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 산부인과에서 공공의료를 맡고 있는 고경심 조합원
고경심 조합원은 산부인과 의사로서, 현재는 은퇴 후 보건소에서 진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원고를 편집실로 넘긴지 수일 지난 9월 1일,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고경심님이 여성가족부의 ‘양성평등주간’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합니다. 여성 인권을 위한 의료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고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에 기여한 공로입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보건소가 맡은 임무는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하겠습니다. 이 가운데 잠깐의 틈을 내 주고, 근황과 궁금했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Q : 저희 길목 조합원들께는 2018년도, <정읍댁 단풍편지>로 소개되어 농촌현실과 마을공동체에 대해 여러 관심을 갖게 헸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 정읍에는 1년 정도 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휴식 기간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풀을 뽑거나 텃밭도 가꾸었습니다. 그리고 정읍시내에 나가 수영도 하고 장구도 배우고 한국무용도 배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래 회원들과 밥도 같이 먹고 차도 마시며 어울렸습니다. 정읍은 남편의 고향인데 시어머님께서 옥박골 댁으로 불리셨기 때문에 옥박골 댁 셋째 며느리로 동네 분들이 따뜻하게 품어주었습니다. 동네 노인분들이 시부모님과 시할머님까지 기억하고 계셔서 전혀 외지인이라는 느낌을 안 받고 마을 공동체에 스며들 수 있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입니다. 오히려 환영받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주말엔 여기저기서 친구 등 지인들이 놀러와 손님맞이를 하고 정읍 관광 가이드 역할을 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일을 한다고 대접만 받고 살아왔는데 나도 이젠 받아온 대접을 되돌려 드려야겠다는 마음이었지요. 음식솜씨는 없어도 환영의 마음을 듬뿍 담아 줄 수 있었습니다.
Q : 오랫동안 개인 산부인과를 경영하며 진료를 해왔습니다. 은퇴 후 다시 진료업무로 복귀하였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A : 서울에 있는 두 남자(아들과 남편)가 불쌍했습니다. 하하... 주말엔 가족들도 내려와 만나기는 했지요. 들리기로는 아침마다 두 남자가 다툰다 했습니다. 거의 라면과 메밀국수로 때우다시피 하며 지낸다하는데 요리라고는 전혀 못하는 남자들이었지요. 그래도 아들은 덕분에 설거지의 달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지냈는데 차츰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하... 할 수 없이 올라오게 되었지요. 그렇게 서울에서도 쉬다보니 차츰 무료해지기 시작해서 일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상업적인 일반 병원엔 가기 싫었습니다. 보수는 많아도 그만큼 많은 일에 다시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보건소에 가게 되었습니다. 문산 보건소인데 경의선 종점인 문산읍에 있습니다. 파주시 제일 북단에 있는 보건소입니다. 산부인과 의사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았는데 나중 알고 보니 지원자가 아무도 없었답니다. 보통 보건소는 내과 진료만 대부분 보고 있는데 산부인과 진료로는 이곳이 유일하다고 하겠습니다. 경북 청송에 한 곳 있었는데 없어졌다 합니다. 이 지역에 산부인과가 없어 임산부와 산모들이 금촌이나 일산까지 나가서 진료를 받아야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파주시장께서 문산읍에 산부인과를 유치하겠다는 공약이 있었습니다. 근처엔 LG디스플레이 공장이나 군부대가 많아서 젊은 군인들과 그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산부인과 수요가 꽤 있는 실정이었으니까요. 산부인과 여성 전문의가 왔다고 해서 좋다고 했습니다. 경의선을 이용하는데 서울 시내 쪽이 아닌 종점방향이라 주로 앉아서 가면서 편하게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Q : 보건소는 공공산부인과로서 임산부들과 일반 대중이 어떻게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요.
