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의 교집합을 꿈꾸는 정은희 조합원
햇빛 눈부시고 바람 잔잔한, 그래서 놀기 딱 좋은 초여름 어느 주말 오후에 정은희 조합원을 만났습니다. 정은희 조합원은 그날 낮 시골 농장에 다녀왔다며 직접 캐 온 유기농 감자와 양파를 한 꾸러미 저에게 건네주었죠. 필자와는 명동 향린교회에서 2-3년 정도 함께 한 인연이 있고, 간간이 길목 모임이나 향린 공동체 모임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길게 대화를 나눈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유쾌하고 솔직한 언어로 인터뷰에 응해준 정은희 조합원께 감사를 드립니다.
Q : 현재 길목에서 이사를 맡고 있으신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A: 딱히 그런 건 없었고요. 향린 공동체 교회마다 이사를 한 명씩 두게 돼 있는데 그동안 강남향린교회의 장로님들이 하시던 일의 바통을 제가 이어받았죠. 어차피 순번을 돌아가면서 맡게 돼 있었으니까요.
Q : 길목의 프로그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A : 서촌 기행하고 서울성곽 기행이 무척 좋았어요. 서울에 대해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 됐거든요.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못하게 돼서 많이 아쉬워요.
Q : 서울 기행은 여행이라기보다 서울의 역사를 알기 위한 것이죠.
A : 맞아요. 그때 해설해주셨던 분들이 굉장히 자세히 우리가 서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것을 자세히 알려주셔서 참 좋았어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으로 안내해주셔서 뜻 깊었죠. 이 역사 기행에 참여했던 분들은 그 매력을 다들 아실 거예요.
Q : 원래 역사 분야에 관심이 있었나요?
A : 네, 서울의 역사에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송파 지역에 살고 있는데, 그 지역에 풍납토성, 몽촌토성이 있어서 가보았고 한성백제문화제 같은 데도 참석해봤는데 굉장히 재미있더라고요.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니 서울의 역사에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 같아요.
Q : 길목에서 진행했으면 하는 프로그램이 있나요?
A : 요즘은 강좌들을 온라인으로 진행 중이죠. 온라인이지만 정말 좋은 강좌들을 많이 했는데, 예를 들어 북한 미술사라든지 하는 것들요. 그런데 많이 참석을 안 해서 너무 아쉬워요. 신학 강좌도 하는 등 프로그램이 다양한데 사람이 너무 안 모여서 걱정이에요.
Q : 현재 직장에 다니시나요?
A : 직장이라기보다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요. 제가 화학을 전공해서, 어린이 과학교실에서 수업을 해요. 예전에는 문화센터나 주민센터 같은 곳에서 했고 학교 돌봄교실에서도 했고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많이 줄었죠. 요즘은 주로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네이버 밴드에서 라이브 수업도 하고 있어요. 돌봄교실은 온라인 지원 수업인데, 혼자 온라인 수업을 하기 힘든 맞벌이 가정이나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는데, 제가 컴퓨터실에서 돌보면서 수업을 진행해요.
수업은 간단한 과학실험 위주로 해요. 예전에는 제가 실험 재료들을 갖고 가서 만들기를 했는데 요즘은 재료를 택배로 보내고 온라인으로 수업하죠.
Q : 하시는 일은 재미있나요?
A : 재미있어요. 아이들이 가끔 저한테 물어봐요. “혹시 선생님 과학자예요?”라고. 아이들이 과학자 또는 천문학자를 아주 좋아하고 동경하더라고요. 저도 젊었을 때 과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쉬운 일은 아니죠.
Q : 수업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었나요?
A : 어떤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예전에는 과학이 어렵고 싫은 과목이었는데 선생님하고 과학 수업을 하고 난 후에 과학이 재미있는 과목이란 걸 알게 됐고 좋아하게 되었다고, 고맙다고요. 그 말을 듣고 저도 뿌듯하고 보람이 있었죠.
Q : 화학을 전공한 이유가 있었나요?
A :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저 화학이 재미있었어요. 실험도 재미있고, 서로 다른 물체가 섞여서 새로운 물체가 생기는 것도 재미있어요.
Q : 우리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실험보다 화학기호 외우고 복잡하게 계산하고 그랬잖아요?
A : 그랬죠. 우리가 어렸을 때 학창 시절에는 그런 게 별로 없었잖아요. 주로 이론 위주로 공부하고, 그래서 학생들이 과학에 별로 흥미를 갖지 못했던 게 아쉽죠. 선생님들이 실험 위주로 재미있게 가르쳤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그런데 요즘은 이론보다는 만들기나 실험 위주로 수업을 해요. 예를 들어, 과학 시간에 에너지에 관해 가르칠 때면 학생들이 직접 발전기를 만들어 태양 에너지로 움직이는 장난감을 만들어 본다든지 그렇게 수업을 해요.
Q : 우리가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와 우리 자녀 세대가 다녔을 때 그리고 현재 아이들의 풍경이나 분위기가 다를 것 같아요.
