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믿음
어린 시절 산골 집 뒤엔 조그만 교회가 있었다. 새벽이면 “뎅그렁뎅그렁~” 종소리가 울렸고 동네 아이들은 교회 마당을 놀이터 삼아 소꿉장난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며 놀았다.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 교회에 가게 되었고 떡을 얻어왔다. 그것을 본 아버지께서는 “교회를 왜 가냐? 교회 갈 거면 차라리 내 발바닥을 믿어라!”며 큰소리를 쳤다. 난 너무 무서워 그 이후에도 교회 마당에서 놀기는 했지만, 교회에 갈 엄두를 내지 않았다.
아버지 발바닥의 의미가 다가온 것은 내가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한 이후였다. 위암에 걸린 아버지의 몸은 빼빼 마른 나무꼬챙이처럼 말라 가고 있었다. 당시엔 암이면 무조건 사형선고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더운 여름날 어머니께서 여윈 아버지 발을 씻겨주고 계셨다. 아버지의 발바닥은 험한 농사일의 연륜만큼 굳은살이 겹겹이 쌓여 굳고 딱딱해져 있었다. ‘아, 저 발로 세상을 버티셨구나. 저 발로 세상을 딛고 남한테 폐 끼치지 않고 가족들 챙기느라 온몸을 불사르셨구나. 저 믿음 외에는 어떤 것도 공짜 쌀 한 톨 가져다주지 않았고 자식들 학교 공부시키기 위해 몸이 부서지도록 일할 수밖에 없었겠구나’는 마음에 눈물이 절로 났었다. 아버지는 ‘믿음’의 의미를 그렇게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다.
최근 코로나 재확산의 중심에 있는 한 교회 목사와 신도들의 태도를 보면서 믿음을 핑계로 자신들이 무슨 해를 끼치는지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 태도에 화가 난다. 그들이 구원하고자 하는 세상은 어떤 것일지, 그들의 믿음이 무엇인지 난 잘 모르겠다. 적어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자신만을 지키는 세상은 아니어야 할 것 같다.
더불어 인간이 자신들만의 세상을 위해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고 과잉 생산, 소비하면서 발생한 코로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만년설이 녹고, 화재, 가뭄, 홍수가 재앙 수준으로 반복되고 있다. 기후 위기를 얘기하곤 있지만 아직은 나와는 거리가 먼 다른 세상의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나를 돌아보게 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