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목 조합원의 관계는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사회적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서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길 원하는 것일까? 어떤 특징을 지닌 관계 맺음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얼마 전 논문을 읽다가 든 의문이다.
그 논문은 우리나라 협동조합 운동과 마을 공동체 운동에서 단연코 모범사례이자 선두 주자인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에 대한 것으로 그 논문에서 한 활동가는 원주 네트워크의 관계와 상호 협력의 전통을 ‘협연(協緣)’이라고 표현했다.
혈연, 지연, 학연과 더불어 원주에는 협동조합 운동으로 생겨난 연줄로서 ‘협연(協緣)’이란 게 존재하고 이것이 여타 지역과 다른 원주 지역만의 특징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협연(協緣)’이란 혈연, 학연, 지연 못지않게 인간관계를 끈끈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며, 이것은 자본주의의 원리를 넘어서고자 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들, 혹은 그 조직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철학과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호혜와 협력의 관성(慣性)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길목의 조합원들의 관계는 현재 어떤 상황일까? ‘협연(協緣)’의 수준에 이르러 있을까?
글쎄....선뜻 그렇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직은 조합원으로서의 ‘협연’보다는 교회로서 맺어진 ‘교회연’에 더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우리는 2020년에 좀 더 사회와 호흡하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자 튼튼한 조직 운영에 대한 소망을 담고 협동조합에서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그 성격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그런 변화의 모색은 공교롭게도 코로나 19로 인하여 곤혹스러운 상황에 갇히게 되었다.
그렇게 답답한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일까.
어쩔 수 없이 내 안에서는 이런 질문이 계속 일어난다.
“우리 길목 조합원들은 과연 서로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어떤 관계를 맺길 원하는 걸까? 일반적으로 조합이 잘되려면 조합원들끼리는 어느 정도의 기대를 가지고 서로를 대해야 하는 걸까? 우리 길목의 조합원들은 교회 일의 연장으로 길목 활동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사회적 협동조합으로서 ‘협연(協緣)’의 험난한 길을 같이 갈 준비가 되어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