A : 아무래도 전에는 모든 병원 업무들을 혼자 처리해야 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진료는 물론 직원 월급, 약품 관리, 소모품 관리, 병원 공간 정리와 의료보험 청구 등 행정업무까지 일이 많았습니다. 보건소에서는 진료만 보면 되니까 훨씬 편해진 거지요. 보건소는 1차 진료가 이뤄지는 곳이고, 필요하면 다른 병원에 연계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진료 외에도 교육프로그램 강의나 상담도 합니다.
전국적으로 모든 보건소에는 임산부들을 위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습니다. 결혼을 증명하는 증서만 있으면 신혼부부는 필요한 검사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신부들은 임신 초기와 말기 검사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산부에게 필요한 영양제, 즉 기형 방지에 도움이 되는 엽산이나 철분제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 관리, 결핵관리, 예방접종 업무, 난임 부부 상담 등을 하고 있죠. 특히 65세 이상 노인들은 진료비가 없습니다.
현재는 코로나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업무가 많아지고 힘들어졌습니다. 산부인과 진료도 줄이고 예방접종 예진 업무를 하러 나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의료체제 중 공공병원이 적어서 코로나 대응에 일이 몰려서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특히 보건소 직원들은 코로나 선별검사, 역학조사, 예방접종 업무로 매우 피로가 축적되어 있어서 걱정입니다.
Q : 산부인과 진료를 하면서 그간의 보람과 성취감이 있었을 텐데요.
A : 의과대학 시절에는 정신과에 뜻을 두었었는데, 의대 4학년 때 정신과 병동 실습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간 생각해 오던 것과는 달리 정신병의 치료 방법이 주로 약물에 의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였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성으로서 산부인과를 전공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수련과정도 힘들었고 산부인과 진료를 해오면서 고비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선택이었다고 여겨집니다. 진료 외에도 여성민우회나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진료하고 돕는 기회가 생겼고, 전문적인 자문이나 상담자 교육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와서 가장 큰 보람이라면, 형법의 <낙태죄 폐지>에 힘을 보탠 것입니다. 2018년도 4월 민변 여성인권 팀에서 의뢰가 왔습니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소송에서 변호인의 참고인으로 나와 달라는 것이었지요. 헌법재판소에서 참고인 진술을 하면서 진료현장에서 경험했던 사례 등을 제시하고 실제 현실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어려움과 발생하는 건강상의 위해와 문제점들을 증언했습니다. 그 후 2019년도 낙태죄 조항이 폐지되었습니다.
Q : 명동 향린교회에서는 장로로 시무하고 섬돌 향린으로 가서도 역할이 여전히 많습니다. 본인의 신앙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A : 고향이 제주도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장로로서 제주시 동부교회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최초 제주의 교회가 제주시내에 성내교회가 설립되었는데, 교인수가 많아지자 서부, 동부 교회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동부교회도 기독교장로회 소속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나가서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에 접하고 되었습니다.
제가 신앙에 대해 회의감과 크게 힘들게 지냈던 시기는 광주 5.18 항쟁이 일어났을 때입니다. 의대 3학년 학생이었는데, 너무 참혹한 광주의 상황에 하느님 존재와 기존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생겼습니다. 그 때 집근처 신촌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박광재 목사님과 연세대 서남동 교수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처음 민중신학을 만나게 되었고 한국 현실에 기반을 둔 신앙의 자세를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 보건소 일을 하지 않을 때 여가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A : 올해 초에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 왔습니다. 꽃밭에 씨도 뿌리고 텃밭에서 채소도 가꾸고 있습니다. 엊그제는 비오기 전에 시금치 씨도 파종했습니다. 정읍에서 배운 초보 농사 실력을 여기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Q : 길목 인이 9월로 4주년을 맞이합니다. 인사 부탁드립니다.
A : < 길목 인>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늘 다양한 내용이 있어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길목 인>을 위하여 일하는 모든 위원들께도 수고하신다는 인사를 올리고 싶습니다. 코로나로 모임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메시지 전달자로서 의의가 있다 하겠습니다.