른쪽 아킬레스 근처에 두 군데 물려봐서 그 괴로움을 안다. 가려움을 완화해줄 약이 있느냐 했더니 다음 마을에서 구해볼 거라 한다. 이 또한 이 여정의 일부분이란다. 그녀는 이제 19살인데 꽤 깊은 사고의 경지 해 도달했나 보다. 어제 여기까지 쓰고 순례자 메뉴에 따라 나온 와인 한 병을 마시고 취해 잠이 들었다. 글 머리를 순례자 메뉴로 하고 뭔가 이야기하려 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생각해 두었던 글감도 사라지고 머릿속이 깨끗하다.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 뭐 그리 대수랴싶다.
‘You only fail when you stop trying.’
어제저녁 먹었던 식당에 씌어 있던 글이다.
새로운 시도를 주저앉히려는 논리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내 배는 안전한 항구에 정박해 있지만은 않으리라.
2019. 8. 1.
오늘의 사족 1. 거리가 큰 의미가 있으랴마는 걸어온 길보다 남은 길이 짧다. 삶도 그러하다
걸어온 길, 걸어갈 길
2. 까미노 노상에서 두 번째 보는 한식 메뉴이다. 첫 번째 한식 메뉴를 보았던 알베르게는 하필 그날 하루 쉰다 해서 지나쳤고, 오늘 두 번째 만난 한글 메뉴는 30분 기다려야 문을 연다고 해서 다시 패스. 두 번째는 좀 아쉽다. 앞으로 까미노 여정에서는 더는 한식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대하지 않았으면 실망도 없다. 일상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두번째 만난 한식 메뉴판
Camino Day 23. 길을 벗어나다
23일째다. 길을 잘못 접어들기는 까미노 시작하고 오늘이 처음이다. 아침에 정상을 향해 올라선 이후로는 내리 내리막길이다. 밀밭이 넓다는 이야기는 소를 많이 키울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광활한 대지에서 거두어 탈곡한 후 성처럼 쌓아 놓은 짚단들은 결국 소의 위에서 생을 마감할 운명이었다. 대지가 넓은만큼 양떼든 소떼든 한번 만나면 그 숫자로 몇 분이고 주춤거려야 한다.
산길에서 만난 소떼와 목동
갈리시아로 접어드니 까미노 표지석도 바뀌고 순례길도 신경 써 다듬어 놓은 티가 확실히 난다. 점심시간 이후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생각이 없어진다. 이런 현상이 이십일 지난 후 종종 나타난다.
이정표를 놓치고 엉뚱한 간판을 보고 걷다
갈림길에서 까미노 표지석을 보지 못하고 엉뚱한 로드리게즈 알베르게 간판을 보고 내리막을 따라 털레털레 걸어가는데 뒤에서 엔진 소리가 들린다. 길 한편으로 비켜서 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는데 엔진 소리가 작아지더니 내 옆에 서서 창문을 내린다.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겐 바디 랭귀지가 있다..“저기 위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접어들었어. 다시 올라가서 왼쪽으로 가라고!” 만국 공통어를 나는 단번에 알아들었다. ‘Muchas Grasias’라고 스페인어로 크게 인사했다. 이번 순례길에서 나는 할아버지들의 도움을 여러 번 받았다. 갈림길에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나 지팡이나 손가락으로 길을 가르쳐 주는 할아버지를 여럿 만났다.
예술가의 집에 하룻밤 신세를 지게 만든 안내 작품
여섯 시가 다가오는데 마을은 아직 2킬로나 남았고 마을로 간들 묵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걸 앱으로 알게 되었다. 택시를 불러야하나 어쩔까 하는차에 La casa del Alquimista라는 표지와 함께 돌가루로 만든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작가의 예술품을 전시한다고도 쓰여있다. 일단 물도 마시고 그늘에서 좀 쉬어야 해서 찾아갔다.
돌가루 작가의 마당에 놓인 모닥불 터
돌가루를 소재로 작품을 하는 작가가 사는 곳인데 자원봉사하는 친구들이 둘 있다. 명상하는 공간도 있고 손님을 환대하는 분위기다. 작품을 둘러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물과 과일을 먹으라고 내어주고는 말을 건다.
집을 둘러보다 빈방이 보여 무슨 용도냐고 물었더니 순례자들이 묵을 수 있단다. 대신 저녁과 베드 비용으로 10유로를 받고 도네이션도 사양하지 않는단다. 묵을 거냐고 묻길래 일단 명상을 좀 하고 답을 주겠다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갈 곳도 없고 다리도 아픈데.. 고맙다고하고 얼른 짐을 풀것이지.. 하여간 명상하러 들어가서 일단 스트레칭부터 하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는데 마음이 편안하다.
돌가루 작가가 만든 판매용 목걸이
저녁 만드는 걸 거들고 시에스타에서 깨어난 작가 하고도 통성명하고 작가 만나러 온 커플 하고도 인사하고 같이 저녁 먹고 설거지 당번 정하는 게임도 하고 함께 풀밭에 둘러앉아 해지는 것도 함께 지켜보았다. 알베르게가 아니니 순례자 여권에 크레덴셜(방문 증명 도장; 산티아고 도착하면 이들 도장을 근거로 완주 증명서를 발급해 준다)을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뭐가 대수랴! 내가 걸은 게 중요하지 증명서 쪼가리에 도장 받자고 여길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해먹에 누워 길을 떠날 것인가 머무를 것인가 고민하다
이제 길은 다시 나뉜다. 내일 아침 출발할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며칠 뭉개며 게으름을 피울 것인가?
2019. 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