A : 많이 다르죠. 요즘은 아이들은 컴퓨터를 너무 잘해요. 온라인 수업을 하니까 컴퓨터로 하루에 4시간 정도를 공부하거든요. 공부하는 중간에 아이들이 캡처를 해본다든지 선생님의 이야기를 PPT로 만들어본다든지 그렇게 하더라고요. 우리 세대는 20대에 처음 컴퓨터를 접해봤지만 요즘 아이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컴퓨터를 봐왔고 컴퓨터가 생활필수품이 되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세대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지 않고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변화하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자꾸만 새로운 것을 추구해요. 우리와 속도가 다르죠.
Q :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놀란 적은 없나요?
A :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가끔 어떤 아이들이 저한테 ‘할머니’라고 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그 아이들의 엄마가 30대니까 제가 그 아이들에게 할머니뻘이 되는 게 맞긴 하죠. 그래도 좀 슬프긴 하더라고요(웃음).
Q :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으세요?
A :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받죠. 특히 양보를 안 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집에서 외동인 아이들이 많아서인지 다들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기 말만 들어달라고 하죠. 그런 부분이 좀 힘들어요.
Q : 교회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명동 향린교회를 다니다가 2004년에 강남향린교회로 옮기셨죠? 특별히 옮긴 이유가 있었나요?
A : 사는 지역과 가까워서 옮겼어요. 예전에는 시내에서 마라톤 대회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차량 통행을 막곤 했죠. 교회에 가는 시간인 보통 9시에서 11시까지 막고 그랬어요. 길이 막혀 차 안에 갇혀 있다 보니 화가 나더라고요. 그런 점도 불편했고, 더 작은 교회를 섬기면 더 할 일이 많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고요. 그리고 아이들 때문이기도 했어요. 우리 부부가 교회에서 늦게까지 회의에 참석하다 보면 덩달아 아이들도 오랫동안 교회에 남아있어야 했죠. 강남향린으로 옮긴 이후에는 아이들이 먼저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됐어요.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옮겼죠.
Q : 강남향린교회가 명동 향린에서 1993년에 분가했는데 10년 후에 들꽃향린으로 또 분가했죠?
A : 네, 딱 그 무렵에 저희가 강남향린으로 갔어요. 당시 대형교회도 아닌 강남향린교회가 왜 또 분가를 해야 하냐며 반대하는 교인들이 많았는데 목사님이 설득을 하셨죠. 강남향린에 당시 출석 교인이 100여 명 정도 됐는데 서로 가족처럼 너무 친했어요. 그러다보니 목사님이 보시기에, 교인들의 친교가 주가 되고 교회가 정체되면서 향기로운 이웃이 못 되고 고인 물이 되는 것 같아서 분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대요.
Q : 몇해 전, 강남향린교회가 강제 철거 집행을 당하는 시련도 겪었었죠.
A : 그랬죠. 사실 저는 그 일이 있기 전에는 향린 공동체에 대해 별다른 느낌이 없었어요. 그런데 명동 향린, 섬돌향린, 들꽃향린 교인들이 자기 교회 일처럼 와서 연대해준 것이 정말 고마웠어요. 당시 성금요일 고난 주간이었고, 이병일 목사님은 안식년에 들어가셔서 우리가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그런 엄청난 시련이 닥쳤는데요. 향린 공동체에서 100여 일 동안 하루, 한 시간도 안 빼놓고 와서 릴레이 불침번을 서주신 것이 정말 감사했고, 그래서 교인들끼리 정말 끈끈해졌죠. 어느 비 오는 날 천막에 후드득 비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함께 기도했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Q : 가족 이야기를 잠깐 나눠볼까요? 슬하에 3남매를 두었죠?
A : 네, 1남 2녀예요. 아들은 현재 군복무 중이고 큰딸은 취준생, 둘재 딸은 교사예요.
Q : 이승무 권사님과는 어떻게 만났나요?
A : 향린 커플이었어요. 청년신도회에서 만났죠. 남편은 현재 환경 분야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본인만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이죠. 아직까지 2G폰을 쓰고 있을 정도로요.
Q : 부부싸움은 안하나요?
A : 저희는 거의 안 해요. (비결이라면?) 그냥 서로를 인정하는 거예요. 둘 다 고집이 무척 세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부분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인정하며 각자의 길을 알아서 가는 거죠. 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많아요. 물론 남편도 제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많이 있겠죠. 하지만 마음에 안 드는 부분까지 그냥 인정하는 거예요.
Q : 잘 안 싸우며 사는 27년차 부부로서 젊은 부부들에게 현명한 결혼 생활의 조언을 좀 해주세요.
A : 결혼한다는 건 서로의 교집합을 늘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각자 개인적인 영역을 인정해주면서 교집합을 늘리는 거죠. 사실 이건 단지 결혼 생활뿐만 아니라 다른 공동체의 인간관계에도 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은희 조합원과는 동년배여서 그런지 ‘아, 하면 어’, ‘쿵하면 짝’하고 받아주는 분위기로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인터뷰라기보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편안한 담소를 나눈 것 같았지요. 다음에 또 다른 기회로 만나게 되면 더 재미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