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두 가지로 인식했다고 합니다. 크로노스는 객관적, 양적인 개념의 시간, 카이로스는 시간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주관적인 개념의 시간입니다. 새해를 맞이할 때 사람들은 시간을 카이로스로 더 강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찰과 반성, 평가와 다짐, 계획과 설렘 등 상반되는 감정들이 교차합니다.
제야의 종소리를 현장에서 듣는 잔잔한 감동이 코로나로 인해 어려워졌지만 연말연시가 되면 지난 일 년의 시간을 아쉬워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시간에 기대와 희망을 갖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새해에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반문하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으며 생각나는 말은 사서삼경 중 ‘대학’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濟家治國平天下)’입니다. 이 말의 뜻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의 본문에 따르면 ‘수신제가’ 앞에 ‘격물치지 성의정심’(格物致知 誠意正心, 사물의 이치를 깊이 이해하고, 모든 일에 성심성의를 다한다.)은 모든 일의 가장 근본적인 자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간 세상의 사는 모습이 도리를 크게 어긋날 때는 고전에서 배우고 바른 길을 찾는 것도 지혜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정치라는 명제는 찾기 힘든 현실입니다. 그에 더하여 최근의 정치 현상은 주체에서 객체로 전락한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로감과 혐오의 감정까지 주어서 집단적 트라우마 현상까지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글을 읽는 분들에게 부담을 드리고 있지 않은 지 염려됩니다.
일상생활과 국가의 정치 그리고 세계의 평화는 결국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현실의 모습은 부조리하고 부정의하고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모든 문제의 중심에 사람이 있기 때문에 사람에서 답을 찾고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신영복 선생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감옥 생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좁은 감옥에서 서로의 존재 때문에 불편하게 지내는 재소자들이지만 겨울이 되면 다른 사람의 온기 덕분에 추위를 이겨낸다는 얘기는 화두를 제시해 줍니다.
‘길목인’에는 사람이 만나는 길목이 있고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도 있습니다. 매월 발행되는 ‘길목인’을 통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보고 느끼며, 세상을 이해하는 안목도 얻게 됩니다. 심리상담 활동에 대한 관심은 살아가며 도움이 됩니다. ‘공감편지’가 주는 참 사람과 사랑의 온기는 힘이 됩니다. 정치와 역사, 기독교에 대한 방향성도 소중합니다.
‘길목인’에서 ‘격물치지 성심성의’를 얻는 계해년 새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