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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에서 자유를 생각하다
장엄한 계룡의 겨울은 눈발을 날리다 햇살을 비추다 변화무쌍하다. 정월 보름으로 가는 낮달이 하늘에서 빛난다. 높은 하늘, 계룡의 산세보다 유려한 곡선으로 낮달 주변을 선회하는 독수리는 찰나의 순간만 허락하였다. 그 사이 고개를 들지 않았다면 이런 상... -
한양도성을 걸으며
한양도성을 계절별로 걸어보자고 말하였다. 입에서 발화(發話)한 소리가 공허하지 않으려면 두 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12월은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았다. 눈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나는 누구고 내가 있음은 무얼 의미하는가? 이내 고개를 흔들며 다시 생각한... -
이심전심의 화룡점정
손기정평화마라톤대회 배번과 같이 온 가이드북을 보고 깜짝 놀랐다. 1947년 51회 보스턴 마라톤 감독으로 참가하여 서윤복 우승(세계신기록) 1950년 54회 보스턴 마라톤 감독으로 참가하여 1위 함기용, 2위 송길윤, 3위 최윤칠로 전관왕 석권 우리가 배달의 ... -
공룡능선: 파우스트적 거래
이는 실로 파우스트적 거래라 부를만하다. 설악은 깊고도 그윽한 가을의 속살을 다 주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요구한 것은 극심한 통증과 온몸을 두들겨 맞은듯한 피곤함이다. 스물여섯인가 일곱인가 되던 해에 설악을 알게 해 준 이를 따라 몇 번 다녔던 시절... -
걷자, 달리 뭐
아들이 입원한 병실의 한쪽에 54세의 남성이 들어왔다. 같은 또래다. 곁눈으로 슬쩍 훑고 상념에 잠긴다. 건장하고 단단한 몸이다. 왼쪽 발목 아래가 없다. 아직 붕대가 감겨 있는 것으로 보아 사고가 얼마 전이었고 어떤 사정인지 신장내과에 전원 온 것으로... -
풀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이 눕는다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풀은 다만 흔들릴 뿐이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지도 않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지도 않는다 풀은 그저 흔들린다 바람 부는 대로 -
마침내 단일한 안개
온종일 비를 맞으며 산행하였다. 친구들과 무리 지어 소백산을 오르며 중얼거렸다. 혼자라면 절대로 오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 크고 넓고 끊임없이 이어진 자욱함을 혼자는 감당하지 못하였을 것이라며... 구름이었다가 간혹 조금 굵은 빗방울이 되었다가... -
비와 산행의 가운데
6월 24일 금요일 밤, 장마가 소강상태다. 쾌재를 불렀다. 내일 아침 산을 오르자고 급히 번개를 쳤다. 이튿날 아침, 산행을 예고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 응답이 없다. 코로나 시국을 건너며 혼밥과 혼술이 흔한 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홀로 오르는 ... -
성곽길을 걸으며 나이듦을 생각하다
한양도성길 걷기를 길목의 사업으로 해보자는 제안이 무려 이사장님으로부터 왔다. 두말하지 않고 수락했다. 걷기를 좋아하고 더구나 대부분의 성곽이 산에 있어 산행을 즐겨하는 나로서는 매번 회의만 참석하다 이제야 회원들을 위해 뭔가 실질적인 것을 할 ... -
푸른 이끼 위 꽃잎
난설헌의 시를 받은 것은 봄비가 흩날리는 날이었다 담장 기와에 떨어진 살구꽃을 보며 난설헌은 무얼 생각했을까? 봄비 (許蘭雪軒) 春雨暗西池 춘우암서지 輕寒襲羅幕 경한습라막 愁倚小屛風 수의소병풍 墻頭杏花落 장두행화락 서지에 봄비 자욱하고 찬 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