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어느 날 상담에서 나에게는 절망을 딛고 설 수 있는 희망이 없었어요. 그것은 시기심 때문에 내 안에 좋은 대상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좋은 대상을 찾아서 온 세상을 헤매다가 좋은 대상을 만나면, 나보다 잘난 것을 보는 게 내가 갈기갈기 찢기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어요. 그 고통을 없애려고 좋은 대상들을 처형했는데, 처형당한 것은 대상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어요. 그래서 나는 '나도 없고 너도 없는 세상, 아무도 없는 텅 빈 세상'에서 살게 되었어요. 내 마음은 늘 공허했어요.
J는 (침묵) 내 안에 '될성부른 나무는 뿌리째 뽑아야 해!'라는 목소리가 있네요. (나는 될성부른 나무를 왜 뽑으려고 하나요? 라고 질문했다.) (긴 침묵) 기가 막혀요. 밭에 작물을 재배할 때 잡초를 뽑아야 하는데, 잡초는 놔두고 작물을 뽑았대요. (나는 왜 잡초를 뽑지 않고 작물을 뽑았을까요? 라고 질문 했다.) (침묵) 다른 사람 밭인 줄 알았대요. 다른 사람 것인 줄 알고 뽑았는데, 뽑고 보니 내 것이었어요. 내가 파괴적 시기심 때문에 어두움의 세력에 사로잡혀서 삶의 의미와 희망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거예요. (내가 시기심이 왜 그렇게 파괴적으로 치달았을까요? 라고 질문했다.)
J는 내 마음에 시기심을 발도 못 붙이게 했어요. 그래서 시기심이 파괴적으로 표현된 거예요. 시기심을 파괴적으로 표현한 나에게 뭐라고 말할 수 없어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아마 내가 조용히 죽었거나 미쳤을 거예요. (나는 J씨가 시기심을 발도 못 붙이게 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침묵) 부러워하는 내 마음을 군홧발로 짓밟는 이미지가 떠올라요. 삶이 전쟁이네요. (나는 왜 부러워하는 마음을 짓밟는 걸까요? 라고 질문 했다.)
J는 (잠시 침묵) 아! 뭔지 알 것 같아요. 부러운 마음이 내 안에서 적군이 된 거예요. 부러운 마음이 내 마음인데, 나를 아프게 하니까 적인 줄 알고 공격을 한 거예요. 면역세포가 자신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 생각나요. 나는 '정신적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었네요. 이제 진실을 받아들이고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해요. (나는 어떻게 해야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요? 라고 질문 했다.)
J는 파괴적 시기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채고, 파괴를 멈추어야죠. 그렇게 하려면 시기심이 자극될 때 내 안에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과 그 고통을 견디기 힘들 때 박살 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을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내 안에 시기심을 담아줄 그릇이 필요해요. (나는 그 그릇은 어떻게 해야 생기는 걸까요? 라고 질문 했다.)
J는 (침묵) 부러워하는 마음을 짓밟을 게 아니라 '너도 갖고 싶구나.'라고 따뜻하고 포근하게 품어주는 사랑이 필요하대요. 그러면 마음 안에 시기심을 담아줄 그릇이 생긴대요. … 시기심은 죽음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생명에서 나오는 거예요.〖J 사례 중에서〗
시기심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정서 중의 하나이다. 클라인에 따르면, 유아는 따뜻함과 안락함의 원천인 좋은 젖가슴이 엄마에게 있고 자신에게 없어서 무력하게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과 시기심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유아는 고통과 시기심의 원천을 제거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며, 그로 인해 환상 안에서 대상의 좋은 성질과 소유물을 훔치거나 훼손한다. (정신분석 용어사전, p. 529.)
시기심은 지금 나에게 없는 좋은 것이, 대상에게만 있을 때 자극되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개인은 시기심이 자극됐을 때 경험하는 아픔과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시기하는 대상이 가지고 있는 좋음을 파괴한다. 즉 개인은 대상이 가진 좋은 측면과 나쁜 측면을 구분하지 않고 섞어버리거나(한 내담자가 분유를 똥물에 타는 꿈을 표현함.), 대상의 좋은 측면을 헐뜯어서 좋은 것을 나쁜 것으로 왜곡하며, 대상의 한계를 물고 늘어지는 방식으로 대상의 좋음을 파괴한다. 이때 개인은 좋은 대상이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나쁜 대상으로 경험되고, 좋은 대상 관계 경험이 파괴되어 희망과 정서적 삶의 토대인 좋은 내적 대상을 형성할 수 없게 됨으로써 정서발달이 정지된다. 이에 따라 개인은 이 세상을 아무도 없는 텅 빈 세상으로 경험하는 공허감에 시달리게 된다.
시기심이 파괴적으로 작동될 때 개인이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생각하는 능력이 마비되며, 의미 있는 사고를 할 수 없는 정신증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증 상태에서는 외부 현실의 삶이 파괴되고, 내면의 삶이 황폐해지며, 진실이 왜곡되고, 거짓이 진실로 둔갑을 한다. 따라서 선과 악, 참과 거짓이 구분되지 않고 혼동되며, 가치관과 인간성이 상실될 뿐 아니라 삶의 의미와 사랑이 상실되고, 그 자리에 증오심과 원초적 파괴성이 자리 잡는다. 이러한 개인은 자신의 좋음을 발현하지 못하고, 세상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품을 수 없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할 수 없고, 내일을 꿈꿀 수 없게 된다.
외부 현실 관계에서 파괴적인 시기심이 작동되면, 치열하고 극단적인 경쟁 속에서 '너 죽고 나 죽자'로 치닫는다. 거기에는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상생과 협력은 사라지고, 깊은 상처를 남기는 파괴적인 비난이 난무한다. 또한, 타인의 고통에 관한 관심이나 배려가 없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무능으로 인해 부끄러움을 모르고, 사랑과 증오가 뒤바뀌는 혼돈이 뒤따른다.
위니캇에 따르면 공격성과 시기심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두 가지 근원 중의 하나이다. 즉 시기심은 살아있기 때문에 불러일으켜지는 감정이다. 따라서 시기심이 파괴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창조적이고 건설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시기심을 다루는 것이 과제이다.
시기심을 다루려면, 시기심이 자극됐을 때 대상의 좋음을 파괴하지 않고, 대상의 좋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내면화 과정을 통해서 시기심을 담아낼 그릇의 토대인, 좋은 내적 대상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대상의 좋음을 파괴하지 않고 부러워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부러움은 대상의 좋음이 지금 나에게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때 경험되는 감정이다. 대상이 갖고 있는 좋은 것이 '지금 나에게 없다.'라는 현실이 보일 때 속이 뒤집히는 고통을 견뎌내고, 대상의 좋음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이해하고 끌어안음으로써 좋은 내적 대상을 형성하는 내면화 과정이 성취된다.
시기심을 창조적이고 건설적으로 사용하려면, 남의 것으로 향하는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씨앗을 발견하여 싹을 틔우고, 새싹이 잘 자라도록 보살펴서 나만의 열매를 맺고, 나의 길을 걸어갈 때 비로소 생생하게 살아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고 희망찬 내일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