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와 공감과 연대
코로나 19가 시작되면서, 코로나가 시원한 맥주가 아니라, 내 생활 주변에서 발생 가능한 치명적인 전염성 질환임을 실감한다.
동네에 있는 은평 성모병원에서 환자가 발생하여 마을을 긴장시키더니, 가끔 파스 등을 사려고 들렀던 집 앞의 약국이 확진자 방문으로 이틀간 문을 닫고, 장인이 아프셔서, 아내가 모시고 강남의 병원을 갔는데, 장인어른은 고열로 인해 의심환자로 간주되어, 보호자인 아내와 함께, 음압 병실에서 48시간 동안 격리된 채, 2차례의 검사를 받았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주민 한분이 확진이 되어, 아파트 계단과 엘리베이터 등을 보건소에서 방역하고, 관리사무소는 수차례 주의를 당부하는 방송을 한다. 해외에 체류 중인 작은 아이가 입국해서 온 가족이 14일간 집콕을 하였다.
코로나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가능성이란 이름으로 배회한다.
크고 작은 여러 사회적 관계로 조금은 분주했던 삶이 느려졌다. 하지만, 마음까지 느려 지지는 않는다. 이러 저런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사는 것에 대한 책망감이 든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어떤 모습의 삶들을 살까?
공장들은 더욱 빠르게 임금 노동자 대신 자동화 기계화로 대체 되지는 않을까? 일자리는 줄고, 자영업은 쇠퇴하고, 수출 장벽은 높아만 갈 것이고, 그러면 해결책은 뭘까?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헌법적 의무에 따라 적극적인 전염병 방지를 위한 조치를 하면서, 개인의 헌법적 권리를 침탈하지는 않을까?
한국에서 종교는? 특히 개신교는 어떤 사회적 책임을 담당했고? 과연 존속 가능할까? 의료 혜택에서 소외된 유럽의 노인들과 미국의 흑인 사망률이 높은 점을 어떻게 봐야할까? 집안에 있는 시간과 비례해서 배출되는 저 많은 1회 용품들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IMF를 겪으면서 어려워졌던 친구와 이웃들의 삶들이 문득 문득 스쳐가고, 멍한 머릿속에 질문들이 엉킨다.
어찌 어찌해서 코로나가 끝나고 나면? 코로나 19 이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생태와 이웃과 공감을 만들고 연대하며,
변화를 도모할까? 할 수는 있을까?
그나마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길목의 “공감 편지”와 “길목인”이 위로가 되어준다.
길목 협동조합이 작은 연대의 끈과 변화의 씨앗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